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02월15일 주보/칼럼(미물보다 더딘 나?!)
최성림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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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보다 더딘 나?!
곤충들이 애벌레를 지나 번데기에서 허물을 벗고 나오면
예전의 모습은 간데 없고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성도 역시 그러합니다.
세례로 우리는 죄악의 허물을 벗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생명 안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
영적으로 우리의 옛 자아는 이미 죽었고
‘새 사람’이라는 눈부신 신분으로 거듭납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우리에게서 예전의 비루한 습성과 죄의 냄새는
온데간데없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물로 지으신 곤충들은
애벌레를 지나고, 고치를 벗고 나오면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름다운 성체로 나타납니다.
이전의 습성이나 자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는 여전히 옛 습성이 남아 있고,
죄악된 습관들을 벗어버리지 못하여 반복하는지...
문득문득 부끄럽고, 미안하고, 비참할 때도 있습니다.
혹 우리가 곤충들보다 머리가 좋아서
옛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님 아직 허물을 다 벗지 못함 때문일까요?
가끔 자라지 못한 제 모습이 보여질 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들이 들킬 때
그 슬픔, 그 비참함을 겨우 견디며
조금 더 자라도록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예전의 모습은 간데 없고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성도 역시 그러합니다.
세례로 우리는 죄악의 허물을 벗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생명 안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
영적으로 우리의 옛 자아는 이미 죽었고
‘새 사람’이라는 눈부신 신분으로 거듭납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우리에게서 예전의 비루한 습성과 죄의 냄새는
온데간데없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물로 지으신 곤충들은
애벌레를 지나고, 고치를 벗고 나오면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름다운 성체로 나타납니다.
이전의 습성이나 자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는 여전히 옛 습성이 남아 있고,
죄악된 습관들을 벗어버리지 못하여 반복하는지...
문득문득 부끄럽고, 미안하고, 비참할 때도 있습니다.
혹 우리가 곤충들보다 머리가 좋아서
옛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님 아직 허물을 다 벗지 못함 때문일까요?
가끔 자라지 못한 제 모습이 보여질 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들이 들킬 때
그 슬픔, 그 비참함을 겨우 견디며
조금 더 자라도록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그냥 저냥 가끔씩 이런 저를 보며 씁쓸한 되뇌임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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