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1(주일오후) 출19:16-20:2, 마4:23-5:12/소교리43-44문답
십계명의 서문
주제 :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표다”
십계명을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로만 본다면 이는 언약백성에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통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1.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상징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시는 방편이므로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원리가 나타납니다.
오랫동안 바로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는 모세의 이 메세지를 듣고 처음에는 매우 기뻐하였습니다.(4:31) 그러나 바로가 마음이 불쾌하여져 부역을 더 심하게 시키자 오히려 모세를 원망하며 저주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5:15f)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친히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셨습니다.(출6:6-8) 하나님께서는 선포하신 말씀을 따라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이 재앙을 통하여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과 애굽에 여호와가 누구신 줄 알게 하시고 이 재앙으로 이스라엘과 애굽을 구별하여 내셨습니다. 야웨께서 애굽에 10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백성들로 행하도록 명령된 특별한 의식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언약공동체의 특별한 위치와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알게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사건은 애굽인에게는 사망을 가져다주는 재앙이었으나 이스라엘에게는 생명과 구원의 역사의 시작이 되는 사건입니다.(창15:13-14) 이스라엘백성들은 이제 과연 야웨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 광야 길에서 지키시며 인도하고 계심을 목도하였습니다.
야웨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시기 위해 모세를 산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의 하나님 야웨께서는 오직 ‘당신이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해내신 그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출19:5-6) 이는 친히 그들의 구원자가 되신 그 분이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당신에 대하여 특별한 관계인 제사장나라로 만드시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섰고,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맺을 언약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스라엘과 하나님사이에 영원한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십계명과 율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이 언약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언약이 아니라 구원을 보증하는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언약, 곧 십계명과 율례를 주신 것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약속의 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계명과 율례는 우리의 구원의 증표가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하나님의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구원한 표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백성으로 살아갈 표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근거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구원을 통하여 우리로 그 백성이 되어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은 새언약의 율법이라 불려지는 산상수훈을 받을 때에도 동일하게 재현되어집니다. 4:23-25은 둘째 모세이신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죄의 종되었던 집, 곧 모든 죄의 결과인 질병들과 환난들에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5:1은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산 아래 두고, 야웨께 올라가서 주의 말씀을 받았던 것처럼 둘째 모세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죄의 종된 자리에서 인도하여내신 무리들을 산에 모으시고, 주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산상수훈은 이미 주님이 주시는 복, 곧 팔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5:2-12) 그러므로 이 많은 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의 증거가 되는 십계명(율법)”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며 언약을 맺으실 때에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당신의 언약을 온 이스라엘에게 전하셨습니다.(출20:1-2) 우리는 야웨라는 이름을 때할 때, 이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그 하나님’의 이름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만약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이 율법을 주셨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율법을 지킴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기도 전에 그들에게 ‘내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생을 아시고 친히 그 인생들을 위하여 구원의 은혜를 먼저 베푸시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법을 지킬 것을 명하십니다. 주님께서 이제 율법의 완성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신 그분이 친히 우리 죄를 위하여, 우리를 죄의 종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은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따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되었던 곳에서 출애굽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였던 것처럼,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야웨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의 의무는, 그 율법은 그 백성을 지배하며 올무를 씌우기 위한 법이 아닙니다. 도리어 참된 구속과 참된 자유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교회는 이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성령의 법은 구원을 얻기위한 법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구속 이후에 주시는 새 계명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더 이상 우리의 굴레나 올무가 아니라 우리가 주의 나라의 백성이요, 주의 집을 그 율법의 말씀 위에 짓는 자들이 되었음을 증거하는 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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