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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세상 가운데 있는 교회의 공예배와 직분자의 사명(권기현목사)
최성림 2020-09-28 추천 0 댓글 0 조회 604

이 글은 2020년 9월 26일자 기독교보에 로뎀장로교회의 권기현 목사가 현재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가 공예배를 대하는 입장과 직분자들의 감당할 바가 무엇인지를 성경과 신앙고백의 입장에서 살펴 기고한 글을 본 교회 전도사로 사역중인 양주동목사후보생이 타이핑한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있는 교회의 공예배와 직분자의 사명

권기현 목사(대구 로뎀장로교회)

 

한국 교회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COVID-19)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공예배의 원리와 방식,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예배 소집권의 주체, 교인, 관리 등의 실제적인 신학 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풀기 힘든 논제가 발생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재빨리 교리표준(성경과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공예배의 기본 원리

첫째, 공예배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영구적인 명령이며, 언약 공동체(교회)의 책무입니다(신앙고백 21:7).

 

둘째, 공예배는 언약백성들만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언약의 외인들은 예배의 주체나 참여자가 아닙니다. 참석하더라도 예배자는 아닙니다. 복음은 감춰진 비밀이어서 불신자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행위일 뿐입니다(고전 1:18, 22).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존재와 기능, 예배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며, 언약 백성의 (핍박과 손해를 감수한) 믿음의 행위입니다(10:25; 1:3).

 

셋째, 공예배는 언약백성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신자의 자녀, 심지어 짝 믿는 가정의 자녀조차 언약백성입니다(17; 29:11; 고전 7:14; 딤후 3:15; 신앙고백 25:2; 대교리 62; 소교리 95).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신앙고백 28:1, 4; 대교리 165-166; 소교리 95).

 

넷째, 은혜의 방편이 시행되어 표지가 나타나야 공예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직분자들의 봉사가 필요합니다. 은혜의 방편은 설교(말씀), 성례, 기도입니다(대교리 154; 소교리 88). 이는 개인 성경읽기나 사적 성례, 개인 기도가 아니라 공예배 시에 직분자를 통해 시행하는 구원의 효력 있는 방편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주중에도 목사는 설교 준비를, 장로는 심방을, 집사는 구제와 위로의 사역을 합니다. 그러나 이 봉사가 확연히 드러나는 현장은 주일 공예배입니다. 목사의 설교, 장로들의 회가 준비한 성찬, 그리고 집사의 사역을 위한 헌금(연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말씀과 권징이라는 열쇠로 천국 문을 열고 닫습니다(신앙고백 30; 하이델베르크 83-85). 분자들의 봉사와 회중의 참여, 은혜의 방편과 표지가 모두 나타나는 유일한 현장이 공예배입니다.

교회는 이를 시행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대다수 교회가 성찬이나 세례를 매주 시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행할 환경 자체를 제거한 모임은 경건회일 수는 있어도 온전한 공예배는 아닙니다.

 

다섯째, 공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 가지 측면으로 묘사합니다. 물리적인 몸, 공동체적인 몸(교회), 그리스도 상징적인 몸(성찬)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활하신 몸으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사역인 상징적인 몸(성찬)을 통해 땅에 있는 몸(교회)과 연합하십니다(고전 10:16; 참고. 1:10; 2:6).

설교가 공예배의 핵심이라면 성찬은 설교의 꽃이요 공예배의 절정입니다. 성찬은, 교회가 단순히 출석하는 단체가 아니라 영적인 새 가족이며, 공예배는 이 가족이 한 몸임을 확인하는 현장임을 가시화합니다. 유아세례는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이 단순히 부모의 서약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아세례는 온 회중의 공적인 서약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공예배는 하나님과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러운 만남이 아닙니다. 온 교회가 언약 공동체이자 성령 공동체로서 하나 됨을 확인하는 현장입니다. 수직적 연합과 수평적 연합이라는 신비가 가시화되는 현장입니다.

 

이상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한 시간에 한 장소에서 모이는 예배입니다.

 

교회와 세상 정부

하나님께서는 세상 가운데 두 종류의 왕국을 두셨습니다. 하나는 세상 왕국인데, 세상 정부와 공직자들을 세워 이를 다스리는 권위를 주셨습니다. (깨닫든 그렇지 않든) 죄를 억제하여 교회를 보호하는 기능을 맡기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세상 정부와 공직자들이 하나님의 법에 충돌하지 않는 한, 그들을 공경하고 순종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13:1-7; 딤전 2:1-2; 3:1-2; 벧전 2:13-15; 신앙고백 23).

다른 하나는 세상에 있으나 거기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왕국인데, 이는 가시적 교회를 통해 이 땅 위에 드러납니다(신앙고백 25:2).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직분자들 특히 치리회를 세워 이 왕국을 다스리고 섬길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 법정이 아닌 교회 법정에 호소합니다(고전 6:1-2). 땅 위의 사도와 치리회가 바르게 판결할 때, 하늘에서까지 매이고 풀리기 때문에(16:19; 18:18; 20:23) 교회는 세상을, 심지어 천사까지도 심판합니다(고전 6:2-3).

 

이렇게 두 왕국이 공존하며 협력하나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국가 공직자는 말씀과 성례의 집례나 천국의 열쇠권을 전유하거나 믿음의 사안에 조금이라도 개입해서는안 됩니다(신앙고백 23:3; 이 항목은 미국을 거쳐 수정된 것이나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음).

교회의 회의(당회, 노회, 총회)교회적 사안만을 다루어야합니다. “비상시국에 겸허한 청원이나 국가 공직자의 요청을 받아 양심상 행하는 조언 외에는 국가와 연관된 시민적 사안에 개입하지 말아야합니다(신앙고백 31:4).

천주교는 교회 직분자(교황)가 국가 공직자의 재치권(裁治權)을 찬탈했습니다(신앙고백 23:4). 교회가 세상의 영역을 침해한 사례입니다. 영국 성공회는 세상 공직자가 교회의 최고 직분자를 자처했으며,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에라스투스주의자들은 국가공직자가 교회의 권징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이 교회의 영역을 침해한 사례입니다.

 

COVID-19 2월 대확산의 주된 요인은 이단 사이비 단체인 신천지교의 집단 감염과 비협조였습니다. 이때 정통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대부분 세상 정부와 공직자들이 공예배에 관여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COVID-19 억제와 방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만 해도 이단이나 이단성이 있는 교회들 외에는 한국 교회 내의 실제 확진자 수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8월 대확산의 경우, 여타 이유를 막론하고 기존 교회 안에서도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시민으로서 합법적인 집회에 참여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적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과 신앙고백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이뿐 아니라 전광훈 씨는 작년 제69회 총회에서 이단대책위원회에 연구를 맡겨 이번 제70회 총회에 이단성이 있는 이단 옹호자로 규정함이 가한 줄 안다.”로 보고서가 제출되어 있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교리적인 사안으로 공회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교회와 교인들이 그 단체나 개인과 관계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기다리는 것이 직분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세상 정부와 공직자들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불의합니다. 사악하기조차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에 대해 적대적일 때가 많습니다. 교회의 권세와 영역을 자주 침해합니다. 지금 정부와 공직자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지난 몇 달간 그랬습니다. 언론과 시민들 역시 이 핍박과 압제에 가세하고, 이단 사이비 단체들과 교회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자에게 주신 영역을 침해할 정당성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핍박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성경과 신앙고백을 따라 겸허한 청원”(신앙고백 31:4)과 합법적인 요청을 해야 합니다(신앙고백 23:4).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자들을 그분의 사역자(13:4)로 삼으신 이유는 타락한 피조물과 세상이 구속사의 무대요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들을 사용하여 참 교회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그 속에 담아두셨기 때문입니다(1:5-2:3). 이로 인해 포로시대 교회는 바벨론과 바사에서, 사도시대 교회는 로마제국에서 핍박과 함께 보존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 권세자들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훼손하면, 세상 권세자들은 교회의 존립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구속자의 무대가 무너집니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사의 변증가들과 교부들은 교회가 받은 각종 모함을 변증하면서도 세상 권세자들에 대한 공경을 유지했습니다. 16세기 개혁자들인 루터, 츠빙글리, 칼빈 역시 교회가 세상의 영역을 지배하려는 교황주의자들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세상 권세자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극단적 재침례파를 경계했습니다. 칼빈은 교회를 핍박하는 세상 권세자에게 기독교강요를 헌정했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은 세속 국가 및 공직자의 기능과 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다룹니다. 제네바 시의회는 교회의 치리권을 놓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이것이 교회 직분자에게 주어진 권세라고 가르치면서도 시의회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한평생 인내하며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당회의 예배 관장과 직분자의 사명

개체교회의 공예배를 관장하는 권세는 개체교회의 당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들의 회는 말씀과 교리, 성례와 치리를 관장할 사명을 짊어집니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 창설 직원인 사도들에게 위임한 것이며, 이제는 교회 항존 직원인 장로들에게 위임되어 있습니다(28:18-20; 16:15; 20:28-32; 신앙고백 30). 세상 정부와 공직자는 공예배 개최와 폐쇄를 주도하고 명령할 그 어떤 권세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신앙고백 23:3). 당회는 이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 정부와 공직자를 공경할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분파주의, 검증되지 않은 뉴스나 루머 전달 등을 엄금해야 합니다.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함께 모이는 것이 공예배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영상으로, 각 가정별로 경건회를 할 수밖에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입니다. 예배당에서 공예배로 모이면서, 영상을 함께 송출하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러나 당회는 영상 경건회, 가정 경건회, 개인 경건의 시간을 공예배와 같은 수준으로 격상시키거나 대체 수단인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공예배로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의 피치 못한 차선책일 뿐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온 교회가 결핍을 깨닫고 애통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공예배 시행과 참석이 값없는 은혜이며, 얼마나 고귀한 가치가 있는지 알고 사모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 약화의 가장 큰 원인은 핍박이 아니라 목사의 설교입니다.

목사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33:32) 구원과 심판의 나팔을 부는 파수꾼입니다(33:1-7). 책망과 교정의 설교(딤후 3:15-16)는 영혼을 구원하지만, 협박하는 설교는 상처를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보다 윤리적으로 더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합니다. 이 때문에 목사들은 윤리적인 설교에 대한 압박감이 심합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설교가 난무할 때, 교회는 언제나 윤리적으로 타락해왔습니다. 목사는 도덕윤리 대신 성도들이 세상에서 도무지 들을 수 없는 것,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윤리성을 회복합니다.

심방은 목사의 아내와 여전도사가 아니라 장로들의 사명입니다(5:14-20).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알아야 돌봄과 치리가 가능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장로들의 심방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걱정 대신 심방해야 합니다. 직접 방문이 힘들면, 전화로라도 부지런히 성도들을 돌봐야 합니다. 영상 경건회에 참여했다고 신앙이 유지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집사들의 사역과 활동이 두드러져야 정성입니다. 교회 안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이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재기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지만, 집사들은 나눔과 베풂을 통해 교회를 보호합니다.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 장로의 심방, 집사의 위로를 통해 COVID-19 가운데서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참 교회의 보존과 성장은 세상 권력의 이동이 아니라 직분자들의 봉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부디 필자의 이 글이 교회의 공예배 회복과 화평을 가져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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