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4. 성찬조별기도회 최성림 목사
성경 : 엡4;11-16
제목 : 교회의 바른 성장
몇 년 전까지 한국교회는 공공연히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200만명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1년 통계청의 발표를 듣고 입이 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곧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천주교와 불교는 종교인구가 지난 10년 전보다 증가한데 반해 기독교 인구는 1.6%정도 감소했다고 하면서, 860만명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1200만명의 1.6%라면 최소 1100만은 넘어야 하지만, 그 동안 교인의 수를 부풀려 보고했다가, 인구조사에서 거짓말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실상 한국교회가 교회의 숫적 성장에 매달려 온 결과일 뿐 아니라 다른 이교도들과 다를 바없이 세속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교인의 수가 많아지는 것도 교회성장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성장에 대해 말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교회성장을 말할 때 한국교회가 강조하는 것같은 양적 성장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교회의 성장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직분자들의 성실한 봉사와 몸의 각 지체인 성도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서 자라간다”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성장
바울은 교회가 어떻게 자라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12절에서 교회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한다고 할 때에도 수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장은 수의 성장이 아니라 몸이 장성을 말합니다. 즉 온 성도의 신앙이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자라듯이 성도들도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교회의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좀더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들의 삶이 변화하여서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신앙이 깊어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신앙이 함께 깊어지고 성도들의 삶이 말씀 앞에서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몸의 한 지체로서 함께 자라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기업처럼 생각하고 경영학을 도입하여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성경적인 교회의 성장방식이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원리대로 지어져 가야 하는데 말씀의 원리와 상관없는 교회의 성장을 우리는 경계하고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하면 빨리 성장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씀대로 하면 교인들이 다 떠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섬겨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라야만 합니다. 자라지 않으면 부모님들이 걱정하시고 그들을 병원에 데리고 갈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신자도 믿음에서 꼭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성장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바울은 왜 그렇게 교회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14절에서 그 대답을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실상 창조이후 사단은 끊임없이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은 에베소교회에서도, 또 오늘 우리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으로 우리를 미혹하는 사단의 계획대로 금방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러 가지 유혹과 위협 가운데서 견디어 내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신앙이 아닌, 신앙에 있어서 분별있는, 장성한 신앙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직분을 성실히 이행함으로 성장하는 교회”
그러면 이런 교회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교회가 기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백하면서도 어떻게 자라가야 할지를 몰라서 좌절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도은 그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썼습니다. 11-12절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성장, 곧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습니다. 여기서는 모두 말씀을 전하는 직분만 말하고 있지만,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하는데, 여기 ‘은혜’로 번역된 단어가 원문에는 ‘은사’입니다. 곧 각 은사를 따라 직분을 세우는데, 지난 번 ‘방언의 은사’에 대해 설교하면서 말씀드린대로 ‘교회 안에 가장 중요하고 요긴한 은사’가 바로 ‘예언, 곧 말씀을 전하는 은사’이기에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이 말씀을 전하는 은사들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라는 직분은 지금은 없습니다. 이어 바울은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고 했는데, 여기 ‘목사’는 원문에 ‘양을 치는 목자’를 일컬는 말로, 오직 성경에서 본문에서만 ‘목사’로 번역되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목사와 장로’ 모두를 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곧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치게 하신 감독자’라고 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각 교회의 장로, 곧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들에게 자신도 같은 장로라고 하면서 ‘양무리를 치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양무리의 본이 되는 자세로 치라’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와 장로가 어떻게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바르게 전함으로서 교회의 성장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장로는 말씀을 따라 성도들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심방하고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사는지 살핌으로서 교회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목자’라면 그들은 주님의 양떼들을 주님이 제공하시는 생명의 말씀과 생명수 물을 통하여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목사와 장로에게만 교회성장의 과제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사명은 주어져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선포되어 질 때에 믿음으로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쳐나가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앞으로의 삶을 말씀을 기준으로 고쳐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결단이 없다면 우리 교회가 성장하기를 우리는 바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코카콜라와 과자를 먹고 싶어 한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그것을 주었을 때 그 당시에는 그 아이가 아주 기뻐하겠지만 결국은 그는 자라지 못하고 병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이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는 설교만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설교만을 전한다면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거나 그 생활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그의 서신 5:13-14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나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설교는 단단한 식물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교인에게 영양가가 많은 음식인 설교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더욱 어려운 내용들을 배워가야 하듯이, 때로는 어려운 설교도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그것을 말씀의 원리를 따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자라는 교회”
이제 15,16절을 읽어 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할 때에 교회가 많은 은사들이 있기 때문에 자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은사들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를 하나로 묶어 주는 띠입니다.(골3:14)
골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 말씀들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될 것이다. 이 사랑이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된 성도들을 서로 연결되고, 상합되게 할 것이고, 그때 각 몸의 지체들이 다른 지체들과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자라가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기까지 자라가게 된다.’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된 교회는 이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갑니까? 성경은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말합니까? 이 일은 결코 홀로 되어질 수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무교회주의자들은 교회가 세속화되고 또 타락한 성도들이나 직분자들을 인해 교회를 떠나 혼자 순결한 신앙을 지킴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가 혼자서는 절대로 자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함께 한 몸의 지체로 연합하지 않으면 자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워지며, 그 몸의 지체인 성도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떠난다면 절대로 자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이 힘이 세다고 저 혼자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왼쪽 눈이 시력이 좋다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온 몸과 떨어진 입이 혼자서 무엇을 먹고 마시면 어떻게 소화를 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며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요? 어떤 지체든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 지체는 약하여지고 결국 쓸모없어서 잘라 내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된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홀로 자라갈 수 없고, 반드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온전한 몸에 연합하여 있을 때 건강하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갈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직분자들의 가르침과 인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할 때”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라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 몸의 지체라면 분명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며, 그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추시고 내어주심같이, 서로 사랑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며 함께 자라가기를 힘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고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나 기업처럼 성장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반드시 성경의 원리를 좇아서 자라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임으로 그 몸의 지체된 온 성도들이 함께 자라나야 합니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세우심을 받은 성령에 충만한 직분자들, 곧 목사의 바른 가르침과 장로의 신실한 인도와 집사의 사랑이 넘치는 돌봄을 통하여 온 몸의 지체들에 말씀과 사랑과 섬김이라는 영양이 공급될 때 가능합니다. 성령 안에서 직분자들이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성도들이 직분자들을 사랑 안에서 존경할 때 각 지체가 서로 연락되고, 함께 건강하게 자라갈 수 있습니다. 연약한 지체들도 힘을 얻고, 어린 영혼들이 자라가며, 온 교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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