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4.(주일오후) 마 26:69-75,사53:4-9/소교리27문답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낮아지신 그리스도”
주제: ‘예수님께서는 버림당하시는 고난가운데서도 교회의 터를 굳게 하셨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육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온 생애가 당신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범죄한 피조물인 인생을 위한 고난의 생애입니다. 교리문답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라 고백합니다.(소교리27문답).
1. “그리스도로서의 고난을 홀로 담당하신 예수님”
본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의 제자 베드로를 인하여서 주님께서 고난당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시자 잡는 자들이 왔습니다. 베드로는 칼로서 이를 막아 보려했지만 실패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도망하고 맙니다. 예수님이 끌려가자 베드로는 멀찍히 따라갑니다.
이제 예수님은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은 이미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대로 메시야에게 예언된 고난이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자신의 수제자 베드로까지도 함께 당할 수 없는 극심하고도 독특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의 결국을 지켜보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될 기회를 가졌지만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맹세하지 말라는 주님의 가르침조차 잊고, 심지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그분의 증인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모든 제자들 앞에서 공언했던 그가 이제 그를 버려 ‘너희가 다 나에게 주님을 안다고 말할 찌라도 나는 내가 저주를 받는다 할찌라도 그를 모른다’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저주하는 맹세하였습니다.
베드로도 함께 있을 수 없는 고난, 예수님의 고난은 함께 갈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홀로 이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택하신 그의 백성의 구속이 오직 그에게만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고난은 엄청난 고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홀로 고난을 담당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죄악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비웃을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닭이 곧 울더라” 이는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에서 감당할 몫을 다 행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닭을 울게 하셨어 어느 누구도 그분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일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헛되고 믿을 수 없는 것인지 드러내 보입니다. 오직 언약에 신실하신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하여 줄곧 순종하시며 자기 백성을 위해 모든 고난을 홀로 참으시며 승리하신 주님을 인해 감사의 찬송을 드리며 주님께서 홀로 고난을 담당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갈 뿐입니다.
2. “홀로 당하시는 고난위에 교회를 세우시는 예수님”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라고 시인할 때 자신을 이 예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라고 부인을 하였습니다.(63)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과 그 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주님의 약속(마16:18)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터로 세우심을 입은 사도입니다. 그런데 그가 계집종의 유혹에 흔들려 교회의 터가 되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단순히 예수님의 예언성취를 넘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워질 교회 존속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터로 세웠던 사도의 터가 무너졌습니다. 창세 이후 주님의 말씀이 최초로 깨어지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예수님의 고난을 오히려 더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주님의 언약, 곧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세우시려고 한 당신의 교회를 세울 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비록 사도의 터가 무너진 것같이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 터를 세우셨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이 교회가 허물어지게 하는 위기를 가져왔지만, 그 부인이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시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74,75) 주의 성령께서는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심으로 그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주의 교회의 터로 다시 돌아서게 하였습니다. 그는 세 번 주님을 부인한 후 주님이 자기를 돌이켜 보며 닭의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했습니다.(눅22;61) 마땅한 터로 세움을 받았던 사도와 선지자들이 그 터를 허물고 있을 때 주님은 당신의 큰 고난을 통해 다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는 직무를 이탈한, 자신의 이를 챙기기 위해 주인의 명령을 거역한 불충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의 고난 가운데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실 때 그는 자기가 부인하였던 그 주님께로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회개의 길로 돌이키신 것은 주님이셨습니다. 베드로는 넘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무너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반드시 세워집니다. 반석, 곧 베드로를 통하여 고백되어진 참다운 신앙고백위에 약속대로 주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 반석은 베드로가 아닙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입니다.(고전3:10)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함으로서 예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더 굳은 교회의 터가 되어졌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홀로 자기 백성을 위하여 모든 고난을 참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한 그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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