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도행전9:36-4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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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9년 2월 3일 주일 가정기도회
행 9:36-43
“다비다쿰(다비다야! 일어나라)”
본문은 욥바라는 성에서 ‘다비다’라는 한 주님의 여제자가 죽었을 때 근처 마을에 와 있던 베드로가 그녀를 살린 사건입니다. 다비다의 헬라식 이름은 도르가인데, 이름의 뜻은 둘 다 ‘암사슴’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암사슴은 ‘사랑스러운 여인’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잠5:18-19,아2:9) 그리고 본문을 보니 왜 그녀가 다비다, 곧 사랑스러운 여인이라 불려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강론문의 주제는 “부활의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된 다비다를 다시 살리셨다”입니다.
먼저 ‘다비다는 현숙한 그리스도의 아내였습니다.’
성경은 다비다가 ‘예수님의 여제자’라고 칭합니다. 성경에서 여자를 이렇게 직접 제자라 칭한 이는 없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 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여 성도들 가운데 이 다비다는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아가는 제자였습니다. 그녀는 욥바에 살면서 정말 암사슴처럼,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사랑받은 아내처럼 생활을 했습니다. 곧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셔서 가난한 자들을 부요하게 하신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처럼 그녀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물질과 시간, 그리고 건강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놓아 과부들를 부요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다비다를 처음 소개할 때 ‘살아생전에 많은 선행과 구제를 행하였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베드로가 욥바에 올라갔을 때 그 성읍의 모든 과부들이 이 도르가가 지어준 옷을 보여주었습니다. 흡사 다비다가 이 욥바에서 행한 선행과 구제는 룻이 그 시모 나오미를 위하여 자신의 온 삶을 드렸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때 보아스는 룻을 향해 ‘너가 현숙한 여인인 것은 온 베들레헴이 다 알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다비다의 이런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한 헌신과 섬김은 잠언 31장을 소개된 현숙한 여인을 생각나게 합니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온 삶을 드려 그리스도의 교회, 특별히 연약한 과부들을 잘 돌보았고, 그녀의 선행과 구제는 모든 이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내로서 주의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며 사랑과 선행을 아끼지 않을 때 신랑이신 예수님께서도 이런 아내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비다는 교회의 참된 어머니의 표상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의 시신이 있는 다락으로 인도되어 갔을 때 모든 과부들이 도르가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다 가져와서 보여 주었습니다. 다비다가 과부들의 옷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때 과부들의 옷이 낡았음을 의미이고, 이는 그때 과부들이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위로가 찾아왔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 욥바에 전파되고, 그때 그리스도의 신부된 다비다가 과부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비다, 곧 도르가 역시 복음을 듣기 전에 다른 여타의 여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복음을 통하여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듣고 배웠으며 이제 신랑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향한 사랑과 희생의 복음을 성취하시고, 이제 교회를 통하여 이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 이 뿌려진 복음을 받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비다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곧 그녀는 욥바에 있는 과부들과 가난한 자들을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아내 다비다에게 말씀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 말씀의 씨는 그리스도의 아내된 다비다의 온전한 순종과 사랑을 통하여 많은 믿음의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자 중에 ‘여제자’라 칭하여진 자는 이 다비다 뿐입니다. 곧 다비다는 주님의 제자로서, 사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 뿌려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은 것처럼 자신에게 뿌려진 그리스도의 말씀의 씨를 뿌려, 곧 믿음과 순종, 곧 행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도르가가 죽었을 때에 많은 과부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부모가 죽은 것처럼 과부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는 그녀의 삶이 그리스도의 아내로서 그분의 뜻을 온전히 붙좇았음을 확증하여 주는 말입니다. 곧 도르가는 주님의 복음을 통하여 신실한 주님의 자녀를 낳았던 것입니다.
과부들의 겉옷과 속옷을 지어 주었다는 말은 잠언31장의 현숙한 여인이 부지런한 손으로 베를 뜨고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그 집의 가솔들을 위하여 옷을 지어 입히는 현숙한 아내와 지혜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신부된 교회로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씨를 받았으니 이제 우리의 믿음과 행실로서 많은 믿음의 자녀를 낳아야 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로 낳은 믿음의 자녀는 아버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믿음의 열매를 거둘 뿐 아니라, 어머니 교회의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을 닮아 다른 성도들, 곧 지체를 돌아보는 일을 닮아 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비다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기에 부활에 참여하였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육신을 입은 사람에게 정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뿐 아니라 성도들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던 다비다도 육신을 입었기에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사단은 사망의 권세를 통하여 다비다의 생명을 취하여 갔고, 이로 인해 다비다가 섬기며, 또 복음을 통하여 낳은 교회의 자녀들, 곧 많은 성도들이 슬퍼하였고, 근처 마을인 룻다에 있던 사도 베드로에 올라와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녀를 눕혀 두었던 다락방에 올라가 모여 있던 사람들을 다 내어보내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12살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했던 것과 같은 그림입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향해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고 했을 때 소녀가 생명을 얻어 부활하였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의 복음을 가진 베드로는 자신 앞에 죽어 누워있는 다비다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다비다쿰 ;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리고 그때 다비다가 생명을 얻어 부활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사망의 권세가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듯이 그의 아내된 교회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사단의 권세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물었지만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밟아 이기셨듯이, 마찬가지로 사단이 교회의 어머니 역할을 하던 다비다의 생명을 취하여 교회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지만 주님은 사도 베드로의 입술을 통하여 ‘사단의 머리를 속히 교회의 발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듯이 교회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다비다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다비다를 다시 일으키신 그리스도의 복음은 마지막 날에 우리를 주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서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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