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언약교회 가정 기도회[2014년11월23일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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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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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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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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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349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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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
막2:1-12, 욥22:1-11 |
다 같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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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
… 죄인을 영접하시는 예수님 … |
부모대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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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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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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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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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 이 |
주제 : “예수님께서 죄인을 영접하시며,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일단의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 집에 모여 있던 무리 때문에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1. “중풍병자가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무리들이 죄인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1장) 그러다가 잠깐 한적한 곳 광야로 가셨다가 다시(παλίν)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도(λσγσς)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1:45에 ‘나음을 받은 문둥병자가 가버나움에서 전파한 일(λσγσς)이 예수님이 다시 들어오셔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마가는 지금 누군가가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있을 때 사람들을 모았는데, 그 모여든 무리들이 바로 이 예수님의 그 능력있는 도, 그 가르치심의 권세, 곧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는 능력과 특별히 문둥병자를 낫게 하신 그 도를 듣기 위해 모여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데리고 왔다가 “무리를 인하여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4) 그런데 원문은 ‘무리들에 의해 데리고 갈 힘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참,눅5:18-19) 곧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무리” 때문이었습니다. 무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그 도, 곧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각색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좇아내시는 그 권세있는 새 교훈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리들은 중풍병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한 이유는 중풍병자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죄인이라 낙인찍은 자들이 있었는데, 병자들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막2:16,요9:2, 참;욥22장)
지금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것은 문둥병자가 전파했던 ‘이 일’ 곧 ‘그 도’를 다시 ‘전파하고 계십니다.(눅4:18-19) 곧 예수님께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오신 복음이며, 주님은 당신의 병낫게 하시는 이 일을 통하여 ‘그 도’, 곧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은 주님께서 전파하시는 귀신을 좇아내시는, 문둥병자를 고치신 그 도를 들었기에 이제 중풍병자를 낫게하시는 도를 들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풍병자가 들어올 때에 ‘그가 죄인이기에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죄인을 영접하지 않음으로서 자신들이 ‘권세있는 새교훈이라’고 칭송하던 그 도가 선포되어지는 일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이라 불려지는 세리 마태를 정죄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그와 또 그의 친구라 불려지는 많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앉아 식사의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일로 인하여 정죄당하실 때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이 죄인들을 부르러오셨다’고 밝히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지금까지 가버나움에서 전파한 도였고, 다시 들어오셔서 선포한 도였던 것입니다.
2.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온 자들의 믿음”
예수님께서는 그를 데려온 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식의 말이나, 또 단순히 ‘예수님은 죄사함의 권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본문에서 중풍병자를 메고 온 자들이 이 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지 못한 이유는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받은 무리들이 ‘죄인으로서 중풍병자가 소위 의인의 회중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모임에 들어올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참,눅5:18b)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던 사람들은 무리들로 인하여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도를 들을 기회가 막히게 되었을 때에 병자를 주님 앞에 어떻게 들여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기관들에 의해 죄의 결과라고 정죄당했던 자들을 고치신 그 말씀이 죄의 결과로 천형과 같은 질병을 당한 이 중풍병자도 낫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가지고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풍병자가 권세 있는 그 도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위해 지붕을 뜯고 침상을 줄로 매달아 예수님 앞으로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이 중풍병자를 메고 나온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가치를 발하는 것입니다. 이 병자를 침상 체 메고 나온 자들도 분명히 이 병자가 죄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오기를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곧 그들은 주님이 그들의 마을에 다시 들리실 때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행하신 사역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이 중풍병자가 큰 죄인이라도 내좇지 않으시고 용납하실 것이라’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로 이 믿음을 이 병자를 데리고 온 자들에게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믿음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그 자리에서 선포하셨습니다.(5)
그렇습니다. 이 병자를 데리고 온 자들의 믿음이 이 병자의 죄사함을 얻게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그 도, 귀신을 좇아내신 그 권세 있는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왔을 때, 주님은 그들의 믿음이 헛된 믿음이 아님을 ‘문둥병자의 죄의 사유하심’을 통하여 드러내 보이셨습니다.(막2:17)
그리고 주님의 이러한 선포는 또 한 가지를 더 선포합니다. 곧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자들, 곧 중풍병자를 죄인이라 정죄하며, 주님의 그 도를 들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배척한 무리들의 심령이 실상은 중풍병에 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그 집에 모인 자들은 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참,막1:28,45)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마치 중풍병자와 같았습니다. 주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마음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는, 마치 그 믿음이 마비된 자들과 같았습니다. 주님이 죄인을 영접하며 병든 자를 낫게 하시는 사역을 보면서도 중풍병자를 죄인이라 배척하고, 주님께 데리고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먼저 요구되어지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죄사함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된 것은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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