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과 신앙 교육(성희찬 목사)
지난 글에서 화란개혁교회 신자들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자녀 교육을 위해 사립학교를 세우는 권리를 획득하고 나아가 정부로부터 공립학교와 동등한 재정 보조를 받게 되었는지 그 투쟁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폈습니다.
그러한 기독교 학교 설립 배경 뒤에는 무엇보다 언약과 신앙 교육이라는 이해가 있습니다. 이 두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때 부모들이 왜 가정에서 자녀를 위해 식탁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지 그리고 왜 교회에서 청소년을 위해 교리 문답 교육을 시행하고 주일에 한번은 교리문답 설교를 하는지, 그리고 왜 자기 신앙 노선과 맞는 학교를 세워 거기서 일반 과목 뿐 아니라 성경과 성경 역사, 교회 역사를 가르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문제를 잠시 다루고자 합니다.
1. 언약
성경이 말하는 언약론을 여기서 전개하기는 어렵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언약이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맺는 은혜로운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언약이고 은혜 언약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와 교제를 맺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은혜인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주님은 어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구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 즉 언약 관계에서 믿음과 회심으로 응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믿음과 회심 또한 하나님의 역사로 말할 수 있습니다. 언약에 대해 바르게 반응하도록 인간의 마음에 성령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은 이 언약 안에서 자신을 인간들에게 알리셨고 그리고 자기를 알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언약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고 또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2. 신앙 교육
이제 언약과 신앙 교육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신앙 교육이란 곧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에 바르게 응답하기 위해 인간이 시행하는 교육을 가르칩니다. 이 같은 신앙 교육을 구약과 신약은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지시합니다. 먼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교육을 봅시다. 신명기 6장 6, 7절에서 부모가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에베소서 6:4에서도 지시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교육과 언약의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세례라고 생각합니다. 언약의 표시인 세례에서 바로 이런 신앙 교육을 자녀에게 시행할 것을 부모가 공적으로 약속하였습니다. 부모는 이제 가정에서 그 시행의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아가 가정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신앙 교육도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구약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백성을 가르치는 역할도 가졌습니다. 모세나 사무엘, 에스라 같은 지도자들도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도 목사 및 교사 (엡 4:11) 가 있었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 (갈6:6)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나이가 어리든 많든 바른 언약 관계를 맺고 반응을 하도록 신앙을 교육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개혁 교회가 주일 두 번 예배 중 한 번은 그들의 신앙을 요약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을 설교함으로써 신앙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18세 입교할 나이가 되기까지 매 주일 한 번은 목사에게 가서 위 교리문답을 가지고 신앙을 교육받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교리문답 교육은 종교개혁에서 다시 회복한 신앙교육의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개혁자들 중 칼빈과 루터가 각각 제네바와 비텐베르그에서 교리문답을 작성하여 신앙 교육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3.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관계
이와 같이 종교개혁 이후로 언약을 기초로 신앙 교육의 장으로서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특별히 언급되었습니다. 이 세 영역에서 각 세대가 신앙을 교육받게 된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 드린 기독교 학교 투쟁의 역사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보니까 교사가 매일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고요, 또 성경 역사도 배우고 교회 역사도 배웁니다. 비단 이런 특정 과목에서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관계에서 신앙 교육이 실천적으로 이루어지고, 각종 행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4. 식탁에서 시작되는 신앙교육
제가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가정에서 신앙 교육의 형태로 개혁 교회 신자들이 식탁에서 성경을 읽어주는 습관입니다. 언약과 신앙 교육의 관계에서 이 습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명기 6장 7절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화란에 와서 배우고 실천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식사하는 식탁에서, 혹은 잠자기 전에 주로 성경을 읽습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질문하면 같이 충분하게 대화를 나누며 답을 찾습니다. 연령 차이나 강조점에 따라 성경을 선택하여 읽습니다. 주일 예배 후 점심 식사 식탁에서는 설교 본문을 읽고 아이들이 설교를 이해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은혜 받은 것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 이 시간에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식탁에서 성경을 읽는 습관은 한국의 상황과 달리 주 5일 근무를 하고 가정 중심의 문화에서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반면 우리 나라는 자녀와 함께 식사하는 일조차 어려운 상황이므로 식탁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힘든 일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 사람이 자녀 교육에 대해 가진 열심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어떤 묘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녀를 위한 신앙 교육의 책임을 부모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 세례 때 그러한 신앙 교육을 공적으로 서약해놓고 책임 기피를 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신앙 교육을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나 학생회에 전부 맡기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언약과 신앙 교육의 관계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혁 교회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언약과 신앙 교육이 가정과 교회와 학교를 통해 시행되도록 부모와 교회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혁 교회 신자들이 100% 매일 성경을 식탁에서 읽고, 100% 교리문답교육에 보내고 100% 기독교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는 말은 아닙니다. 개혁 교회가 한다 해서 그대로 본받자는 말도 아닙니다. 그 원리 곧 하나님과 맺은 은혜 언약에 부모와 자녀들이 어떻게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서 지배를 받으며 또 그 언약에 어떻게 바르게 응답할 것인지를 배우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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