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고신총회 후기(개혁정론에서)
최성림
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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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을 뜻하는 총회와 ‘치리회’인 총회는 구별되어야: 제64회 고신 총회 후기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지난 주간 9월 23일(화) 오후 3시부터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교단 총회가 천안에 있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회하여 25일(목) 저녁 8시를 넘어 파회하였다. 2박 3일 동안 무려 110여 개의 안건이 처리되었다. 특히 총회 개회 전부터 전국 교회의 관심을 끈 고신대학교의 미래를 위한 9인 대책위원회의 보고 역시 상당한 진통과 긴 토의 시간이 있을 것이 예상되었다. 이 안건은 몇 차례에 나누어서 열띤 토의 시간을 가지기는 했지만 결국 15인 대책위원회를 구성함으로서 일단 잘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회에서 느낀 개인적인 소회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적어보았다.
충분한 토의 시간을 거쳤는가?
약 110개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총회로 모인 2박 3일 동안 총대들은 거의 쫓기다시피 지냈다. 첫째 날은 개회예배에 이어서 임원 및 각종 이사 선출로 시간을 다 보내었고, 그런 중에 이 날 저녁에는 늦게까지(위원회마다 다르지만 밤 11시를 넘은 위원회도 있었을 것이다) 상임위원회별로 모여서 위원회를 조직하고 각 상임위원회에 올라 온 안건을 다 처리하였으며, 이튿날인 수요일 오전에는 자매 및 교류 교회에서 온 사절단과 군목 및 교회연합단체의 인사가 있었고, 오후에는 유안건(8개)의 보고와 고신대학교의 미래를 위한 9인 대책위원회의 보고를 받고 저녁에는 수요기도회를 드린 이후 각 부회로 모여서 조직 및 안건토의 시간을 가졌다. 목요일은 아침부터 각 상임위원회에서 이미 결의한 약 102개의 안건을 본회에서 다루기 시작하여 6시간 30분 만에 마침내 모두 처리하였다. 그 날 본회에서 처리한 안건 당 시간을 계산해보니 한 안건 당 4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본래 26일(금요일)까지 총회의 일정이 잡혀 있고 이에 맞추어 각 노회에서 여비와 숙식비를 계산하여 지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서둘러서 회의를 진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총회의 의장이 앞장서서 회의를 서둘러서 진행하였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의장이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서 의안을 통과하여 총대의 항의를 받는 일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총회 임원들이 목요일 오후까지 회의를 마치려고 아예 작정을 한 것처럼 보였다. 본래 금요일까지 회의 일정이 잡혀 있지만 하루 앞당겨서 마치는 것이 마치 총회 임원회가 총대들의 편의를 상당하게 봐 주고 있고 크게 인심을 쓰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루 일찍 마친 것이 마치 총대들에게 큰 선물이라도 선사하는 것처럼 보였고, 생계를 제치고 참석한 장로 총대들과 주일을 준비해야 하는 목사 총대들을 크게 배려한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총회가 과연 최고 상회의 치리회로서 바람직한 것일까? 총회에 상정된 안건은 각 노회와 각 기관에서 심사숙고해서 제출된 것들인데 비해서 총회에서 다루어진 토의과정과 처리과정은 너무 신속하였다. 혹시라도 졸속으로 처리된 안건은 없는가?
더구나 이번 총회는 본래 총회규칙에 나와 있는 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월요일에 개회를 해야 했지만 아무런 해명이 없이 화요일에 개회하였다. 작년에는 추석이 주중에 있어서 월요일보다는 화요일로 늦추어서 개회한 것이 유익하였으나 올해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화요일에 개회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명 없이 화요일에 개회하였다. 결국 총회에서 이 점이 지적되었다.
임원 개선 이전에 총회규칙 수정 건을 다루려고 한 것은 너무 성급하다
총회 첫째 날의 순서는 개회예배 후 임원 및 이사 선출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총회 서기는 임원 개선 이전에 이번 총회에 상정된 총회규칙 몇 가지를 수정할 것을 본회에 제의하였다. 총회 서기가 설명한 총회규칙 수정안 첫 번째는 제17조 1항의 ‘법인 이사와 감사는 총회의 타 이사 및 감사와 겸할 수 없다’는 조항을 여기에 총회의 임원까지 포함하여 ‘총회 임원, 각 법인 이사, 감사는 겸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수정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총회규칙 제8조 9항에서 ‘총회임원이 부회 및 상비부의 임원을 맡지 않도록 한다’는 현행 조항을 ‘특별부(재판국, 감사국,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원에 속하지 않아야 하며’를 첨가하여 수정하는 제안이었다. 따라서 위 두 수정안은 그 자체로 보면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목적과 내용의 제안이라고 할지라도 절차가 정당해야 한다. 총회 임원회는 수정안을 금번에 새롭게 선출되는 임원에게 먼저 적용하자는 취지에서 성급하게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회 순서에 따르면 총회규칙 수정안은 임원개선 이후에 본회에서 다루어야 하는 안건이었다. 또 이러한 규칙수정은 본회에서 다루는 것보다는 법제위원회에서 충분히 숙고해야 하는 등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다. 어쨌든 총회 임원회의 뜻대로 새 임원 개선 이전에 총회규칙을 수정하지는 못했으나 이번 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아무리 선한 목적과 의도와 내용을 가진 제안이라고 할지라도 정당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총회 중에 임원 및 유지재단 이사 이․취임식 단촐하게 치러
신임 총회장 김철봉 목사는 총회 내내 총회 임원이 권세를 부리고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요 봉사자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몇몇 정치인들의 화환 외에는 다른 축하 화환을 총회 장소에서 볼 수 없었고, 지금까지 관례처럼 해오던 총회장 및 임원들에게 흔히 휘장분배라 해서 축하 꽃을 전달하는 순서를 폐지하였고, 최근 몇 년 동안 총회가 마친 후에 별도의 행사로 치렀던 총회유지재단 이사 이임식과 취임식도 총회 기간 중인 수요일 저녁 기도회 시간에 가졌다. 총회장은 이렇게 함으로써 약 1천만 원의 총회 경비를 절약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름다고 신선한 모습이었다.
회중을 뜻하는 총회와 최고 치리회로서 총회(總會)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의식 중에 우리 몸에 배인 교권주의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총회장을 단순히 총회의 의장으로 보지 않는데서 이 점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총회가 열린 신학대학원 강당 앞에는 의장이 사회를 보는 강단 앞에 ‘총회장’이라고 붙인 글이 있고, 또 강단 뒤에 앉는 의자에는 ‘부총회장’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다른 임원들의 자리에는 그냥 ‘서기’ ‘부서기’ ‘회록서기’ ‘부회록서기’ ‘회계’ ‘부회계’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총회규칙을 따라서 ‘총회장’이 아니라 ‘회장’으로, ‘부총회장’이 아니라 ‘부회장’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그냥 ‘회장’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총회장’으로 불리는 것이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냥 ‘회장’ 하면 당회장이나 노회장과 구별할 수 없어서일까? 이 점은 하나님의 백성과 회중을 뜻하는 총회(히브리어로 ‘카할’)와 최고 치리회로서 총회(總會)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총회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과 회중을 뜻하는 총회(히브리어, 카할)이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여러 군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신명기 23장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을 열거하고 있다. 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여호와의 총회’는 치리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노회에서 파송한 총대들처럼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뽑힌 특별한 자들의 모임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 사용된 ‘총회’는 히브리어로 ‘카할’이라는 말인데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와 병행할 수 있는 용어이다. 민수기 16장 2절을 보면 총회가 곧 회중이라는 것이 밝히 드러난다.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둘째, 최고 치리회로서 총회(General Synod)이다. 이때 총회는 당회와 노회와 함께 치리회이다. 그래서 이 총회는 각 노회에서 상회에 파송한 총대들의 회인 최고 치리회이지 하나님의 백성인 회중 곧 교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따라서 총회장은 총회의 의장에 불과하다. 당회장으로서 의장과 노회장으로서 의장은 그 속성상 동일하다. 그래서 헌법 교회정치 제9장은 치리회를 다루면서 각 치리회는 고유한 직무와 권한이 있음을 규정하고 있고 나아가 제102조는 치리회의 회장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지 총회장에 대해 특별히 말하고 있지 않다. 즉 당회장이나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모두 치리회의 의장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또 교회정치 제103조는 치리회 회장의 권한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각 치리회의 의장으로서 가지는 권한을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총회장이라고 해서 당회장과 노회장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로 이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 '총회'라는 용어를 지금 우리가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치리회인 총회를 가리켜서 흔히 ‘성 총회’라고 부르기도 하고 총회장을 전국교회를 대표하는 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총회장을 그냥 ‘의장’, ‘회장’으로 부르는 것을 총회장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생각한다. 총회장의 위상을 높게 생각하니까 결국 총회장단 선거가 과열될 수밖에 없다.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잘못된 용어 선택에서 교권주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우리 교회 생활 중에 속히 용어를 구별하여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학대학원 교수회 연구보고서를 기각 혹은 수정 채택하므로 신대원에 대한 불신 노출해
이번 총회는 유안건으로 지난 총회가 신학대학원 교수회에서 맡겨 연구하게 한 보고서가 몇 개 있었다. 첫째는 미혼 강도사 목사 안수 및 미혼자 임직 문제에 대한 보고서, 둘째는 담임목사직의 자녀승계에 대한 보고서, 셋째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보고서였다. 그런데 위 세 보고서는 본회에서 기각되거나 혹은 일부 수정된 뒤 채택되었다.
첫째, 미혼 강도사 목사 안수 및 미혼자 임직 문제에 대한 보고서는 기각되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교회의 청빙이 있다면 미혼자라도 목사 안수를 줄 수 있고 그런 조건의 사람을 교회가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개 교회와 당사자가 결정할 것이고, 미혼자의 임직문제로 개 교회가 전반적으로 살펴서 결정할 것이며 단지 미혼이란 이유로 임직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찬성 91명, 반대 194명으로 안이 부결되었다.
둘째, 담임목사직의 자녀승계에 대한 연구보고서는 신학위원회에서 일부 수정하여 총회에 보고하였고, 총회는 수정안을 받았다. 연구보고서의 결론은 “담임목사직 자녀승계 방지 조항을 총회의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학위원회는 이를 수정하여 담임목사직 자녀 승계 방지 조항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개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을 총회에 보고하였고, 총회는 이를 받았다.
셋째는 이광복 목사의 세대주의 종말론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광복 목사는 세대주의자와 매우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고, 그의 징조들 해석과 성경해석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불건전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광복 목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많은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되며 이광복 목사가 그의 종말론에 대한 불건전한 세대주의적 해석과 사도신경에 대한 기본적인 주장을 교정하고 철회하지 않는 한 고신 교회는 그를 초청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신학위원회에서는 보고서의 결론을 일부 수정하여 ‘그를 초청할 수 없다’는 결론을 약화시켜서 다음과 같이 총회에 보고하였다: “1) 이광복 목사의 해명서에 대한 교수회의 보고서를 그대로 받기로 하다. 2) 교수회가 보고서를 통해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 해석에 관련한 부분은 한국교회가 주의해야 할 종말론의 내용과 유사한 것임을 지적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며, 본 교단 교회에 경각심을 일깨운 것으로 사료된다. 3) 따라서 본 교단 교회는 위의 내용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본회는 신학위원회의 보고보다도 훨씬 더 약한 결정을 내렸다. 즉 “2번 내용은 이미 보고서 안에 있으므로 1, 3번을 받기로 하고” 가결되었다. 다시 말해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을 우리가 ‘유념’하는 정도에 그친 것으로 받았다. 이 건이 본회에서 다루어질 때 심지어 이광복 목사의 견해는 신학적으로 건전한 역사적 전천년설이며 오히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종말론에 문제가 있으며 신대원 교수회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제출한 위 세 유안건에 대한 보고서가 이같이 기각 혹은 일부 수정되므로 이번 총회는 신학대학원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표출하였다. 신학대학원 교수들은 고신 교회의 신학과 사상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연구한 보고서를 이같이 처리한 것은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신학대학원의 교수들과 이들의 신학과 교육이 총회의 지도 아래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위 유안건에 대해 교수회에 연구를 의뢰할 때는 근본적인 하자가 없는 한 존중하고 그대로 수용할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 보고서를 다룰 때 신대원 교수회의 신학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신학대학원 혹은 교수들과 교회 사이에 큰 괴리와 불신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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