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인의 성경 읽기
- 이중표 목사(캐나다 해밀턴 커너스톤개혁교회 출석)
개혁교회 가정의 확고부동한 전통 중에 하나는 식사 후에 성경을 읽는 것이다. 물론 세 끼마다 다 읽을 것인지, 아니면 저녁에만 읽을 것인지 등에 관한 횟수 문제는 집집마다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 읽기와 함께 찬송을 부를 것인지 아니면 성경만 읽을 것인지도 역시 선택의 문제다. 물론 어떤 본문을 읽을 것인가도 철저히 그 가정의 선택에 달려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함이 없던 한 가지는 식후에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장이라는 점이다. 심지어는 음식을 먹기 전에 기도하고 나서 가족들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것도 가장의 역할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왔을 때도 메인 요리는 항상 가장이 떠서 손님 접시에 놓아주곤 한다. 물론 두 번째 라운드부터는 자유롭게 떠서 먹게끔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자, 화란에서도 그랬고 이곳 캐나다 개혁교회 안에서도 이 룰은 거의 변함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주일에 방문했던 한 가정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 예배가 끝나고 아침에 우리를 태워준 분의 가정에 초대되어 갔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차나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간식(주로 조각 케익이나 쿠키 등)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역시 이들의 변함 없는 전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식사 시간! 소위 Sunday soup이라고 하는 화란식 수프와 함께 빵 등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는 것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 때도 역시 가장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뜨끈한 국물을 한 사발씩 떠주었다. 본시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그래도 겨울에는 가끔씩 얼큰한 것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날 내온 토마토 수프는 제법 얼큰한 것이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수줍게 얼굴을 동동 내민 통통한 미트볼들이 어서 저 국자를 들어 자기를 마구 퍼가라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두 그릇 째 수프를 떠먹을 때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장의 손을 빌지 않고 내가 직접 넉넉히 담아올 수 있었다.
먹는 얘기가 나와 잠깐 딴 길로 샜는데, 어쨌든 이렇게 누가 봐도 평범한 화란계 캐나다인들의 주일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드디어 낯선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을 읽으려고 집어든 손이 나에게 얼큰한 토마토 수프를 떠준 덥수룩한 수염의 가장 아저씨의 손이 아닌 바로 아줌마의 손이었다는 사실이다.
순간 움찔하는 내 자신을 애써 감춘 채 오전 예배 때의 본문인 말라기 2:1-16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귀는 기울였지만 마음속으로는 한 가지 딴 생각만이 집요하게 나를 붙잡았다. 그것은, "이건 못 보던 장면인데. 이걸 물어봐도 되나 어쩌나. 물어볼까 말까...볼까 말까...볼까 말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성경을 다 읽어갈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우리는 몰라서 배우러 온 사람들이다. 조금 실례가 될 수도 있고 무식이 탄로 날 수도 있겠지만 몰라서 물어본다는데 뭐 그리 정색하고 뭐라 하랴...' 그래서 물었다. “보통 성경은 가장이 읽는다고 알고 있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아내가 읽었는고!” 하고...
대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냥 그게 더 편하니까.” 하는 것이다. “흐~읍!” 예상치 못한 허탈한 답변에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추가 설명이 뒤따랐다. 본래 이 두 사람도 다른 캐나다 개혁교회 교인들처럼 화란계 이민자들이다. 아저씨는 18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로 이민 와서 목수 일을 하며 지금까지 살았고 아줌마는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간호사도 하고 교사도 하며 살았단다. 그러다 보니 아저씨의 교육은 사실상 고등학교까지 화란어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이곳 캐나다에 와서 오래 살기는 했지만 더 이상 교육을 받지는 않았기에 영어로 말을 하게 되었어도 글을 읽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후손인 우리 한민족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있는 문맹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 문맹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공공연한 비밀이지 않은가. 결국 영어로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아줌마가 영어로 된 성경을 읽는 것이 더 편했던 것이다. 물론 가끔씩은 한 번씩 돌아가며 읽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아줌마가 더 편한 것은 사실일 게다.
이렇게 색다른 경험의 전말이 밝혀지고 나니 아~ 어리석고 미련한 한 인간의 편견은 이렇게 작은 일로도 깨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내가 보고 들은 경험의 좁다란 통로 안에서 이것만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을 하며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개혁교회를 배우며 조금씩 드는 생각은 이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생각의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과 논쟁과 또 토론과 협의의 과정을 거쳤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의 사고구조 속에는 하나의 가느다란 줄을 드리워놓고 그것을 붙잡는 것만이 우리 편이라는 식의 단조로운 생각을 버리고 널찍한 울타리를 치되 튼튼하고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활개치고 뛰어놀 수 있는 생각의 풍만함을 소유하게 되었다.
500년이 넘는 세월들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그것은 이들의 뿌리 깊은 신앙적 유산을 통해서뿐만이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의 문화적 유산인 유교주의(confucianism)가 그 후로 10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들을 최대한 많이 벗어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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