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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중요한가?
언약 2014-07-28 추천 0 댓글 0 조회 842

교회가 중요한가?

 

얼마 전 일이다. 학생들과 대화를 갖는 자리에서 한 학생이 교수님, 복음이 중요하지, 교회가 중요합니까?”라는 약간 도전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집회의 강사를 초청함에 있어서 감리교회 목사이면 어떠하며, 장로교회 목사이면 어떠하냐, 설교만 잘하는 분이면 되지 않느냐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이 말은 들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신학교육과 우리 교회 안의 개혁주의 교회관에 대한 새로운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상 이렇게 말하는 학생은 자기 한 사람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고, 상당한 수의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 교회 생활의 정신적인 기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복음을 강조하면서 교회를 등한히 여기는 정신적인 기류가 우리 주변에 편만하고, 우리들의 교회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들어오고 있다. 복음이 중요하지 교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먼저 교회를 허물고 그 다음에는 복음을 빼앗가가려는 사탄의 간교한 책략에서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복음과 교회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등하히 생각할 수 없다. 복음 없이 교회가 있을 수 없고, 교회 없이 복음이 보존될 수 없다. 교회는 복음으로 태어난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는 믿을 수 없으며, 믿는 이가 없이는 교회가 설 수 없다(10:13-15).

 

그런데 이 복음은 막연히 어느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교회에게 주어졌다(16:18-19).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 복음을 순수하게 파수할 책임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교회가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것을 순수하게 보존할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가 복음에서 떠날 때, 경고를 주고 계시다. 갈라디아교회들이 받은 복음에서 이탈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이 교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책망하셨다(1:6).

 

교회가 복음을 순수하게 파수할 사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주님께서 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신 편지에 더욱 인상깊게 나타나고 있다. 그분의 말씀을 지킨 교회들을 칭찬하시고(2:9; 3:8), 그렇지 못한 교회들을 책망하시면서 각 교회들에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신다(2:7, 11, 17, 29; 3:6, 13, 22).

 

교회는 주어진 복음의 순수성을 파수할 사명을 지고 있다. 교회는 복음의 요새이다. 교회없이 순수한 복음의 파수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중요하다.

 

이제 누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교회는 중요하다. 그런데 감리교회도, 다른 교회도 다 교회가 아닌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고,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언뜻 들을 때, 매우 타당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지난 2천년의 교회 역사는 단순하지 않았다. 온갖 이단들이 등장하여 성경을 믿고 복음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혼선을 일으켜왔다. 이 때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그 내용에 대한 바른 해석과, 순수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임을 밝혀주었다.

 

우리 개혁주의 장로교회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학의 후계자들의 성경에 대한 이해를 가장 바른 것으로 알고, 이를 따라 가르치며 설교하고 있다. 개혁주의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이설의 침투로 교리적인 위기를 여러 번 겪었으나, 그 때마다 이를 물리치고 교리적 순수성을 지켜왔다.

 

감리교회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교리를 부인하고, 17세기 개혁주의자들이 정죄한 아르미니안 교리(Arminianism)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로써 이 교회는 실상 인간의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이런 다른 이해는 곧 설교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설교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렇다면 복음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고 있는 설교자를 개혁주의 강단에 초청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개혁주의 교회를 허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교회는 복음을 지키는 요새가 되어야 하고, 이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는 산 위에 세운 성이 되어야 한다.

 

오늘 교회 세계는 더욱 다양해졌다. 같은 이름을 가진 장로교회 안에서도 복음을 달리 이해하게 되는 시대가 되어졌다. 그러기에 한국 안에서도 고려파 장로교회가 있고, 기독교 장로교회가 있으며, 통합파 장로교회 등이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각기 왜 내가 고려파 장로교회에 속해 있는지를 물어야겠다. 이 교회가 개혁주의 교회로서 주의 복음을 가장 순수히 파수하고 전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내가 이 교회를 택하고, 이 교회에 속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이 교회의 건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이 교회 안에는 순수한 개혁주의 입장의 설교자의 설교만이 들려지게 해야 한다.

 

교회와 복음, 복음과 교회, 이 둘은 결코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다. 참 교회에 대한 무관심은 곧, 복음에 대한 무관심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교회의 선진들은 참 교회란 순수한 복음을 설교하는 교회라고 했다. 개혁주의 교회 건설이란 표어를 내세워온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표어의 뜻을 되새기고, 교회를 보고 분별하는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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