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언약교회 가정 기도회[2015년01월25일 주간]
신앙고백 |
……………………………………… |
사도신경 |
찬 송 |
……………………………………… |
찬 69 장 |
성경봉독 |
눅20:45-21:4,신14:28-15:11 |
다 같 이 |
설 교 |
…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 … |
부모대독 |
기 도 |
……………………………………… |
부 모 |
주 기 도 |
……………………………………… |
다 같 이 |
주제:“교회 안에 가난한 자가 있다는 것은 교회가 이웃사랑을 저버렸다는 증거다”
구약교회 안에 가난한 과부가 있다는 것은 당시 교회가 주 하나님의 명하신 바 이웃사랑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1. “이웃사랑이 없는 교회”
예수님께서 연보궤 앞에 서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자와 레위인들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원하여 연보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많이 헌금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극히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과부는 그 생활비 전부를 드렸는데, 그 생활비 전부가 고작 렙돈 2닙이었습니다. 이것은 온 교회의 불명예입니다. 주님은 언약 백성 가운데서 가난한 자가 없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신15장) 주님께서 만일 이스라엘의 형제 하나가 힘든 때를 당하거든, 더 많이 가진 자가 그를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형제를 무정하게 냉정하게 인색하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너그러움과 따뜻한 손길을 펴야 했습니다.(신24:19-21) 언약공동체 안에 고아와 과부가 가난한 채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겨우 렙돈 두닙이 자신의 전 재산인 과부가 있었습니다. 이는 언약공동체 안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두 번째 큰 사랑에 대하여 불순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안에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1) 로마 편에서 일함으로 부유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약공동체를 정말 가난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부자는 구약교회의 직분자들이었습니다. 2) 대제사장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연보궤를 자기들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 3)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성전 연보궤를 세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자들이지만 과부의 가산을 가로채면서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었습니다.(20:47) 예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신 야웨께서 그들에게 중한 판결을 내리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시68:5) 선지자 이사야는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릴 것이라”(사 2:24-27)고 하셨고, 율법은 고아나 과부를 괴롭게 하는 자들에 대해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22:22-24)고 하셨습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킨 서기관들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하신 것입니다.
이 날에 많은 연보들이 연보궤에 넣어졌지만 그 모든 연보의 가치가 가난한 과부의 렙돈 두닙보다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어떤 연보도 주님 앞에는 지푸라기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고전13:3) 가난한 과부가 교회 안에 있다는 그 사실이 교회 안에, 언약공동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주님께서 사랑이 없고 과부의 가산을 삼킨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고와와 과부의 재판장이신 주님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사라져버린,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셨고, 한 세대가 가기 전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2. ‘이웃 사랑이 회복된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진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행4:33ff)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세워진 교회 안에는 핍절한 사람이 없습니다. 특별히 과부들의 가난을 돕기 위해 구제위원을 세웠습니다.(행 6:1-6) 생판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서로 통용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 일은 그 어떤 표적보다 크고 놀라운 표적입니다.
예배 안에서 성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나눔과 섬김! 이게 교회가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교회의 증거로 주시는 표적입니다.(행2:43ff) 교회는 예배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예배로 그 생명이 끝난다면 그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배 안에서 오순절 성령님께서 오셔서 이루신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행4:36-구브로의 바나바) 교회의 표지가 잘 나타난다 할찌라도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성찬에 참여하면서 자기를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임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는 모임이 될 것입니다. 물질의 유무를 따라 가난한 자를 살피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탐심이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거나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연보에 관심이 없으시며, 가장 작은 두렙돈을 넣은 과부를 향하여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고 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이 모든 사람들이 넣은 연보로는 도무지 덮을 수 없었던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들의 필요를 살피며, 위로하였던 것입니다.
교회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섬김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넉넉하게 하고 서로를 부요하게 하는 주의 몸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부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나 자신,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속들과 이웃들과 함께 통용하도록 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의 복음이 가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분은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모든 영광과 부귀를, 존귀를 버리시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가난한 자와 부자를 함께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헤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부요한 자들은 자신의 가진 것을 함께 나눔으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됩니다.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은 그 삶의 변화를 통해 증거됩니다(엡4:28) 참된 복음을 깨달은 자는 내가 번 것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할 몫을 더하여 함께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언약 안으로 부르실 때에 우리의 마음 판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가지 계명을 새겨주셨습니다.
교회는 핍절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백성이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