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들을 보고 있노라며
이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인생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생들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행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주님이 주목하고 계시고, 마음의 생각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범죄하는 일들도 하나님께 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도들이, 교회들이 정말 자신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게신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의 모든 행한 일이 하나님께 직접 행한,
그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당신이 감찰(주목해서 살피고 있던)하고 있던
내가 그 분 앞에서 행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목회자들이 말씀을 왜곡하고, 성도들 앞에서 수치심을 잊었습니다.
장로들이 정직을 상실하고 위선으로 자신을 치장합니다.
집사들이 성도를 사랑하고 돌아봄이나
몸의 연약한 부분을 대신 살피는 섬김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자기 일상에 좇겨 세상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주의 몸된 교회와 함께 하고 연합하는 것보다 힘있는 불신자들과의 연합을 동경하고,
파멸을 가져다 준다고 경고하는 육체의 욕망을 위해
영생의 양식도 떠나 살고 있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들 모두가 예배 앞에 나아와 스스로 고백하기를
'나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이 모든 행위들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와 신앙과 관련된 모습에만 관심을 가지신다고 착각합니다.
교회를 위해 한 번 행한 선한 일(?)로 자신의 죄악이 하나쯤 차감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말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이라고 착각합니다.
내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기 때문에
이젠 어떤 죄도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엉터리 확신(?)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코람데오를 고백한다면 이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곧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모든 언행을 먼저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몸이 머리를 앞설 수 없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면
어찌 몸의 지체가 머리의 다스림이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손이 도적질하고 싶어도 머리(주의 말씀과 성령)가 그것을 막기에 도리어 선한 일을 합니다
입이 형제를 저주하고 조롱하고 무시하지만 머리가 그것을 제어하여
선한 말로 권면하고, 감사의 말로 즐거워하며, 위로의 말로 기쁨을 나눕니다
눈이 음란한 것을 좇을지라도 머리가 그 죄악이 깊이를 깨닫게 하셔서
여자를 내 자매로 보게하고, 거룩한 행실로 언약의 교제를 나누게됩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이고
[코람데오]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이고
[코람데오]는 '형제들 앞에서'이고
[코람데오]는 '참된 믿음 안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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