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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공(11) 바람직한 장로상 실현을 위해
언약 2017-06-07 추천 0 댓글 0 조회 861

한세공(11) 바람직한 장로상 실현을 위해

 

▲김하연 목사

 

장로들의 심방사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고 실제적이라고 하겠다. 목사의 설교는 분명 성경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풀어 가르치는 것이라면 장로의 심방은 그 말씀의 원리가 실제적으로 성도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지를 살피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사회생활에서 말씀을 같이 듣고 같이 적용해야 하는 입장에서의 장로의 권면은 여러 가지로 현실생활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보약보다 더 좋은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6일자(제1079호)를 시작으로 ‘한세공’(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공간)기획섹션을 시작한 기독교보는 8월 17일자(제1084호)부터 두번째 기획으로 5회에 걸쳐서 ‘장로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다루어 왔다.

 

이제 마지막 제6회 ‘바람직한 장로상 실현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이 주제를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기독교보 ‘한세공’의 독자들은 지면을 통해서 성경에 근거한 진정한 장로상과 우리 교단과 헌법에 근거한 장로의 바람직한 사역에 대하여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장로교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장로의 직분이지만 만일 그 직분이 바로 이해되어지지 않거나 그 직분에 합당한 실천이 따라오지 않을 때에는 장로의 직분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보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많은 부분이 지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당회 안에 갈등문제를 따로 다루어야 할 정도로 오늘날 장로의 문제는 심각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물론 이러한 모든 문제에 있어 그 절반의 책임은 장로와 함께 합력하여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야 할 목사에게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근간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어떤 원로목사의 고백을 듣고 많은 공감을 느낀 적이 있다. 미국 대형교회를 본보기로 삼아 좇았던 과거를 후회하며, 결론적으로 자신의 목회가 실패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누구나 부러워 할 만 한 명성과 큰 교회를 이루어 냈지만, 잘못된 목표, 허상을 좇아온 자신의 목회관 자체가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는 하지만,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적은, 그래서 성도들이 앞만 보면서 예배하는 교회의 목회는 실패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한 충격이다.

 

주님의 참된 제자로 양육하기 위해서 수많은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하지만, 제자훈련마저 자신의 영적 수양을 위한 제자훈련이 되어버린다면, 머리만 굵어지는 그 제자훈련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앞만 바라보는 교회를 속칭 ‘극장식 교회’라고 하고, 자기에게만 관심 있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교회를 ‘식당형 교회’라고 한다. 이 두 유형의 교회들의 특징은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교인들의 이런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은 당연 목사와 장로들의 신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앞만 보는 목사, 앞만 보는 장로 그래서 이루어 낸 대형교회라면 이는 세상의 성공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세상의 성공주의는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게 된다. 자신의 신앙, 자신의 직분, 기왕이면 최고의 직분인 장로까지 올라가보고(?) 싶은 욕심이 간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직분에 도달하게 되었으면 이젠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으므로 특권을 누리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은 언필칭 권위주의에 빠져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유혹이 아니겠는가? 누가 우스갯소리로 이야기 하듯이, 정말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가?

 

목사나 장로는 권위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 목사와 장로가 모이는 당회는 행정에 목숨을 걸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교인들도 그대로 따라가게 될 것이다. 목사나 장로는 본질에 충실하여 목양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사와 장로가 목양에 주력하면 한 영혼 한 영혼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면 교인들이 본을 받게 된다. 그 때 교인들은 옆을 돌아보게 될 것이요, 그때 교회는 교회다워지게 된다.

 

 

앞선 글들을 통해서 많은 건전한 제안들이 올라왔다. 반복되는 지적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소위 ‘장로의 직무’에 관한 것이다. 우리 교단의 헌법 교회정치 제66조에는 ‘장로의 직무는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이 1항에 언급되어 있지만, 2항부터 8항은 전부 교회와 성도들을 돌아보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기도하고 목회를 돕기 위한 일들로 가득한데, 1항에만 너무 매인다는 지적들이었다. 당연히 좋은 지적들이다. 1항에만 집중하고 그 다음 더 중요한 일들에 소홀히 한다면 언급된 여러 문제점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 대안들도 제시되기도 했다. 오로지 직무와 은사를 따라 행해야지 결코 직급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하여, 장로를 세우는 과정에서 헌법을 따라서 무흠 7년 이상의 세례교인들에게 기회가 균등히 가도록 해야지 관례적으로 장립집사 중에서 장로를 선출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또는 화란 개혁교회 등의 예를 따라서 장로의 시무 연한을 3-4년으로 하고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하자는 제안이나, 장로의 직무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교육이 필요하고 심지어 장로에게 신학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을 볼 수 있었다. 다 원리적으로 합당한 지적과 제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언급된 지적들과 제안들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절망스럽게도 이러한 문제들은 아무리 외쳐보아도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직분의 계급적 인식,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하는 직분으로써의 항존직 의식보다는 한번 장립 받으면 영원히 간다는 항존의식, 말씀과 교리적 확립 가운데의 치리보다는 인간적인 권위의식 가운데의 소위 어깨너머로 배운 당회원의 직무를 답습하는 인식 등은 새로운 개혁의 필요성을 의기소침케 한다. 어떤 면에서 그 원인은 오랫동안 지금의 장로제도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이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본질을 위한 개혁을 향해 나가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의 글들에서 많은 문제와 제안들이 발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개혁을 향한 어떤 의지도 없이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이요 문제도 그대로 안주하고 답습될 수밖에 없다.

 

1997년 IMF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이 그 극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구조조정 등의 뼈아픈 고통을 잘 감내해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바른 직분의 이해에 관한 개혁이 없이는 한국 교회, 우리 교단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가 없을 것이다.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장로는 장로다워야 하고 성도는 성도다워야 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현장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 한국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수년간 고민해 왔다. 주변에 많은 목회자들이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소위 셀교회, 가정교회, 두 날개 양육훈련 등을 도입해서 본질에 더욱 충실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그러한 훈련들은 교우를 양육하려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양육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들로 장로교 교회정치의 근간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교회는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사실 그런 경우들도 얼마든지 보아왔다.

 

장로교회의 정치는 노회와 교회로부터 치리를 위임받은 목사와 교회로부터 치리를 위임받은 장로들의 협력으로 교회가 다스려지고 목양되어져야 하는 것이 기본 원리가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해도 교회에서의 목사와 장로의 본질적인 사역이 도외시되거나 왜곡된다면 결코 바르고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개혁을 위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앞서 지적되고 또 제안된 견해들이 모두 바르다고 해도 한꺼번에 고쳐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 가능한 부분부터 그리고 중요한 부분부터 바로 세워가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본 투고를 통해서 그래도 가능한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장로의 ‘목양장로’로서의 역할이다.

 

필자가 섬기는 대구삼승교회에서는 작년부터 시무장로들과 호산나교회(부산)의 ‘목양장로’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부터 12명 장로들 한 분 당 교우들 50-60명씩 배정을 하여서 심방과 기도의 ‘목양 장로사역’을 부탁하고, 함께 주님의 맡기신 양떼들을 섬기고 나가기로 하였다.

 

적어도 필자가 확신하기에는 장로의 본질은 ‘심방을 통한 교우를 돌아봄’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도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목사와 장로에게는 공통으로 ‘목양사역’에 대한 요소가 있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행하는 가운데 “너희는 자기와 온 양떼를 위하여 깨어 있으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목양하게 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다스리는 자, 장로)로 삼으셨느니라”(행 20:28, 필자 직역).

 

물론 초대교회인 에베소교회의 장로는 오늘날 목사와 장로의 직분을 통칭한다고 할 수 있다. 명백한 것은 목사든 장로든 장로를 세움은 ‘목양하고 주님 교회의 양떼를 돌아보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목사와 장로는 흔히들 동반자 또는 동행자라고 한다. 그러나 행정에 있어서만 동반자 의식은 동반자라기보다는 자칫 견제세력이 되기 쉽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분의 양떼를 돌아보는 명령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는 목사와 장로는 적어도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주님의 양떼를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고 인도해야 할 같은 책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목사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 충성을 다하고,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에 결코 소홀함이 없어야 하지만, 장로들은 열심히 성도들을 심방하여 그들이 말씀대로 바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특별한 아픔들이 성도들에게 없는지 살피고 목회자들과 공유된 정보와 기도제목을 나누고 살펴야 할 것이다.

 

장로들의 심방사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고 실제적이라고 하겠다. 목사의 설교는 분명 성경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풀어 가르치는 것이라면 장로의 심방은 그 말씀의 원리가 실제적으로 성도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지를 살피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사회생활에서 말씀을 같이 듣고 같이 적용해야 하는 입장에서의 장로의 권면은 여러 가지로 현실생활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보약보다 더 좋은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장로들의 이러한 사역은 단순히 구역장이나 소그룹(목장, 셀그룹, 순) 리더들의 사역을 훨씬 넘는다. 장로의 목양사역은 소그룹 리더들의 소속 멤버들을 돌아보는 일을 포함하지만, 한편 장로의 목양과 돌봄의 사역은 ‘감독자’와 ‘목회적’ 관점에서 지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초신자들이나 새가족들을 교회의 장로가 인도해 주고 교회를 소개해 주고 하는 일 등은 그들로 하여금 훨씬 교회에 쉽게, 잘 적응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목양 장로의 상세한 사역 방법과 목회자와 협력하는 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미나에 참석해 보고, 최홍준 목사 저,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국제 제자 훈련원, 2009)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이 책의 제목이 상당히 도전적이어서 얼핏 많은 장로들의 심기를 상하게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 책에는 목양장로 사역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실례들과 방법들이 가득 기록되어있고, 많은 공감대를 느끼게 할 것이다.

 

 

본질에 충실하자. 장차 주님은 천국에서 목사와 장로들에게 얼마나 큰 예배당을 지었고, 얼마나 많은 양떼를 모았는지를 묻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얼마나 신실하게 잘 돌보고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했는지를 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목사와 장로가 본질에 충실하여 진정 목양에 온 힘을 쏟을 때에, 진정한 행복한 장로 행복한 목사가 되지 않을까? 그 때에 성도들은 앞선 교회의 감독자들을 좇아서 자신들도 옆을 돌아보고, 다른 이를 배려하며, 섬기지 않겠는가? 그 때에 진정 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실천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제자훈련이 아니겠는가?

 

한국교회, 아니 우리 고신교단의 교회를 통하여 본질에 충실한 건강한 목사, 건강한 장로 그리고 건강한 성도들의 모습들로 인하여서 건강한 교회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글·김하연 목사 (대구 삼승교회)/ 히브리대학에서 구약학을 전공했으며, 고신대학 대학원에서 본문비평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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