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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와 학교교육
언약 2014-08-03 추천 0 댓글 0 조회 611

개혁교회와 학교교육

(허순길,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 中에서)


개혁주의 신자들은 기독교 학교교육에 큰 관심을 가진다. 아마 이들만큼 기독교적 학교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다해가는 신자들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개혁주의 생활에서 가정, 학교, 교회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호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개혁교회가 서 있는 곳마다 거의 예외 없이 그 주변에 학교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개혁교회 신자들은 기독교 교육이라는 평범한 말을 잘 쓰지 않고, 개혁주의 교육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개혁주의 세계에는 개혁주의 특유의 교육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개혁주의 교육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반을 둔 교육이다. 자녀란 인간 자신이 생산해낸 것이 아니고, 언약의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자녀들’이다. 개혁교회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자녀를 본다(17:10). 그리스도인들은 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신자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가르치고 바르게 교육할 사명감을 크게 의식하게 된다.

특별히 교육문제는 언약의 자녀를 얻어 유아세례를 받을 당시 부모로서 하나님 앞에 서약한 것에 대한 이행문제로 생각한다. 유아세례시 부모는 “이 아이가 이해력을 갖자마자 부모로서 이 교회에서 고백하고 가르치는 교리를 최선의 힘을 다해 가르칠 것을 약속합니까?”라는 물음에 “예”라고 대답한다. 이 약속은 하나님 앞에, 증인들 앞에서 한 것이다. 이 약속 이행의 책임은 가정교육에서부터 학교교육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개혁교회에서 부모들은 자기들이 믿고 고백하는 신앙교리의 기반 위에서 자녀들을 교육할 책임을 의식한다. 그들의 자녀들이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내용을 익히고, 영적으로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자녀교육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는 곧 유치원 교육에서 고등학교 교육(신앙적으로 성인이 되기)까지를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개혁교회 신자들은 적어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 한 신실한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교사들에게 자녀들을 맡겨 교육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이들의 소명감과 열심은 대단하다. 예를 들면 호주의 한 도시에는 개혁교회가 단지 4교회뿐이니 신자의 수가 모두 약 2천명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러나 이들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설립하여 직영을 하고 있다. 정부가 사립학교에 주는 지원금이 학교 운영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이 후원회 회원이 되어 월 100여 달러씩을 부담하고 있다.

교회(당회와 노회 등)는 학교 설립과 운영에 직접 관계하지 않는다. 학교의 운영은 교회 자체의 소관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치리회는 언제나 교회의 영적인 관리의 책임만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언급해온 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역주권의 문제이다. 학교의 설립과 운영은 신자인 부모들이 협회를 조직하여 하게 된다. 여기에는 목사도, 장로도 부모와 신자의 자격으로 다 학교후원의 회원이 되어 참여를 하게 된다.

교회가 학교를 직영하지 않는다 해서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결코 무관심하지는 않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서, 장로들은 심방하는 중에 세례시의 서약을 따라 자녀를 신앙 안에서 교육할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고,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학교를 지원하는데 적극 참여하도록 가르치고 격려한다. 교회법에도 “당회는 부모들로 하여금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교육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학교에 그들의 자녀들을 참석케 하도록 도모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런 교회의 규정을 따라 목사와 장로들은 개혁주의 학교교육을 신자들의 의무로 독려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매주 예배시 학교를 위한 기도를 잊는 일이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이 학교를 위한 영적, 정신적인 지주와 보루가 되는 셈이다.

교회와 학교는 교육면에 있어서 서로의 영역주권을 달리하고 있다. 교회가 학교의 운영이나 교과내용을 감독하고 간섭할 수 없다. 이것은 교회의 영역이 아니다. 이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해야 할 영역이다. 또 학교가 교회의 협조는 요구할 수 있어도 당회의 하는 일에 간섲할 수 없다. 당회는 교회의 영적, 목자적 관리의 고유한 사명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영역주권을 존중하고 생활하는 것이 혼란을 피하는 일이 되고 각 영역의 참된 번영을 도모하는 일이 된다.

이런 개혁주의원리는 교회와 기독교대학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개혁주의세계인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한국의 교회를 제외한 어떤 교회도 대학을 직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 영역주권을 인식한 개혁주의교회들은 대학의 운영을 신자들의 봉사 영역으로 알고, 교회는 오직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만을 직영하고 있다.

교회와 학교의 영역주권은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직영하는 대학을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교육을 하는 대학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개혁해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대학직영을 재검토해야 한다. 영역주권의 원리를 무시하게 될 때 교회는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대학은 바람직한 발전을 못하게 된다. 양자가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대학이나 병원을 직접 설립 운영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대학(병원)운영은 차츰 신실한 신자에게 맡겨 운영하게 하고, 교회(총회)는 이를 직영하는데서 손을 떼야 한다. 교회는 다만 배후에서 이 기관들을 보호하고 적극 지원함으로 개혁주의신앙을 가진 고등교육자를 양성하는데 협력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교회는 더욱 교회다워져야 한다. 교회가 직접할 일은 복음진리의 파수, 복음전파, 선교이다. 교회가 자기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와 자기 사명완수에 진력할 때 밝은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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