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방
조재필 목사(서울중앙교회)
우리 전통 가옥은 남녀 공간의 구별, 방, 거실, 부엌, 뜰 등 생활공간의 경계가 뚜렷했습니다. 이 가운데 방과 바깥의 경계는 더욱 뚜렷하였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금기(禁忌)까지 세워 두었습니다. ‘문지방 금기’는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로 만든 문지방을 밟으면 닳거나 내려 앉아 외풍이 들 것인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문지방을 산자와 망자(亡者)의 경계선으로 여기는 관념적인 이유입니다. 문지방 안쪽 방은 산 자의 영역이고, 문지방 바깥은 망자들의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망자의 발인은 문지방에 놓인 바가지를 밟아 깨뜨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승에 미련을 버리고 저승으로 고이 가시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문지방을 밟는 것은 그 경계를 허물거나, 산자의 영역이 어떤 의미로 영향을 받는다고 여겼습니다. 문지방은 이렇게 경계의 가시적인 기준이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성경에서 문지방도 이런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문지방은 특히 에스겔서에 자주 나타납니다. 온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물줄기는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발원하였습니다(겔47:1)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실 때 성전 문지방을 경계로 출발하십니다(겔10:18). 이런 성전 문지방에는 그룹들을 새겨 거기서부터 거룩한 영역임을 표시했습니다(대하3:7).
이런 문지방-경계에 관한 성경적 관념은 신약교회에도 적용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분명한 경계와 일정한 높이의 문지방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의 문지방은 가시적으로는 설교와 성례와 권징이라는 종교개혁 전통에서 재확인된 이 세 가지 표지(標識)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 표지들은 교회의 거룩성, 교회의 일치, 교회의 사도성을 확보하는 기준이 되어왔습니다. 이 표지들을 지키는 것은 교회의 문지방을 지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경계를 긋거나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인 혹은 지성적 차원에서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다문화주의나 성적 취향에 대한 포용성, 자유무역과 같은 추세는 경계를 허무는 오늘날의 시대사조를 보여줍니다. 이런 추세들 각각에 대한 선악이나 호불호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만일 교회의 문지방-경계를 뚜렷이 그리고 높이자는 주장을 한다면, 무언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같이 교회 안과 그리스도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혼란, 부끄러운 사건, 무력함을 대할 때면 교회가 문지방을 낮추어 성장만을 추구했던 지난날을 고민하게 됩니다. 개혁이나 회개란 다시금 교회의 문지방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마다 교회의 문지방 높이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와 세상, 교인과 자연인, 거룩과 세속 사이에 소통하지만, 문지방-경계를 높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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