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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산책(1~6장/허순길 목사님) -최성림
최성림 2014-08-02 추천 1 댓글 0 조회 377

교회사 산책 서평(1-6장)

발표자 : 최성림

1. 로마화재와 교회의 수난

네로황제 이전까지 로마와 기독교회의 관계는 갈등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의 글을 통하여서도 알겠지만 기독교는 로마에 우호적인 표현들을 많이 했고, 로마는 기독교를 거저 유대교의 한 분파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네로가 자신이 로마시의 정비를 위해 지른 불이 원인이 되어 로마시의 2/3가 불타자 그 화재의 혐의를 기독교인들에게 씌웠고, 그 이후로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교회는 250여년간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사단은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때까지 하나님의 교회라 불려지던 유대인들을 통하여 교회를 핍박하다가, 예루살렘성전이 완공된 후(AD64년)부터는 이방인들을 통하여서도 교회를 핍박하고 자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복음은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왕성하여져갔습니다.


* 네로의 로마화재가 교회의 외부적 핍박의 시작이지만, 이 핍박을 통하여 기독교초기에 복음이 더욱 건전하게 확산되고 교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예루살렘성의 몰락

유대인들은 원래부터 로마에서의 독립을 위해 자주 반란을 일으켜왔습니다. 이런 유대를 다스리기 위해 로마가 분봉왕으로 에돔족속(이두매사람) 헤롯을 세웠는데, 헤롯일가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해 성전을 지어주는 등의 일을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카비왕조가 (정치적으로 그리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다시 로마로부터 독립을 꾀하며 열심당원들을 중심으로 반란을 꾀하다가 AD66년 난공불락의 성이라 불려지던 마사다에서 총독 플로루스의 악정을 견디지 못한 유대인들이 마사다에 주둔한 로마군대를 섬멸하고 마사다를 취하였다. 그리고 이로부터 시작하여 곳곳에 유다의 반란이 이어져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로마가 네로의 위를 이은 베스파시안황제가 그의 아들 디도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끝까지 항거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결국 성전까지 불타고 무너지면서 유대가 최후를 맞았다. 이때가 예수님께서 스천하신 후 한 한세대가 되는 AD70년입니다. 헤롯성전은 완공된 지 7년이 되는 해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고, 유대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옛 이스라엘인 유대를 친히 로마 군대를 통하여 심판하신 것입니다.

* 이 사건은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그 음란함을 버리지 못라여 하나님을 떠나 배교한 결과로 죽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실상은 신부 이스라엘이 신랑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혼인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중 얼마라도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셨지만, 종국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주님의 예언대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성전은 돌 위에 돌하나 남지 않고 무너진 것입니다.


3.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새로운 진리를 찾아다니던 철학자 저스틴이 한 연로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 30여년동안 여행과 전도, 저술활동을 통하여 복음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그의 생애는 여러모로 바울사도와 유사한데,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이방땅인 다소에서 태어났다면, 저스틴은 이방인으로서 유대지역인 세겜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두 사람이 다 휼륭한 교육을 받아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로마에서 순교한 것도 닮았습니다.


저스틴은 특별히 2세기 중엽 기독교변증가로서 기독교진리를 로마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하였는데, 그의 대표작 ‘변증(Apology)'는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에게 복음을 변호한 책으로 ’기독교신앙을 밝히는 한편, 박해의 부당성을 논증한 책‘입니다.

더욱 그는 기독교진리가 모든 그리스철학의 성취와 절정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되심을 확증하여주는 히브리예언을 귀히 여겨 그리스도인을 가까이하면서, 유대인들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또 여행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독교신앙을 변호하다가 주후 160년경 로마에서 밀고를 당해 붙잡혀서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는 그를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이라고 부릅니다.

* 저스틴은 교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전해주는 인물로서 그의 사상은 터툴리안이나 오리겐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그는 참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때 오직 진리를 위해 살았으며, 이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4.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캅(Polycarp)의 순교

전하는 바에 의하면 폴리캅은 사도요한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사도적인 교회와 직접 관게를 가진 마지막 교회지도자입니다. 그가 서머나의 감독으로 있을 때 박해가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폴리캅이 죽으면 교회의 미칠 영향을 염려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피하였지만, 두 번째 체포를 당할 때에는 오히려 자신을 잡으러 온 무장경찰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대접한 후 두 시간의 여유를 얻어 기도한 후 붙잡혀 갔습니다.

그를 존경하고 죽을 것을 안타깝게 여긴 로마제국의 관리들이 ‘시저(로마황제)를 주라 부르고 그를 분향하면 살려줄 것이라’고 권할 때 그것을 거절함으로 투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투기장에서 총독이 ‘기독교인을 무신론자라 칭하며 그들과의 관게를 끊으면 살려주겠다’고 했을 때 도리어 총독과 무리들을 향하여 ‘무신론자들아 사라져라’고 외치며 참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재차 그리스도를 저주할 것을 요구하는 총독에게 ‘80년동안 내가 그를 섬겨왔는데 그는 내게 어떤 해도 입힌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어떻게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하며, 총독을 설득하다가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을 때 ‘당신이 붙이는 불은 한 시간 동안 타고 꺼질 것이지만 앞으로 올 심판의 불은 영원히 타게 될 것이요’하며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순교는 그 후에 일어나는 로마제국의 박해 앞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 순교자의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했습니다.


* 폴리캅은 그의 순교시 있었던 일화로 우리에게 유명하지만 사실 그가 더 중요한 교회사적 사건은 그가 마르시온이단에 대하여 가장 강경하게 반대한 일입니다. 마르시온을 만났을 때 그를 사탄의 맏아들이라‘ 칭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다 적그리스도요, 사단의 아들들이라고 단호하게 가르쳤습니다.

5. 영을 분별한 신학자 이레니우스

폴리캅의 제자인 이레니우스는 당시 교회 안의 가장 큰 이단이었던 영지주의(Gnosticism)를 분석하고 비판한 최초의 교부로, 그는 사도요한이 ‘적그리스도라’고 분석한 영지주의를 신학적으로 분석 비판하고, 사도적교리를 파수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는 [이단에 대한 배격]이라는 책을 통하여 영지주의자들이 영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원상회복하시기 위하여 둘재 아담이신 당신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구원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도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서 영지주의의 확산을 막고 기독교신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이레니우스는 이단들과의 논쟁을 할 때 항상 성경을 사용하면서, 더불어 900여권에 이르는 고대 문헌들을 두루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들이 대부분의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고 있기에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철학적인 요소가 많고, 인본주의에 근거한 것들도 많아서 이후에 펠라기우스학파나 아르미나안 주의자들도 그의 글을 인용하여 정통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6. 금욕의 신학자 터툴리안

로마의 변호사였던 터툴리안은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이 순교시에 보여준 영웅적 용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개종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하고 강직한 성격을 소유한 엄격주의자였는데,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의 엄격한 윤리생활과 금욕적인 삶의 영향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라틴어에 아주 능통했는데, 글을 쓸 때 라틴어를 다양한 저서에 사용하여 라틴어를 교회의 공식언어로 사용하게 하는데 일등 공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시고 삼위로 게시는 삼위일체이시다’는 삼위일체같은 신학적인 용어들은 모두 터툴리안이 라틴어로 만든 용어들입니다.

이런 엄격한 성격으로 인하여 기성교회가 점차 윤리생활에서 해이해지고, 교회생활을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더 엄격한 금욕주의생활을 하는 몬타누스파(Montanism)에 가담하고, 그 후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을 대는 몬타누스파의 금욕생활도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더 엄격한 생활을 하는 집단을 만들었다고 알려집니다.(어거스틴)


그는 [순교자들에게]라는 저서에서 순교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죽음은 세상의 감옥생활을 피하게 되는 길’이라고 하면서, ‘순교는 교회의 씨’라고 하면서 순교를 피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터툴리안은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살기를 거절하고 시대의 교회의 흐름을 거슬린 자로, 오늘 날의 말로하면 ‘분리주의자’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의 엄격한 생활은 오고가는 많은 세대에 성도의 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터툴리안이 살았던 시대는 사치, 비도덕, 잔혹성이 강했던 시대로 그는 이런 시대상을 조잡하게 여겨 그런 시대에도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개종했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흠 없는 신부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자녀인 사제, 감독, 그리고 성도들은 반드시 순결한 믿음과 삶을 살아야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엄격한 금욕주의적인 삶은 후에 자신을 몬타누스주의에 빠지게 만들었고, 그가 쓴 많은 좋은 저서들이 로마교회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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