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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7. 오후설교[성찬조별기도회]-믿음의 교제
언약 2016-04-03 추천 0 댓글 0 조회 308
[성경본문] 빌레몬서1:4-7 개역한글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03.27. 성찬조별기도회 최성림 목사

성경 : 몬1;4-7

제목 : 믿음의 교제 

 

 

 

빌레몬서는 바울이 골로새 지방에 있는 빌레몬과 빌레몬의 가정에 모이는 교회에 보낸 편지로 주 내용은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가 잡혔는데, 그가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하였기에, 이제 바울이 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어 빌레몬과 화해를 하게 하고, 더 나아가 이 오네시모를 바울 자신의 사역을 돕는 일꾼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허락을 받기 위한 편지입니다.

사실 고대근동에서 노예는 주인의 재산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오네시모처럼 주인의 것을 훔치거나 해를 끼친 종은 주인이 임의대로 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오네시모의 죄가 얼마나 컵니까? 그런데 지금 바울은 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와 화해하고 교제할 것을 요구하며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주인과 종이, 그것도 주인을 해롭게 했던 종과 다시 화해하고,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이 교제는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성도의 교제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질 때 역동적인 힘을 나타낸다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성도의 교제는 자신을 낮춤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편지를 써는 이는 빌레몬을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버지요, 복음의 교사가 되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빌레몬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8-9v에서는 내가 너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교제는 끼리끼리의 교제입니다. 연배끼리 교제고, 동문끼리, 그리고 요즘 아파트세대는 신분이나 지위, 또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교제의 폭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제가 아닙니다. 이런 교제는 자신이나 상대방이 그 가진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제가 아니라 거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밝히며 나는 너의 아버지요, 교사로 너에게 명령할 수 있고, 또 마땅히 요구할 권이 있지만 너와의 교제를 위하여 도리어 네게 간구하고, 간절히 바란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17v에 바울은 빌레몬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라고 말합니다. 빌레몬의 믿음의 아버지요, 교사인 바울이 빌레몬의 동무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 9-10v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갇힌 자라고 말함으로서 오네시모와 같은 죄수의 처지에 있다고 말합니다. 곧 자신을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빌레몬의 동무일 뿐 아니라 오네시모의 동무가 되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숨은 메시지는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이 오네시모 역시 너의 동무로 여겨라는 말입니다.

있는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없는 자에게 가서 교제를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비천한 위치에 있는 자에게 먼저 가서 교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곧 바울은 자신을 낮춤으로서 빌레몬과의 교제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철저히 계급중심의 사회인 고대나, 중세 심지어 현대사회에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고대나 지금이나 이러한 교제를 참된 교제라 부르게 됩니다. 곧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본체이시지만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입어 사람들과 같이 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 죄나 흠도 없으신 분이 죄인된 우리로 하나님과 교제에 나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기를 자처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의 몸에 지체된 교회가 어찌 머리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며, 외모로 자신과 비교하여 연약하고 부족한 자라고 멸시하며 교제하기를 꺼려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레벨이 다르다고, 수준에 안맞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바로 자신과 빌레몬의 관계를 설명함으로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종의 형체로까지 당신을 낮추신 사실을 생각나게 하며, 나의 모범을 생각하며, 이제 오네시모와 참다운 교제를 이루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낮춤없이, 또 자기를 먼저 내어 줌 없이 성도의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교회 안에서 연령으로, 직분으로, 신앙연수로 자신을 주장하는 자는 성도간의 참다운 교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 수치를 감춘 상태에서 정상적인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먼저 내어줌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도의 교제나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는 교회의 머리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 먼저 자기를 비어,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바울이 나이가 많고, 최고의 학벌을 가졌지만, 사도요, 아버지의 위치에 있지만 자기를 낮추어 빌레몬과 형제가 되고, 동무가 되고,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의 형체로 까지 자신을 낮추는 것처럼, 주인인 ,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와의 화해와 교제를 권면을 한 것처럼 주의 몸된 교회는 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자신을 낮추어 형제와 이웃들에게 나아가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모임 안에 이런 교제의 모습이 있을 때, 교회 안에 이런 겸손과 섬김이 있을 때 교회가 영적인 힘이 있고,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됩니다.

 

두 번째로 자신을 낮추어 교제를 요청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5-6v을 함께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즉 바울은 지금 빌레몬이 행하고 있는 그 믿음의 교제를 생각할 때 충분히 자신을 낮추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한 믿음의 형제로 교제를 나눌 수 있을 것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서로 신뢰할 만한 사이라는 것입니까? 나에게 복음을 전했으니 믿을 만한 사람이라 교제한다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가 보냈으니 이제 오네시모를 믿을 만하다는 그런 믿음의 교제를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한 분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한 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독생하신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형상을 입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자를 향한 믿음...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고, 바울이 가진 이 믿음을 빌레몬이 가졌고, 오네시모 역시 이 믿음 안에 새롭게 거듭났으니 이제 한 믿음 안에서 한 형제로, 한 성도로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졌기에 서로에 대하여 주장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교제, 이것이 믿음의 교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는 무엇을 기초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혈연, 학연, 지연으로, 또 직업별로, 자신이 선호하는 성격의 사람과만 교제하는 것은 교회의 교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교제가 진정 믿음에 기초한 교제입니까? 함께 복음을 나누고, 언약의 삶을 나누고, 함께 선을 독려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교회의 모습입니까?

부부간의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의 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하여 생각하신다면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분의 신부될 자격이 있겠습니까? 한 몸되어진 부부가 서로에 대하여 자기를 주장하고 서로 자기를 낮추지 못한다면 이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신뢰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성도인 아내가 자기를 낮추어 남편에게 온전히 복종할 수 있는 이유는 남편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저와 한 몸을 이루게 하시고, 자기의 머리로 세우심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성도인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위하여 자기를 낮추어 아내를 위하여 죽기까지 봉사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의 지체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교제는 역동하는 힘이 있는 교제입니다.

믿음의 교제는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6v에 보면, 이런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7v에는 너로 말미암아 형제들이 평안을 얻고,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곧 참된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교회가 선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또 교회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사한다는 단어는 온전한 능력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엡 4:16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자라간다고 할 때 ‘~~에 이르도록 자라간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곧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성도들이 각 직분에 합당한 봉사와 섬김을 통하여, 곧 성도들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여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것인 것처럼 빌레몬이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빌레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온전한 믿음과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충만한 데까지 이른 자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통하여 빌레몬으로 하여금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온전한 섬김과 봉사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충만한 데까지 자란 너도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과 이 믿음의 교제를 오네시모에게 나타내어서 그와도 참다운 믿음의 교제를 가지도록 하라는 권면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교제가 선한 일을 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그 교제는 믿음의 교제가 아닙니다. 그 교제가 자원하여서 형제성원을 위하여 섬김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교제는 믿음의 교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교제가 교회 안에서 성도 상호간에 사랑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 교제는 믿음의 교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교제를 통하여 형제자매와 이웃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지 못한다면 그 교제는 참된 믿음의 교제가 아닙니다.

믿음의 교제는 무엇이 선인지 알게 해주고, 또 그리스도의 강림하시는 날까지 선한 일을 이루도록 하며, 온 교회가 기쁨과 위로를 얻도록 역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할 때에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5:6)고 하였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여러분! 살아있는 믿음의 교제는 역동하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선한 일을 이루게 하며, 평안과 기쁨과 위로가 넘쳐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교제는 어떠합니까? 이 교제를 통하여 진정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을 사랑으로 역사하게 합니까? 함께 모여 교제할 때에 평안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믿음을 인하여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까?

교회가 한 언약공동체인 것을 기억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좇아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겸손히 섬기는 믿음이 교제를 나눌 때 교회안에 참 평안과 기쁨과 위로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같이 기도하세요

1. 우리 교회에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2. 우리의 교제가 믿음에 바탕하는 교제가 되도록

3. 우리의 교제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교제, 선을 알게 해주는 교제, 교회 안에 평안과 기븜, 위로가 넘치도록 하는 교제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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