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교회와 노조(3) 허순길 박사
고신교회는 한국 장로교회 교단 중 전통적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생활을 가장 크게 강조해 온 교단으로 알려져 왔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생활을 강조하며, 순교적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모토로 내세워 왔다. '하나님 앞에서'란 단순히 개인적 경건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어디에나 계심을 믿으며, 모든 생활영역에서 그의 말씀을 법으로 삼고 사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신본주의' 생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본주의를 생활이념으로 삼고 살아오던 고신교회 안에 언젠가 '노조'라는 '인본주의' 조직체가 자리를 잡았다. 결과 고신교회는 차츰차츰 인본주의적 이념과 활동의 점거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보는 분들이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깝다.
고신교회는 '고신의 바벨론 포로'라고 부를 수 있는 '관선이사' 통치가 오기 전 이미 인본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노조'라는 조직체에 이따금 점거를 당하는 부끄러움을 겪어왔다. 주후 2000년은 개인이나 모든 기관이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새천년을 여는 해였다. 그런데 2000년도 9월에 개최된 고신 제50회 총회는 '3층에 입장한 고신의료원 노조원들의 소란'(총회회의록) 때문에 정회를 해야 했다.
이때부터 고신총회는 종종 노조에 점거당해 정상적인 진행을 해오지 못하였다. 학교법인 이사회를 관선이사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물러나야 했던 것은 이런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여진다. 이스라엘이 차츰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떠나 이방 이념에 지배받게 되었을 때, 바벨론 포로시대가 왔다. 고신의 역사를 이렇게 읽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날의 역사에서 여호와의 통치의 손을 살피지 않고, 교훈을 얻지 않을 때 밝은 미래의 역사를 열어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신교회 안에 순수인본주의 이념운동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순간적인 일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들어 인본주의 이념이 교회직영 대학캠퍼스를 통해 침투되어 소위 학원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고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났었다. 몇몇 고신대생들이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가담한데 이어 이사장실 점거, 난동, 집기파괴 등의 폭력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들이다. 그런데 이런 폭력을 동반한 인본주의 운동은 학생들에게만 확산되어 자리 잡은 것이 아니었다. 대학 캠퍼스 직원들과 부속병원인 복음병원 직원들 속에서 '노조'라는 조직을 통해서도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 후반, 송도와 영도의 캠퍼스는 폭력이, 병원은 파업시위가 줄을 이었다.
노조를 '반기독교적' 단체로 보고 생활하는 서구 '개혁교회'에서 10여 년 봉사하다 돌아온 필자에게 이 현실의 목격은 바로 충격 그것이었다. 노조원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병원 로비에서 파업 연좌시위를 하는 모습은, 옛날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방 바벨론 군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더욱 지난날 붉은 색깔(적기)은 유산계급과 싸우는 극단적 사회주의 이념과 필사의 계급투쟁을 상징하는 것이었기에, 붉은 띠를 두른 노조원들의 모습은 기독교 신앙인들의 세계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보여지지 않았다. 구미의 신실한 개혁교회 신자들은 노조가 지배하는 현 산업사회에서 노조와 무관하게 복으로 여기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당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결코 재세례파주의적 성속의 분리사상을 가진 때문이 아니다. 모든 생활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만을 받고 살기 원하기 때문이다.
1989년에 고려신학대학원은 신대원 직원들에게 '고신대 직원노조' 탈퇴를 요구했다. 다행히 이 요구에 순응해 주어 신대원은 노조 없이 지나오게 되었다. 고신교회 직영기관 안에 노조가 조직된 데는 사용자의 일방적 정책과 운영, 불투명한 관리, 불합리한 노동 조건, 불공정한 급료 등 나름대로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이 교회와 관련된 기관에서 노조를 조직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노조는 노동자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자와의 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되는 기구이다. 복음병원은 사용자와 직원들이 모두 신자로 구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다.
여기 노조가 있다는 것은 신앙 형제자매들끼리 투쟁을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복음병원은 단순한 기업 차원을 넘어 의료봉사를 통한 하나님 나라건설이란 큰 목적을 가진 기관이다. 사용자와 직원들은 다 이 아름다운 목적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용된 입장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용자와 직원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동반자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있을 때 양측은 사랑과 믿음 안에서 마주앉아 대화하고 토론하고 협상하고 양보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집단행동과 투쟁을 통한 해결 추구는 결코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할 일이 아니다.
교회 직영기관에서 노조가 있게 된 중대한 책임은 먼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찍 노조의 비기독교적 본질을 파악하고, 직원들을 선도하여 그 조직의 출발을 미리 막았어야 했다. 물론 신자인 병원직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그의 뜻을 살피고 무엇이든지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투쟁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인본주의 노조 조직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고신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기관의 위기와 관선이사라는 이방통치의 수욕을 겪으면서 지난날 파수꾼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오를 뉘우치고 개혁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적인 기관에서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인 직원들은 인본주의 기구인 노조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성도의 교제와 타협을 위한 새로운 조직체로의 변신을 가져와야 한다. 노임체불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투쟁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의 길을 찾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 교회적 기관이나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투쟁을 위한 노조는 있을 수 없다. 복음병원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영의 통치 아래 움직이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공동체 기관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 병원이 세상의 기관들과 질적으로 다름이 탁월하게 드러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운 얼굴을 돌이키시고 밝은 미래를 열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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