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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는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최성림 2014-08-02 추천 1 댓글 0 조회 286

모든 성도는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신학은 일반성도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학문이므로 그냥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할 교역자들이나 신학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학은 지도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중해를 그려둔 지도를 보면서는 그다지 큰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일반인들은 지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는 많은 사람이 항해를 하고 난 뒤에 주어진 결과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도는 이들의 감동과 경험의 축소판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해변을 떠나서 지중해를 항해하려 한다면 반드시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신학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또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얻어진 지도와 같은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은혜의 감동과 기쁨을 더 크게 누리도록 하기 위해 수고한 우리의 선진들의 노력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알고자 할 때 성경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원의 기쁨을 맛 만보고 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면 이 지도와 같은 신학의 중요성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성경을 있으면 되지 무슨 신학이 필요한가'라고 할 때 이 말은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한발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이 말이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 5:29의 말씀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선한 일이 무엇이고 악한 일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교를 신앙하는 자들도 선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이 시간 이 본문을 두고 여러분이 한 번 소위 Q.T라고 하는 것을 한다고 생각하고 '선한 일이 무엇이고 악한 일이 무엇인지' 답해보십시오. 어쩌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을 돕고, 사람을 해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희생하는 것이 선행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도들도 생각하는 선행입니다. 그러면 불교도들도 생명의 부활로 나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선한 일이 이런 육신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신학은 알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듯 만약 신학이 없다면 실로 '불경이나 유교의 경전으로 설교를 만든다 해도 성경으로 만든 설교와 아무런 차이를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착한 일하면 상 받고 나쁜 짓 하면 벌 받는다고 가르치면 성경을 가르친 것입니까? 그러니까 오병이어의 표적에서 '한 아이가 하나님께 작은 것을 바쳤더니 더 많은 것으로 주셨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무엇인가 드리자'라는 어이없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신학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징계하신다는 말과 불교의 인과응보라는 용어를 구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간이 범죄하여 죽은 일과 '행한 일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어떻게 구분하시겠습니까?

본문의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도구가 바로 신학입니다.

성경주해라는 해석의 과정(성경신학)과 교회역사적인 논의(역사신학)를 거쳐 정립된 교의학(교의신학)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선한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소위 실천신학)입니다.

이것이 신학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성경의 진리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각인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신앙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든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중해의 바닷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지중해의 바닷물을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지중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보다 지중해와 주변을 명확히 알기를 원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지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지중해의 참된 가치를 더 면밀히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파선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종착항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신앙의 경험과 지식에서 보다 완전한 데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체계적이고 정확한 신학의 토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이 파선 당하지 않고 무사히 종착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아테네에서 배를 타고 나폴리로 가고자 할 때 지도가 없다면... 배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풍경들은 볼 수 있겠지만 나폴리를 찾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의 길이라고 열심히 달려 왔는데 그 길이 주님이 제시하신 길이 아니라면 그 나중은 어떻게 될까요?
신학은 우리가 주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제대로 달려갈 수 있는 지도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 또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에서 보다 완전한 지식에 까지 이르기 위하여서 이 지도와 같은 신학을 도모해야 하고 신학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성도는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성도는 신학자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신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으로 많은 오해와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인한 이단과 이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신학을 알지 못하기에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을 분별없이 따르게 되기도 합니다.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이유나, 다락방에서 말하는 전도와 우리교회가 말하는 전도를 구별하지 목하는 이유는 오늘 교회 성원들 뿐 아니라 직분자들조차 신학을 너무 경원시 하였던 결과인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임직식을 할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서'를 알고 따르는 일에 성실히 행하겠다는 서약을 하지만.... 직분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약한 것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성도 개개인은 '성경을 읽을 권리와 관심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번역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을 따라 살아가는 신학자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느냐 주께서 정하신 원리를 따라 이해하느냐에 따라 바른 교회와 이단이 구별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신학자여야 합니다. 주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된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하여 성도는 반드시 신학자여야 합니다.
신학은 성도를 메마르게 하거나 신앙생활을 건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건강하게 하는 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할 책임이 교회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기를 원하신다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벗고 보다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보다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라"고 호소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에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008.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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