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언약교회 가정 기도회[2015년02월22일 주간]
신앙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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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찬 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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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285장 |
성경봉독 |
고전11:17-34,출16:16-18 |
다 같 이 |
설 교 |
… 주의 몸을 분변함-기다림 … |
부모대독 |
기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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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모 |
주 기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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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 이 |
주제: “주의 몸을 살피지 않는 자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초대교회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하여 기쁨으로 떡을 떼었습니다. 즉 성찬식의 분위기가 부활을 인한 충만한 기쁨과 감사였습니다.
1.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는 고린도 교회의 성찬”
성찬은 하나님의 상에 참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성도의 교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표입니다.(웨-신 29-1) 그러나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찬모임은 그들 안의 분쟁과 편당을 인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17)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편당을 인한 분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특별히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 또는 종이면서 교회에 입교한 자들을 업수히 여겼습니다. 이를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단호하게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제정하신 원 목적을 깨뜨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제정하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김과 봉사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요13:1-20) 이처럼 성찬에는 서로 사랑하며 섬김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파당을 지어 헐뜯으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을 먹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다시 한 번 성찬을 가르치기 위하여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게 받은 것이니“라 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성찬을 다시 가르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서 교회를 한 몸으로, 한 언약 공동체로 세우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되는 성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서로 나뉘어져 분쟁을 일삼고 편당을 지어 다른 편의 사람들로 하여금 성찬을 먹지 못하게 하는 행위는 성찬을 함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를 배려하지 않고, 겸손하게 섬기지 않는 모든 모습이 결국 성찬을 범하는 죄악으로 나아가게 하는 행위들입니다. 자기를 살피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지 않음입니다.
성찬을 더럽힌 고린도 교회 안에 임한 주의 징계는 “그들 중에 몸이 허약해지고 병들고 심지어 잠자는 자, 곧 죽는 자들도 생겨난 것”(30)입니다. 이는 주의 판단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징계입니다.(31,32) 이것은 주님의 경고입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 다투며 분쟁으로 하나되지 못한다면, 주님께선 그 교회를 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징계가 나타날 때 그들은 속히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2. “주의 몸을 분변하는 교회의 성찬”
사도는 우리가 주의 성찬상에 올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주의 만찬은 단순히 요기하기 위한 식사자리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로 모이는 것이고 거룩한 양식으로서 성찬을 먹는 것이고 함께 떡을 떼며 교제함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성찬의 교제 안에서 서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고, 한 몸의 교제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찬의 의미를 그들 안에 성취하는 것이 됩니다.
구약 교회의 성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화목제사를 드린 후 그 제물을 먹을 때 하나님과 화목의 교제를 나눌 뿐 아니라 그 제사에 참여한 모든 형제와 나눔으로서 언약의 교제를 이루었습니다. 곧 하나님과의 화목을 형제에게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을 받을 때 서로 형제를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 떡을 나눔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한 형제인 것을 확인합니다. 한 잔을 나눔으로서 주의 한 피를 나눈 가족인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새언약 아래 사는 한 언약공동체된 것을 함께 기쁨으로 맛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이 형제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힘씁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을 형제에게도 나타내는 것입니다.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이 기다리는 마음”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기 전에 그 나의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남을 먼저 앞세우는 마음입니다. 남을 위해서라면 내가 하고 싶고 나에게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는 여유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관심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실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들에게 똑같이 매명당 한 오멜씩 균등하게 거두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동할 수 없어서 장막에 있는 자들의 것을 취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연약한 자를 돌아봄입니다. 그리고 오멜로 되어 볼 때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일정한 식량을 얻었던 것은 유여한 자의 것이 부족한 자의 것을 메꾸었고, 부족한 자는 유여한 자의 것을 통하여 풍성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씻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한다면 또한 함께 이 성찬이 한 주님을 믿음으로 한 몸을 이룬 지체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언약의 교제임을 알고, 내가 과연 한 형제자매 된 다른 이들에 대한 깊은 배려 속에서 떡과 포도주를 취하는지를 살필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주의 몸을 분변함이며 자기를 살피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김의 자세를 가지며 기다리는 성숙한 언약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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