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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 위해 딴 길 걸은 父子 신학자
언약 2014-07-28 추천 2 댓글 0 조회 238

교회개혁 위해 딴 길 걸은 父子 신학자

 

북미기독개혁교회(CRCNA)에서 3대를 이어 신학자(박사)로 교회를 봉사해온 가문에서 부자가 교회개혁을 위해 딴 길을 걸어 온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는 CRCNA를 섬겨온 더 종(de Jong) 부자에 대한 실화이다. 아버지 피터 더 종 박사는 선교사와 목회자 교수로 봉사하다 은퇴했고, 아들 제임스 더 종 박사는 20년 동안 칼빈신학교 교장으로 봉사하다 200112월 신학교 설립 125주년을 기해 스스로 물러나 현재는 교회사 교수로 있다.

 

아버지 피터 더 종은 목사였던 이멘 더 종 박사의 아들로 1940년 칼빈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하다 1950년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인도에 갔다. 그러나 3년 봉사 후 인도정부의 강경한 선교저지정책에 의해 돌아와야 했다. 귀국 후 목회하던 1964년 칼빈신학교의 봉사(실천)신학교수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교수생활 중 신학교내 신학 기류가 좌경화되고, CRCNA 목회자들도 이 기류에 휩쓸려 개혁교회가 변질되어 갔다. 당시 칼빈신학교는 존 크로밍가 박사가 교장으로 다수의 교수들이 신학적으로 진보적 경향을 보였다. 그는 6년의 신학교 봉사를 끝내고 목회현장에 돌아가 개혁운동에 나섰다. 6,70년대 기독개혁교회 안에는 변화를 선동하는 진보성향 집단과 전통적 신앙고백을 지키려는 집단으로 양분되어 심각한 대립상을 보였다. 예를 들면 여장로, 여목사 도입이 총회에 제기되어 한 총회가 이를 부정적으로 결의하면 다음 총회는 그것을 수정하여 긍정적으로 결의하는 시소게임을 벌였다. 피터 더 종박사는 신학교를 떠난 후 아이오와주에서 목회하면서 뜻맞는 목사들과 교회개혁을 논의했다. 당시 칼빈신학교의 신학기류에 실망한 저들은 개혁주의 신학에 철저한 신학교를 세워 목사를 양성해 교회에 보내는 것이 교회를 개혁하는 일이라는데 뜻을 모아 1981년에 중미신학교(Mid-Amercian Seminary)를 개교했다. 이 때 아들 제임스 더 영 박사는 그 지역에 있던 돌트대학 교수로 봉사하면서 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에 나왔다. 그런데 1982년에 칼빈신학교 크로밍가 교장이 퇴임하고, 교장을 찾는 중 아들 제임스가 후보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신학교를 포기하고 다른 신학교를 세웠는데 아들이 그 신학교의 교장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이 부자는 신학과 신앙이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에 있었으나, 제임스는 총회직영 신학교를 두고 다른 신학교를 세우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들 제임스는 1983년에 칼빈신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여 부자의 길이 갈렸다.

 

아버지 피터도 새로 세운 신학교의 책임을 맡았다. 이 학교는 1992년에 시카고 근교로 옮겼으며, 교파내 교회에 졸업생을 파송하여 보수진영을 강화하고 개혁해 가기를 원했다. 그러는 동안 아들이 교장인 칼빈신학교와는 대결을 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런데 결국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새 신학교를 두려워한 총회는 총회가 인정하지 않은 신학교 학생에게 경제적 지원중단과 졸업생 수용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좌경화를 염려하고 불만해 온 교회들이 총회와 관계를 단절하고 하나씩 나와 독립하게 되었다. 자연히 이 교회들은 중미신학교를 지원하고 주로 그 졸업생들을 목사로 받았다. 총회가 여목사 여장로 제도를 도입하자 90년대 초에는 상당수 교회가 총회를 떠났고, 이 교회들이 1996년에 집결하여 북미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es in North America)라는 교파를 조직했다. 이 교파는 출발시 36교회였으나 지난해에 81교회로 늘어났고, CRCNA 중 상당수 교회가 지금도 자기 교파의 신학노선에 불만하고 중미신학교를 돕는 것을 볼 때 앞으로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터 더 종 박사는 처음 바랐던 교파 내에 졸업생을 파송하여 개혁운동을 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중심한 개혁운동으로 좌경화하는 교파에서 상당수 교회가 나와 개혁주의 노선을 지키는 교회 연합체를 형성한 것을 볼 때 사람이 바라던 길과 다른 길로 그의 개혁운동은 복을 받았다고 본다. 그는 지금 새 교파의 은퇴목사로서 아들 제임스와는 교파를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칼빈신학교 교장을 물러난 후 아버지가 번역한 17세기 화란계 신학자 타핀의 유명한 저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표지'를 편집하여 협력함으로 지난날 서로의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아들 신학자는 칼빈신학교에 장기간 교장으로 있으면서 전임자 크로밍가 시대 자유주의적 경향의 교수들이 은퇴할 때마다 비교적 보수적인 분들을 영입함으로 신학교 분위기를 개선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향으로 흐르는 교회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돌이키는 것은 역부족이었고, 창조 기원문제(창조적 진화), 여자직분자 문제에 대해 신학교가 보수적 입장으로 총회에 자문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그는 그 일에 대해 지금도 슬프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아버지 더 종 박사는 지금의 부자간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 긴장은 먼 지난날의 것이 되었다"고 말했다. 역사의 주요 교회의 왕이신 주님은 교회의 개혁과 건설을 위해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그의 종들을 들어 쓰심을 보게 된다.

 

허순길 목사(전 고려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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