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신앙은 자랍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나의 옛 사람이 죽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신랑이신 예수님의 말씀의 씨가
신부 교회에 뿌려지고, 잘 기경된 그리스도의 밭에서
어머니 교회를 통하여 태어나 양육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죠.
모든 부모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정상적으로 자라가기를 원합니다.
아프면 안타깝고 내 아이의 자람이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같다 싶으면
몸에 문제가 있나? 지능에 이상이 있나 마음이 조급해 지기도 합니다.
성도의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정상적인 속도로 자라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람이 없다면 이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죠.
신앙이 자람에 있어서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바른 설교를 많이 듣는 것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좋은 교회, 바른 설교를 듣고 훌륭한 직분자를 만났다고 해서
신앙이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학교, 탁월한 가르침, 휼륭한 선생님을 만나도
학습효과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몸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아이가 자라면서
단단한 식물도 먹고, 질긴 음식도 먹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어릴 때 자기가 좋아하던 부드러운 우유나 과자나 간식같은
입에 단 것만 찾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엡4:22v을 보면 바울사도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는데,
신앙생활하기 전에 좋아하던 것들에 대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옛 습관만을 좋아하며, 자기가 편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옛 사람을 벗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으면서도 옛 습관,
그리스도 밖에서의 행사를 계속 좇기 때문에 자람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연령에 따라 교육을 하듯이
교회는 성도들의 신앙연령을 따라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연령에 맞는 수준으로 자라 갑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출석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몸도 자라고, 학년도 올라가지만 지식은 자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숫자와 가나다라를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그 사람이 평생에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워가는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숫자를 읽는 법, 가나다라를 모르면 더 이상 학습의 진척이 어렵기 때문에 가르쳐줍니다.
이걸 기초로 해서 조금씩 조금씩 더 배워 학년이 올라가고,
지식을 축척하여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람도 마찬가지다.
새신자가 되었을 때 배운 것들은 신앙과 구원에 가장 기본적인 고백들입니다.
이 고백들이 없으면 신앙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알고 있다면 이는 초등학교 1학년으로 평생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세례를 받기 전에 가르치는 모든 지식들은
그야말로 앞으로의 신앙생활에 모르면 안되는,
이 기초적인 신앙지식을 바탕으로 신앙을 진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바르게 알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언약백성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는 이제 예수믿고 구원받았으니 다른 건 몰라도 돼!"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신앙이 참인지 거짓인지 다시 되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은 살아 생명려 는 믿음이기에
이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듣고 알아
더 충만한, 더 큰 믿음으로 자라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북두칠성을 알고, 북극성 위치를 안다고
"나는 이제 별자리 다 안다. 나는 천문학자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별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너무나 흥미로와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주의 지으신 우주만물의 광대함과 인생의 미천함을 깨닫고
주의 말씀을 통하여 만유의 하나님과 우주만물을 살피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옛 사람을 벗고, 게으른 세상의 습관을 벗고
새사람을 입은 자로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통해
신앙이 더욱 자라고 신앙인격도 빛나게 성숙해 지기를 원합니다.
2015. 05. 03.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