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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오후설교[기관별기도회]-성도의 교제란?
언약 2018-10-28 추천 1 댓글 0 조회 422

성도의 교제란 무엇인가? 임경근목사(다우리교회;가정예배 카페에서)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 곧 사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일게다. 그런데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말은 성도의 교제의 한 면인 성도 간의 사귐만을 나타내는 말로 잘못된 오역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성도의 교제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만으로 이해하고, 성도의 교제 혹은 성도의 교통을 말하면 의례히 성도들 간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구역모임이나 혹은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 같은 것들의 핵심은 사실상 성도 상호간의 사귐이 그 중심에 있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온갖 관심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바로 이 사귐을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교제의 한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곧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생각, 상황이나 형편을 내어 놓고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을 성도의 교제로 이해한다.

또 한국 사회가 농촌중심에서 도시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생활의 외로움을 교회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성도의 교제성도들 간의 만남과 교통정도로 이해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교회는 좋은 교제의 장소였다. 학창 시절에 불신부모들은 교회는 연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교회에 가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사람과 친해지고 사귀기 위한 만남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도의 교제에 대한 생각이 이러다보니 교회는 수직적 하나님과의 교제보다는 수평적 성도들의 교제에 그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있다. 교회는 성장하기 위해 수평적 교제를 강조하고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야 말로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이 성도의 교제는 좋은 전도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교회들이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복음을 노골적으로 증거하는 설교를 진짜 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설교도 인간관계를 다루는 주제들이 많아졌다. 내적치유, 관계와 사랑의 기술 같은 것들이 설교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이런 류의 설교는 정말 중요한 복음의 본질을 놓치기 일쑤다.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는 딱딱하고 메마르고 재미없어 인기가 없다. 성도들의 귀를 기쁘게 하는 사랑의 관계에 대한 설교가 주를 이룬다. 이런 수평적 성도의 교제가 강조되지 않는 교회를 성도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성도의 교제가 부족하다느니, 사랑이 없다느니 하며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가 과연 그런 것인가? 성도의 교제의 본질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의 교제를 이렇게 가르친다. 21주일 55문의 답을 보면 첫째,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합니다. 둘째,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 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의 교제를 일차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모든 부요, '보물'과 은사, '선물'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이다. 대표적인 성도의 교제는 성찬이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시는 천국 만찬이다. 바로 이 성찬에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교제, 즉 코이노니아(koinonia)가 이루어진다.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기 위해서는 성찬을 가능한 자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 한국 교회는 성찬식을 하긴 하지만 이를 통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차원에서의 성도의 교제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성도는 성도 상호간에 교제를 할 수 밖에 없다. 수직적 교제가 있는 경우, 자연스레 수평적 교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성도의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는 남이 나를 위해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는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올바른 성도의 교제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를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물에 참여하는 성도, 곧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는 성도는, 이제 다른 사람을 향한 성도의 교제로 자연스레 나아간다. 그것은 받으려는 차원의 교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섬기고 돕는 차원의 교제이다. 이런 차원에서 연보(koinonia;고후9:13)가 성도의 교제가 되는 것이고, 복음 안에서 서로 교류하는 것(sunkoinonia;1:7)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남겨두신 고난에 함께 참예하는 것(koinonia;3:10)이 성도의 교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 안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의 성도의 교제 역시도 그리스도를 닮아 상호간에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낮추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중심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교제를 알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바른 의미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고, 또 적용되고 있는지 살피며 기도 가운데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교제를 제대로 적용해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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