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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20일 주보/칼럼
언약 2016-03-25 추천 0 댓글 0 조회 164

 

소위 ‘고난 주간’을 보냄에 있어(고전 1:18)

이번 주간을 우리는 흔히 ‘고난주간’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 우리에게(죄인들) 매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며, 그 부르심을 입은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을 입히시기 위해서 그 지으신 바 된 인간들에게 멸시와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바 된 주간인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헬라인에게는 저주스러운 죽음이며,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죽음이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감히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까지 고난당하신 주님의 고난 앞에서 우리가 구원의 기쁨을 말함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난주간을 맞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금식을 하며 애통함을 가지려 한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으며 뭔가 큰 기쁨을 얻었다는 모습으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표현을 한다. 아름다운 고난주간에 대한 동참이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함인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다. ‘주님?, 나 자신?, 다른 성도?, ...그럼 누구란 말인가?’ 분명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에게 애통이 아닌 기쁨이다. 그것도 유일한 참된 기쁨의 근원이다. 우리가 그 절기를 기억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애통해 하며, 스스로 금식함에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에는 유익함이 없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가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사역에 조금의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그 고난’을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이 본 것과 같은 미련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그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그 능력을 힘입어 구원을 얻은 자들이며 이제 주님께서 이루신 이 십자가의 도는 믿는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의 제목이 되어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구원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아 애통해 하며, 스스로 고통을 주는 것은 이방의 종교(로마 카톨릭 포함)의 신봉자들이 스스로를 해하며, 고통에 들어가게 함으로 신에게 이를 수 있다는 어리석음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주님은 바벨론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시절 동안,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에 동참한다는 명목으로 오월과 칠월 두 차례 동안 금식하며 애통하던 일에 대해 “우리가 여러 해 동안 해 오던 금식과 애통을 계속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너희가 애통함이 나를 위하여, 금식함이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고 되물으셨다.(슥7:1-6) 이는 유대인들이 70년 동안 일년에 두 번 금식하고, 많이 애통해 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행위구원의 신앙을 깨뜨리심이다.

우리가 정한 규례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방도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함으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고난주간, ‘당신의 죽으실 때가 가까이 옴을 아시고, 그 때가 당신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구원의 길이다.

죄악으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실로 감당키 어려운 고난을 당하신 주님! 우리는 진실로 주님의 이 고난당하심을 기억하며 애통해야한다. 그러나 이 애통은 주님의 고난당하심에 대한 애통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죄악에 대한 애통함이며, 이 죄악을 인해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말하는 것은 실로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의 고난이 주님의 고난에 비교될 수 없으며, 더욱 스스로 자신을 해하는 것은 주님이 지으신 육체에 대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고난주간! 우리는 이 고난주간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고난이나 애통이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한 애통함과 금식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참 기쁨의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18,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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