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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란 개혁교회는 교회의 통일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했다
최성림 2014-07-30 추천 1 댓글 0 조회 226

개혁주의 교회 <2>

고재수 : 화란 개혁교회의 교육 선교사로 파송되어 고신 대학에서 조직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화란 개혁교회는 교회의 통일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했다

 

1. 1987년 총회의 결정

   

화란 개혁교회의 총회는 작년 10월 말에 교회의 통일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했다. 그것은 다른 교회 즉 기독교개혁교회와 의논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 일이다. 화란에서 개혁교회는 교인 수가 110,000 이상이며 교회 수는 약 260개이다. 기독교개혁교회는 교인수가 75,000명 이상이며 교회 수는 약 185개이다. 이 통계상으로 이 교회들은 화란 개신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이다.

 

기독교개혁교회와 의논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결정은 이전의 총회 (1984) 결정과 비교할 때 방향이 전환된 것이다. 1984년 총회의 결정은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독교개혁교회의 총회에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기독교개혁교회의 총회는 이것에 대하여 위원회의 차원에서 서로 논의하자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요청은 개혁교회 총회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의논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두 교회가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연구하는데 있다. 하지만 숫자상으로 세 번째와 네 번째 위치를 차지한 이 두 교회가 빨리 통일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2. 1834~1944

   

개혁교회와 기독교개혁교회는 모두 1834년 화란 국교회에서 일어난 분열사건을 그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에 개혁교회를 지키고 가르친 목사 한 분이 휴직되고 이어 면직되었다. 그러나 그 목사가 봉사하던 교회와 그 당회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목사가 이단을 말하지 않고 성경적 교리를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당회의 지도 아래 교회는 교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또 다른 지역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그들과 합세했는데 이 운동의 이름은 '분리시킴'이 되었다.

 

그 교회와 목사는 그들이 왜 교단에서부터 분리되어야만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공적인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에서 그들은 분리시킴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통일의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든 참된 개혁주의 교인들과 교제할 것과,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 근거된 모든 교회들과 통일시킬 것을 공부한다.'

 

개혁교회와 기독교개혁교회는 모두 이 '분리시킴'이라고 불려진 운동에서 생겨났다. 기독교개혁교회는 1892년에 생겼다. 그때 '분리시킴'에서 나온 교회들은 다른 교단 곧 아브라함 카이퍼가 속한 교단과 통일되었지만 그 통일에 동참하려 하지 않은 교회들은 기독교개혁교회가 되었다. 기독교개혁교회는 그 후에도 약 50년 동안 통일된 교회와 아무런 의논도 원하지 않았다.

 

개혁교회는 1944년에 생겼는데 그때 많은 목사들과 장로들이 면직되었고 교회들이 교단에서 밀려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다음해인 1945, 1946년에 기독교개혁교회와 의논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의논의 목표는 처음부터 그들의 교회들 사이에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교회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의논이 순조롭게 되어지지는 않았다.

   

3. 1944~1985

 

개혁교회와 기독교개혁교회 사이의 의논기간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위원회를 통한 의논이고 둘째가 총회의 편지를 통한 의논이다.

 

이 두 교회가 임명한 위원회는 서로 토론했고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그 교제의 첫째 결과는 개혁교회와 기독교개혁교회가 상대방이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고백의 기초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위원회는 이 교회들의 기초가 같은 것이라면 그들이 1834년에 그들의 조상이 말한 대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애를 쓰면 되지 않을까 하고 물었다.

 

기독교개혁교회의 위원회는 아직은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개혁교회는 가정된 중생에 대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리를 참으로 부정했는가? 또 개혁교회의 설교는 어떠한가? 그 설교방법은 객관적이지 않은가? 개혁교회는 모든 청중들이 중생한 신자라는 전제를 하고 있지 않은가? 또 교회에 대한 고백도 지적했는데 개혁교회에서는 교회론이 절대화 되어있지 않은가라는 질문들이 나왔다.

 

개혁교회의 위원회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지방교회 사이엔 교제가 시작되었다. 어떤 경우엔 교제가 금방 실패했지만 다른 경우에는 참된 이해와 교제를 이루게 되었다. 여러 지방교회는 함께 모였고 강단도 교류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차원에서 즉 위원회의 차원에서는 의논이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개혁교회의 총회는 위원회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총회에 편지를 씀으로써 의논을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이 교제의 두 번째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사실 두 교회 사이의 간격이 더 커져 버렸다. 설교방법과 교회관에 대한 기독교개혁교회의 반대는 여전하였다. 또 개혁교회에는 기독교개혁교회에 대한 여러 반대의 의견이 생겼다. 예를 들면 기독교 개혁교회가 ICCC라는 단체에 가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ICCC는 개혁교회의 고백서를 기초로 삼지 않는 단체였다. 그런데 기독교개혁교회는 그 ICCC에 가입함으로써 성령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이라는 자기 기초를 약화시키지 않았는가? 또 후에 기독교개혁교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몇몇 교수들은 창3장의 여러 요소와 또 신약 여러 사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백서에 표현된 성경관과 충돌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도 나왔다.

 

개혁교회의 총회는 1984년에 기독교개혁교회 총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서 밝혀놓은 공식적인 비판의 견해가 그들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기독교개혁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의 교회가 공적으로 손상되었다고 느꼈다. 교회들 사이의 교제는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 사실 그것은 교제의 마지막인 것 같았다.

 

4. 새로운 시작

 

 1985년의 기독교개혁교회 총회는 개혁교회의 다음 총회에 편지를 쓰려고 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총회 사이에 공적인 편지를 쓰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고 그 대신 위원회를 통하여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1987년의 개혁교회 총회는 교제 문제를 며칠 동안 토론한 후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 결정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음의 것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처럼 한 성령으로 한 주님을 경배하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교회적 교제를 강권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믿음의 통일안에서 모이게 되기 위함이다.'

 

기독교개혁교회에서는 적극적인 발전이 나타났다. -그 교회에선 화목에 대해 비성경적 교리를 전달한 목사가 면직되었다. 그래서 이 교회에는 권징이 실제로 있다 - 기독교개혁교회의 한 지도자는 개혁교회가 고백서에 표현된 교회론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 기독교개혁교회의 다른 지도자는 그들의 신학교 교수들의 성경관이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지방교회 사이에도 다시 교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독교개혁교회의 한 지도자는 낙관적인 느낌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개혁교회가 통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을 잘 토론하는 것이다. 이처럼 통일문제에 있어서 개혁교회와 기독교개혁교회 사이에는 접근방식에 있어서의 차이가 남아있는 것 같다.

 

결론

 

개혁교회가 같은 기초를 가지는 교회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규칙을 강조한 것은 옳은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1834년의 발표에서 약속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교리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17:21). 또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고(2:2),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다'라고 하였다.

 

양편은 모두 이 성경적 규칙을 인정했다. 그때 기독교개혁교회는 통일을 이루는데 있어서의 문제점을 너무 집중적으로 생각했고 그 통일이 자기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두려워했다. 또 개혁교회는 오랫동안 각기 자기 길로 간 교회들이 쉽게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 같다. 그 교회는 자주 억지로 통일을 이루려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교회의 통일이 어려운 일임을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와 기독교개혁교회가 참으로 그리고 성급하지 않게 통일의 길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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