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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교회?
언약 2014-08-07 추천 0 댓글 0 조회 1214

폭넓은 교회?

허순길 목사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어떤 분이 영국 교회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소개하며 격찬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그가 격찬하는 이유는 영국 교회는 굉장한 포용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배의식에 있어서 로마 천주교회의 것에 방불하는 의식이 받아들여질 뿐 아니라, 또한 개신교적인 예배의식도 수용이 되며,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용인될 뿐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도 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교회는 국교회이다. 교회의 공식적인 수장은 왕(현재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이 교회는 “영국 교회(The Church of England, 혹은 The Anglican Church)”라고 불려진다. 우리나라에서 이 교회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이 이름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회”라 부르고 있다.

 

실로 이 영국 교회는 폭넓은 교회이다. 이 교회는 일찍부터 상이한 전통을 수용함으로 다원화(pluralism)되어 있는 교회이다. 사도의 계승을 주장하는 감독교권 체제 같은 로마 천주교회의 전통을 수용하는 고()교회주의(High Churchism)와 개신교의 전통을 따르는 저()교회주의(Low Churchism)가 영국 교회라는 하나의 교회 속에 수용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각종 신학과 신앙을 수용함으로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일찍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계교회 일치운동에 앞장서왔다. 이 교회가 폭넓은 교회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호주에서 목회를 하면서 폭이 넓은 이 교회를 이웃에서 잘 알 수 있는 경험을 가졌었다. 호주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80% 이상이 영국계이기 때문에 교회들 가운데 영국 교회가 가장 크다. 마침 내가 봉사하는 교회와 같은 지역에 영국 교회에 속한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원래 개신교 전통을 좇는 저교회에 속했고, 목사 역시 개인적으로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이 목사 내외와 우리 부부는 개인적인 친교를 가지며 때로는 서로를 방문하여 차도 나누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목사와 사귀고 이야기하는 동안, 그가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교회생활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기는 성경의 모든 이적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나, 그 지역(서부 호주) 모든 교회의 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대감독(arch-bishop)은 성경에 기록된 이적이나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화하는 중, “그 감독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감독이 주재하는 공식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그의 교권 아래서 감독을 받으며 교회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목사도 포용력이 있고, 그 감독도 포용력이 큼을 느꼈다. 영국 교회가 폭이 넓은 교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포용이며, 주님의 교회가 살아가야 할 “넓은 폭”인가? 예수님께서는 몇 번이나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하셨다.

 

사도들은 거듭 영을 시험하라고 했다. 그리고 바른 교훈을 가지지 않고 오는 자는 집에 들이지도 말고 심지어 인사도 말라고 했다(요일1:10).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선언되어 있다(1:8-9). 이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교리적인 순수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영국 교회 안에는 무엇보다 교리적인 포용력이 있는 것이다. 영국 두루함(Durham)의 감독 다윗 젠킨스(David Jenkins)는 영국 교회 교권세계에서 최고위 감독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육체부활을 공공연하게 부인해왔다. 수 년 전, 그가 봉사하는 대성당의 중앙부에 화재가 발생했었다. 이 때, 성경을 바로 믿는 영국 교회 내의 신자들 가운데서 이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라고 떠들었다. 이런 상황을 미국 주간지인 타임지도 상세히 알렸었다. 그런데 영국 교회는 변함없이 이 감독을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 안에는 권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교회 세계에서는 참 교회, 순수한 교회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이 교회 안에는 단지 개인적인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발견되지만, 참된 교회를 말하는 개혁주의 교회관을 찾아볼 수 없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아니 우리 교회 안에서도 “다원화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우리도 이제는 교회의 문을 넓게 열고 신학도 교리적인 면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어떤 분들은 “우리도 이제는 편협하고 자만한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부르짖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넓은 마음에서, 또는 교회를 사랑하는 소박한 충정에서 나오는 소리인 듯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소리 속에 위험이 잠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시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자기 사명 완수를 위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그러나 결단코 그 시대의 정신적 기류에 휩쓸려가서는 안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다(5:22-32; 21:2, 9).

 

그러기에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교리적인 순수성과, 생활의 순결을 지킬 의무를 지고 있다. 교회는 모든 족속과 나라와 언어를 수용하는 폭넓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는 교리와 생활면에서 순결성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폭넓게 보이지 않는 때도 있다. 개혁교회는 흠 없고 정결한 신부의 상을 이상적인 교회의 상으로 삼고 살아간다. 개혁해가는 교회는 계속 이 신부의 상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것이다.

(개혁해가는 교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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