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언이와 진언이에게 성경과외를 시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과외비를 주고요.
처음엔 아빠가 목사이기 때문에 제가 가르치면 되겠다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친구목사나 신학이 건전한 신학생을 모셔와서 성경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 교육에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제 아이들을 보면서 "아! 아이들은 정말 성경을 배우고 싶어하는구나?"를 많이 느낍니다.
아빠의 게으름과 또 괜한 분주함을 인하여 자주 성경을 가르쳐주지 못하지만 한 번씩 성경이야기를 해줄 때의 아이들의 그 진지한 눈망울과 관심.
그리고 토요일마다 주일성경공부를 기다리며 흥분하는 아이들의 모습.
요즘 성경 상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는데 제 엄마와 성경을 읽으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들이 나오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물어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잘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무시했던 제 자신에게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교육열의(敎育熱意)라면 세계에서 둘째가는 것을 서러워하는 나라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피아노, 영어, 수영, 속셈, 발레, 태권도, 미술, 글짓기 과외.... "
참으로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다양한 것을 가르치고 또한 억지로라도 공부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교육열이 불타는 나라에 아직 없는 과외가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성경 과외"일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소문난 가정이라도 성경을 배우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물질이나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아는 것이 생명이며,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은 잘 알텐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대학 가는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까?""성경은 너무나 쉬워서 배우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아서 일까?"
그러나 아닙니다. 답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모르긴 해도 수영이나 피아노 발레나 태권도가 대학 가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글짓기나 미술은 꼭 배워야 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화가는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웅변학원을 가보지 못했지만 고교시절에, 그리고 군복무시절에 어릴 때부터 웅변을 했다는 이들을 재끼고 웅변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모된 자들이 관심이 없어서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의 학업과 장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잘 마련해주고 인도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상 생명 없는 것으로 자녀들을 이끌어 갑니다.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사실 성경을 배우는 것을 생명이라고 여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신앙고백입니다.) 이 성경을 가르치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은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며, 이 문제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부모들이 먼저 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경험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경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녀에게 무엇을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청년들이나 불신가정에서 나오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별로 유익이 없다고 여겨지며, 시간이 아깝다고 여겨진다면,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진다면 그는 자신이 참으로 성도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과연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일에 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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