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의 계절에 고신총회도 지난 달 23일부터 25일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회됐다. ‘교회! 이 땅의 희망’이라는 표제로 전국 36개 노회로부터 보냄을 받은 465명의 총대들이 치리회로서 맡겨진 책무를 감당하기 위해 모였다.
고신교회는 역사적인 개혁교회의 전통과 개혁주의 신앙을 따라 고백하는 교회이다. 그러기에 총회로 모여 다뤄야 할 것은 교리와 예배와 교회정치를 말씀과 고백에 따라 잘 살피는 일이다. 우리가 경건과 신학에서 ‘개혁파’ 다움을 어떻게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할지를 찾고, 또한 배도의 어두운 시대 속에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존귀하신 뜻을 말씀과 성령에 의탁함으로써 믿음으로 받으며 순종으로 나아가야 할 일이다. 서로 생각과 견해와 해결 방식이 달라 부딪힐 때는 먼저 말씀의 원리에서 해답을 찾고, 그리고 교회의 역사에서 조언을 구함으로 하나 됨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말씀의 원리는 개혁주의이다. 개혁주의는 성경과, 성경에서 나온 신조와 신앙고백, 그리고 이로부터 나온 교회정치를 갖고 교회의 개혁을 이루어가는 것을 믿는 자들의 신앙고백이다(성희찬, 개혁신앙 2013년). 그러므로 모든 논의와 결정에 있어 준거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교리의 표준인 말씀으로 말하고 말씀으로 결정하느냐이다. 고신교회의 역사는 고려신학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교신앙과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의 전승이 고려신학교 설립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신사참배를 배교와 우상숭배로 여겨 검속과 투옥과 죽음으로써 신앙의 정절을 지켜냈던 선진들이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견제와 소외를 당하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보수주의 정통신학을 ‘교회의 신학’으로 삼아(유해무, 개혁신학과 교회, 제22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즉 고신정신의 요체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우리에게 물려줬다. 그러기에 개혁신앙의 후예가 된 우리는 시대마다 교묘한 방식과 모습으로 교회에 들어온 불구대천의 원수들을 복음의 진리의 역사로 조명해 신령한 전쟁에서 승리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많은 헌의안과 현안들 중에서 단연 초미의 관심은 ‘고신대 미래 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상정한 안건이었다. 총회가 막 임박할 즈음에 나온 내용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총회 총대들조차도 회자되는 황당한 소문(?)에 여기저기서 긴급 모임으로 입장과 대처 방안을 찾기에 급급했다. 주목의 핵심적 당사자인 신대원 교수회가 그랬고, 수도권 중심의 노회들과 총대들이 사안의 역사성과 적실성을 고민하며 고신신앙과 역사를 따라 다루는데 허둥댔다. 직전 총회의 회장단은 이런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총회 전 주간에 기독교보를 통해 총회적 노력이 시급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기고하면서, 이는 교회의 신학과 정체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했다. 심지어 다른 견해를 가지면 대승적이지 못하고 기득권을 지키며 지혜롭지 못한 자들이라고까지 했다.
교단 역사에 있어 실로 중차대한 이런 일은 적어도 모든 교회가 함께 성경과 전통에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구한 연후에 행보됐어야지, 숫적으로나 지역적 담합으로 실적 내듯 황급히 밀어붙일 사안은 아니었다. 절차와 구성상으로도 하자가 있고, 반대 기류에 놀라서 졸속과 꼼수가 다분한 수정안으로 발의한 것만 보더라도 이번 총회에서는 수긍할만한 결정이 도출될 사안은 결코 아니었었다. 그러기에 이 안건은 격론 끝에 전격적으로 기각됐고, 다시 교회의 지혜와 총의를 제대로 모아서 재론하기로 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고신총회가 너무 부자가 됐다. 갖게 된 것이 많고 누릴 것이 많다 보니, 총회는 개혁주의 영역주권의 원리를 무시한 채 모든 것을 관장함으로써 발휘되는 변질된 교권(남용과 편중과 개입)에만 충일할 수밖에 없었고, 교회는 신조중심적인 개혁신학의 교회론과 직분론이 거북하게 됐다. 목사와 장로는 기도로써 능력 받고 핍박 받는 고난의 목회와 가난한 목회가 싫어졌고, 성도는 ‘교회중심’의 생활원리를 견지하는 언약백성으로서 세상 가운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됐다. 이러하니 모두가 진실로 교회됨을 위해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없고, 가난해지고 작아짐이 두려워서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작년 총회 중에 들었던 한 설교가 아직도 잊어지질 않는다. “은혜의 시대를 오래 살다 보니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하다가 못해 하나님의 이름을 짓밟고 있다. 우리는 진짜 회개해야 한다. 회개가 아니라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명예와 권한이 따르는 직분은 포기해야 한다. 총회장을 못 구해 난리가 나야 한다. 새로운 정화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격 없음’이 섬김의 유일한 자격일진대, ‘자신이 자격 있음’을 알리는 융단폭격식의 무례한 선거홍보문과 더 한층 진전된 계파적 담합과 대접(?)선거의 양상들과, 또 폐회되지 않았음에도 자리를 비우고 돌아가는 총대들의 대담함을 여전히 접하면서 이 ‘함량미달’을 어찌 해야 좋을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수년 전 한 신학자의 절절한 외침이었던 ‘고신교회가 존속할 이유가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 씁쓸한 총회 유감이다.
박익천 장로 / 온생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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