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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언약 2014-07-17 추천 0 댓글 0 조회 97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1560)



제1조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또 인정하며 그에게만 의뢰하며 섬기며 그만을 예배하며 그만을 믿는다.  하나님은 영원, 무한, 불가해, 전능 및 불가시하신 분이며,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로 구별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이 천지에 있는 모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전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측량할 수 없는 섭리로써 지배하시며, 그 자신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은 만물을 그의 영원한 지혜, 선, 정의로 정하신 것을 고백한다(창1:1; 행17:28; 잠16:4).


제2조 인간의 창조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고백하며 또 인정한다.  즉 그는 우리의 시조 아담을 자기의 형상을 닮게 지으시고 그에게 지혜와 주권과 정의와 자유의지와 자기자신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주셔서 사람의 본성 안에 불완전한 것이 없게 하셨다(창 1:26,27,28 ; 골 3:10 ; 엡 4:24).  이 영광과 완전에 위배되게 남자와 여자가 다같이 타락하였다.  여자는 뱀 때문에 타락하였고 남자는 여자의 말에 따라 타락하였다.  아무튼 말씀으로 금단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분명히 위협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존엄에 반역하게 되었다(창 3:6 ; 2:17).


제3조 원죄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원죄라고 불리는 죄로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손되어 인간과 그 후손은 하나님에 대적하는 자, 즉 사탄의 노예로서 죄악에 봉사하는 자가 되었다(시 51:5 ; 롬 5:10 ; 7:5 : 딤후 2:26 ; 엡 2:1,2,3).  그 결과 영원한 사망이 위로부터 중생하지 못하였던 자, 또 현재 중생하지 못한 자와 또 장래에도 중생하지 못할 자들을 지배하며 주관할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의 마음 속에 그의 말씀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창조하심으로 우리를 중생시키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과 은사들을 굳게 붙잡는다(롬 5:14 ; 6:23 ; 요 3:5 ; 롬 5:1 ; 빌 1:29).


제4조 약속의 계시에 관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그에게 대한 복종으로부터 무섭게 타락한 후 다시 아담을 찾아 그의 이름을 불러 그의 죄를 책망하시고 죄를 선고하시고 마지막에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다”는 기쁜 약속을, 즉 그 후손이 악마의 일을 타파하리라는 약속을 그에게 주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이 약속은 종종 반복되었고  차차 분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쁨에 넘친, 믿음이 돈독한 신자들이 부단히 이 약속을 이어받고 믿어 온 것이었다.  즉 아담으로부터 노아에게,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에 이르기까지 율법 아래서 믿음이 독실한 선조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기쁜 날을 바라보고 기쁨에 넘쳤었다(창 3:9 ; 3:15 ; 12:3 ; 15:5,6 ; 삼하 7:14 ; 사 7:14; 9:6; 학 2:7,9; 요 8:56).


제5조 교회의 지속과 증가와 보존에 관하여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아담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실 때까지 모든 시대에 있어서 그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인도하시고 증가시키기고 교회에 영예를 주시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고국으로부터 불러내셔서 그를 인도하시고 그의 자손을 번성케 하셨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그를 지키시고 바로의 노예와 억압에서 구하셨고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과 제도와 의식을 주셨다.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고 판관들 시대를 거쳐서 사울 다음에 왕으로서 다윗을 주셨고 그의 자손에게서 나온 한 사람이 영원히 왕좌를 차지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계속 예언자를 보내셔서 그들이 우상숭배에 기울어졌을 때 하나님의 정도(正道)에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완고하여 정의를 경멸하였으므로 그들을 적군의 손에 넘기셨다.  옛날 모세의 입으로 위협을 받은 대로 거룩한 도성이 파괴되고 궁전은 불타고 모든 땅은 70년간 황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써 다시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내셨고 도성과 궁전이 재건되었다.  그러나 약속에 따라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그들은 사탄의 온갖 유혹과 공격을 참고 견디었다.


제6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때가 차서 하나님은 성자, 곧 영원한 지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본체이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성자는 성령의 역사로 여자 곧 처녀의 본질에서 인간성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여 다윗의 후손, 하나님의 약속의 천사, 약속된 메시아가 탄생하셨다.  우리는 그를 임마누엘, 즉 하나님과 사람의 두 완전한 본성이 한 품격으로 통일되어 결합된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 고백하고 인정하였다. 우리는 이 고백에 따라 아리우스, 마르키온, 유티케스, 네스토리우스를 배격될 해로운 이단으로서 벌하였고, 또 그의 신성의 영원성을 부인하거나 인간성의 진실성을 부인하거나 그 두 가지 본성을 혼합하거나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벌하는 것이다.


제7조 왜 중보자, 화해자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어야 하는가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신성과 인간성 사이의 신성한 결합은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뜻에 따라 된 것이며 우리의 모든 구원은 여기서 생기며 그것에 의존하는 것으로 믿는다.


제8조 선택에 관하여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영원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창세 이전부터 그를  우리의 머리로 삼으시고 또 우리의 형제이며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 영혼의 위대한 감독으로 정하셨다.  하나님의 정의와 우리의 죄의 적대관계 때문에 육적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에게 능히 이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자진하여 우리의 몸과 살과 뼈를 취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와 화해자가 되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가 친히 다음과 같이 증거 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이신 분에게 올라간다”고.  아담 안에서 우리가 가졌던 가장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우리에게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므로 멸망할 우리와 같이 계실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우리의 형제가 되도록 우리에게 주셨고 이미 말한 대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그를 인정할 때 받을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또 구주, 속죄주, 참 하나님, 참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지셔야 할 형벌을 대신 받아야만 되었고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친히 나타나서 우리의 인간성에 따라 우리의 죄와 불순종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고 그의 죽음으로써 사망의 창시자를 정복하고 승리해야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일하신 하나님은 죽음을 당할 수 없고 또 인간성만으로는 사망을 정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두 본성을 하나의 품격으로 결합시키신 것이다. 한 쪽은 죄 때문에 우리가 받을 사망의 약점이고, 다른 쪽은 무한한 능력, 즉 사망을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생명, 자유, 영원한 생명을 획득해 주신 신성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제9조 그리스도의 죽음, 고난, 그리고 장사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진하야 희생물로서 그의 어버지에게 바쳐 죄인의 고뇌를 경험하시고 우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죄 없는 어린 양으로서 세상의 심판에 따라 정죄 되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주를 받고 십자가 위에서 잔인한 죽음의 고통을 받으신 것만이 아니고 그는 죄인이 당연히 받아야 할 아버지의 진노를 일시적으로 받아 고통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몸과 영혼으로 고통을 당하시고 사람들의 죄를 위한 완전한 변상을 치르신 그 고난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유일한 아들이었음을 확신한다.  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한 다른 희생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죄의 용서와 변상을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영원히 획득한 것임을 우리가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제10조 부활에 관하여


  우리는 의심 없이 다음과 같이 믿는다. 즉 사망의 슬픔이 생명의 창시자를 속박할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 매장되어 음부에 내려가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시고 사망의 창시자를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생명을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망과 사망의 속박을 이긴 것이다.  우리의 구주의 부활이 실로 그의 원수의 증거에 의하여 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가 살아남으로써 또 예루살렘 거리에 많은 사람이 나타난 것으로써 확증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것은 천사의 증거와 사도들과 그리고 회개한 사람들로서 구주의 부활 후에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신 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증되었다.


제11조 승천에 관하여


  우리는 처녀에게서 나서 십자가에 달려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몸이 모든 것의 성취를 위하여 승천하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또 주님은 우리의 이름과 위로를 위하여 천지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또 주님은 아버지 우편에 앉아서 그의 나라에서 왕으로 취임하셨고 우리를 위해서는 변호사이시며 유일한 중보자 이시다.  형제들 가운데서 주님만이 영광과 존귀와 특권을 소유하시다가 마침내 그의 모든 원수들이 그의 발을 올려놓는 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 원수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또 그 심판의 집행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승천하신 모습으로 눈으로 보이게 재림하실 것을 믿으며 그때 모든 사람들이 새로 회복되어 의를 위하여 학대와 굴욕과 악에 시달려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약속된 축복의 불멸의 생명을 이어받을 것을 믿는다.

   그러나 반대로 강팍하고 불순종하고 잔인한 박해자들과 더럽혀진 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여러 가지 불신하는 자들은 완전한 암흑 속에 던짐 받을 것인데 거기서는 구더기는 죽지 않을 것이며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날과 그날의 심판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다만 우리의 욕망을 억제하는 한가지 구속일 뿐 아니라 무한한 위로가 된다.  이것으로 세상의 왕들의 위협과 현세의 위험과 죽음의 공포도 우리를 우리의 머리이신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결사를 포기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약속의 메시아, 변호자, 중보자 임을 고백하고 확신한다.  주님의 영예와 직책에 맞서서 사람이나 혹은 천사가 스스로 교만을 부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권자이시며 최고의 지배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으로 보고 그들을 혐오할 것이다.


제12조 성령의 신앙에 관하여


  우리의 이 신앙과 신앙의 확신은 육과 혈, 즉 우리 인간 안에 있는 자연의 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 성령을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성령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그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  성령 없이는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원수이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 그대로는 죽는 자이며 눈이 어두우며 강팍하기 때문에 만일 주 예수의 성령이 죽은 자를 되살리시며 우리 마음에서 암흑을 제거하시고 그의 기뻐하시는 뜻에 복종하도록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쳐부수지 않으시면 우리는 찔려도 느끼지 못하며 빛이 드러나도 보지 못하며 계시되어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 우리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속량 하시게 하셨다고 위는 고백한다. 이처럼 우리는 또한 성령이 우리의 중생 이전이든 이후이든 간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아무런 공로 없이 우리를 성화 시키시고 중생 시켰음을 고백한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창조와 속죄의 존귀와 영광을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처럼 중생과 성화를 위해서도 그 어떤 영광이나 영예도 쾌히 포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선량한 생각을 한 가지도 못하며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의 과분한 은혜의 영광과 찬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제13조 선한 행위의 원인에 관하여


  선한 행위의 원인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이 자유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 에수 그리스도의 영에 있다고 고백한다.  그의 영은 참된 믿음에 의하여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살며 우리가 그 안에서 걷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대로 선한 일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화의 영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가 그 마음 안에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우리는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살일, 억압자, 잔인한 박해자, 불륜한 자, 불신앙자, 우상숭배자, 술 취하는 자, 도둑질 하는자, 불의를 행하는 자는 참된 신앙을 갖지 않으며, 그들이 악을 계속하여 행하는 한 예수의 영을 절대로 갖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들이 참된 신앙으로 받는 주 예수의 영은 모든 사람의 마음의 소유가 되어서 그들을 새로 지으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전에 사랑했던 것을 미워하고 전에 미워했던 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영과 육 사이의 영원한 투쟁이 벌어진다.  그것은 육적이며 자연적 인간이 자기 자신의 타락으로 스스로 쾌락과 향락에 도취하여 고난을 당할 때는 불평을 품으며, 번영할 때는 의기양양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존엄을 파손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우리의 영혼에서 증거 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우리는 불순한 쾌락에 저항하며, 이 타락의 속박으로부터 구출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여 마침내 우리의 죽어야 할 몸에서 왕 노릇 못하게 죄를 정복한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육의 사람에게는 이러한 투쟁이 없고 탐욕을 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악마처럼 죄를 따른다.  또 그들의 타락한 욕망이 그들을 부패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죄와 싸우며 불의에 유혹되었음을 알면 크게 슬퍼한다 . 만일 그들이 넘어지면 열심히 회개하여 다시 일어난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자기 자신들의 힘으로 행하지 않고 주 예수의 힘으로 한다 . 주 예수 없이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제14조 어떠한 행위가 하나님 앞에 선한 것으로 인정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한 율법을 사람에게 주셔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존엄에 반역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실 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보답하여주시기로 약속하신 모든 일을 행하도록 명령하셨다고 고백한다 . 또 그러한 행위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 다른 하나는 이웃 삶을 위하여 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을 하나님의 계시히신 뜻에 따라 확신하는 바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아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성례전을 통한 교제를 가지는 일은 십계명의 첫째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행위이다 . 부모, 왕후, 지배자, 위에 있는 권위를 존경하는 일, 그들을 사랑하고 도우며, 또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남이 없이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며, 죄 없는 생명을 도우며, 억압자를 진압하며, 압박하는 자를 막으며, 우리의 몸을 정결하게 가지며 진실과 절제로써 생활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말과 행위에 있어서 올바르게 행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이웃 사람을 해치려는 욕망을 억제하는 일, 이러한 것은 십계명 둘째 부분에 기록된 선한 행위일뿐더러 그런 일은 그들이 스스로 행해야 할 일로써 명령된 것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들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것은 가장 혐오할 죄이며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싫어하시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할 일이다.  즉 우리가 필요할 때 하나님만은 불러 구하는 일을 하지 않고, 또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을 경멸하는 일, 우상을 갖는 일, 혹은 그 것을 예배하고 우상숭배를 지키며 그것을 변호하는 일,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을 생각하는 일이 적은 일,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전을 더럽히며 남용하며 경시하는 일, 살인하거나 혹은 그 일에 동의하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며, 우리가 그 일을 반대할 때 피를 흘리게 하겠다고 말하는 일, 마지막으로, 첫째와 둘째 부분 이외의 다른 어떤 계명이라도 범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하고 확신한다.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불만이 오만하고 감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불붙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로서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신앙을 가지고 행하는 행위만이 선한 행위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반대로, 악한 행위는 단순히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게 행하는 일일뿐더러 신앙과 하나님 예배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발견과 고안 이외에 아무런 확신도 없이 행하는 일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이러한 일을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고 거부하신 것이다.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제15조 율법의 완전과 인간의 불완전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이 가장 올바르고 가장 신성하고 가장 공정하고 가장 완전하며 또 가장 완전하게 지켜지도록 명령된 것이며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으로 고백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성질은 타락하여 극히 약하고 불완전하여 우리는 결코 완전하게 율법의 행위를 완수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중생 한 후에도 죄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되며 속죄의 주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는 율법의 마지막이며 완성이시다.  그의 공로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지만은 하나님의 저주는 우리 위에 내리지 않는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비춰서 우리를 보시며 우리의 불완전한 복종을 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시고 받아들이시고 성자의 의를 가지고 많은 허물을 가진 우리의 행위를 가리워주신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율법에 복종할 의무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인간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만이 율법이 요구하는 율법에 대한 복종이 요청되는 것이며 또 지금도, 또 장래에도 요청 될 것이다(율법 제3용법).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행했을 때 겸손하게 무익한 종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행위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자기의 공적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헛된 것을 자랑하며 저주받을 우상숭배에 신뢰하는 것이다.


제16조 교회에 관하여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한 하나님을 믿듯이,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또 세상 끝날에도 있을 하나의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으로 예배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의 하나의 공동체를 믿는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시며 교회는 또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며 신부이다.  이 교회는 가톨릭, 즉 보편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 유대인, 이방인을 막론하고 말이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성자 그리스도 예수와 교제하며 성령의 성화가 이뤄진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교제가 아니고 성도의 교제라고 불린다.  교회는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으로서, 측량할 수 없는 이익의 열매, 즉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한 신앙, 한 세례를 가진 이 교회 밖에는 생명이 없고 영원한 행복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것을 모독하는 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며, 공평과 정의에 따라 사는 사람들, 또 고백하는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그리스도 예수 없이는 생명도 구원도 없다.  그러므로 성부가 성자 예수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 아니고는 아무도 교회에 속할 수 없고, 그리스도 앞에 나아온 사람들이 그의 교리를 고백하고 그를 믿는다.  우리는 신앙이 독실한 부모와 함께 그들의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만이 교회를 알고 있다.  또 교회는 이미 세상을 떠난 선택된 사람들도 포함한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승리의 교회라고 부르며 죄와 악마에 대항하여 싸우며 앞으로 세상에 살 사람들도 포함한다.


제17조 영혼의 불멸에 관하여


  선택된 사람들로서 죽은 사람은 그의 노고로부터 풀려서 평안과 휴식을 얻는다.  그들은 어떤 환상가가 주장하듯이 자는 것도 아니고 또는 망각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받는 공포, 고통 및 유혹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하여 승리의 교회의 이름을 지니게 된다.  반대로 악하며 불신앙한 자들로서 죽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받는다.  그들이 기쁨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 잠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누가복음 16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와 강도에 대한 그의 말씀과 제단 아래서 울부짓는 영혼이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주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고 증거 하는 말에서 밝혀진다.


제18조 무엇으로 참된 교회는 거짓된 교회와 구별되며, 교회의 교의의 바른 판단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탄은 처음부터 해로운 유대인 회당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 잔인한 살해자의 마음을 불붙여서 참된 교회와 그 회원들을 박해하여 괴로움을 더하게 하였다.  그것은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이스마엘이 이삭을, 에서가 야곱을, 그리고 유대인의 사제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그 후의 사도들에게 행한 일과 같다. 가장 필요한 것은 참된 교회가 분명하고 완전한 징표에 의하여 추악한 회당과 구별되어서 우리가 어떤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용납할 때 스스로 속여서 우리 자신이 정죄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정결한 신부가 무서운 창부, 즉 악의가 찬 교회를 식별할 수 있는 징표와 증거는 결단코 역사가 오래 된데 달리지 않으며 또 잘못된 칭호에 달린 것도 아니며 또 영원한 감독직의 세습에 달린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약속된 지위에 달린 것도 아니고 또 어떤 한가지 과오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에 달린 것도 아니다.

  가인은 나이와 지위로서는 아벨과 셋을 능가하였다.  예루살렘은 지구상의 모든 장소를 능가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는 또한 사제가 아론으로부터 이어져 있었다.  또 많은 사람이 학자와 바리세인들과 사제들에게 복종하고 있었고 또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교훈도 믿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전날에 한때 이름이 붙었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교회였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설교라고 우리는 고백하며 확신한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책이 진술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말씀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이다. 이것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결합되어서 마음에 그것을 새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훈련이 올바로 시행되며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으로 악덕이 억제되고 선행이 육성되는 것이다(권징).  이러한 징조가 보이고 어떤 때이든 두 세 사람의 소수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그 규정을 지키는 곳에는 의심할 것 없이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약속대로 그들의 교회 안에 계신다.  앞에서 말한 바 세계 교회만이 아니고 특히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을 전파하여 심은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및 그 밖의 장소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린다.  우리는 스코틀란드 왕국에서 참된 신앙으로 예배를 드리는 거리와 도시와 그 밖의 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교회를 가질 것을 권한다.  우리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의는 하나님의 말씀, 즉 구약과 신약성경, 즉 교회가 고대로부터 항상 경전으로서 가지고 있던 책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 책 안에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모든 것이 충분히 나타나 있음을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성경의 해석은 결단코 개인의 힘이나 공작 인물의 힘이나 교회의 힘에 따라서 되는 것이 아니며, 또 어떠한 인격과 지위의 우월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영에 달린 것이다.  성경의 해석과 의미에 관하여서 또 어떤 부분과 어떤 문장에 대한 남용을 시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 논쟁이 생길 때 성령이 성경 안에서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것 이상으로 우리 이전의 사람들이 말하거나 행한 것을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통일성을 지닌 성령이신 하나님의 영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같이 고백하는 바이다.  만일 어떤 교사나 교회나 회의의 해석과 결정과 고시가 있더라도 성경에 쓰인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면 비록 회의나 왕국이나 국민이 그것을 인정하고 용납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참된 해석과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  우리의 신앙의 근본적인 점과 성경의 본문에 위반되는 해석을 받아들이거나 동의해서는 안 된다.


제19조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경이 충분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주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바대로 성경의 권위는 다만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사람이나 천사에 달린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에서 받아들인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권위도 갖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며 참된 교회를 해치는 것으로 확신한다.  참된 교회는 항상 교회의 신랑이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이며  스스로 주인이 되어 그 음성을 지배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제20조 총회와 그 힘과 권위 및 총회의 소집의 이유에 관하여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이 정식으로 소집된 총회에 모여 우리에게 제안된 것을 경솔한 비난을 받지 않도록 올바른 조사도 없이 총회라는 이름 아래서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람이므로 중요한 일에 있어서도 과오를 범할 수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그 회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어진 결정과 명령을 선언하는 한 우리는 그 회의를 존중하고 승인해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총회의 이름 아래서 새로운 신조의 작성을 주장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게 조직이나 교의의 작성을 주장한다면 우리의 영혼을 유일하신 하나님의 음성에서 떠나서 인간의 교의와 조직에 복종시키는 악마의 교의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거부한다.  총회를 소집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전에 주시지 않으신 영원한 율법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며 또 새로운 신조를 만들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도 아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말씀의 해석에 의하여 그가 전에 원하시지 않았던 것이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제시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기 위함도 결코 아니다(회의의 명목에 부합되기 위하여)

  회의의 이유는 한편으로는 이교도를 논박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회원들의 신앙고백을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의하여 행하는 것이며 총회가 하는 일은 과오가 없다는 의견이나 특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총회의 주된 이유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 밖의 이유는 선량한 정치를 위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처럼 모든 것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정치와 의식도 그것이 모든 시대와 장소를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은 사람들이 계획한 것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교회를 교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신을 품게 하는 때는 그것을 변경해도 좋으며 또 변경시켜야 한다.


제21조 성례전에 관하여


  성부는 율법 아래서 희생의 사실 외에 두 가지 주요 예전을 두셨다.  즉 할례와 유월절이다.  그리고 이것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와 같이 복음의 시대에도 두 가지 성례전이 있음을 믿고 인정한다.  그것은 주 예수가 제정하신 것이고 주님의 몸의 일원으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즉 세례의식과 성찬예식, 곧 주님의 몸과 피의 교제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옛 계약의 성례전과 같이 새 계약의 새 계약의 성례전은 단지 주님의 백성과 주님의 계약을 갖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신앙의 권장과 성례전에 참여함으로서 그의 마음에 주님의 약속의 확신을 주며 선택된 자들이 자기들의 머리가 되는 그리스도 예수 와 같이 갖는 결합, 일치 및 교제의 확신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례전은 보이는 표지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공허한 고백을 배격한다.  우리는 세례의식에 의하여 그리스도 예수와 연결되어 주님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것으로써 우리의 죄가 가리워지고 용서된 것을 확신한다 . 또 바로 집행된 성찬의식에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와 결합되고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 된다. 우리는 교황이 해로운 것을 가르치고 또 저주받을 것을 믿고 있듯이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가 진짜 피로 실체의 변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성례전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 예수의 몸과 피에 의하여 주어지는 실제적인 일치와 결합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 성령은 우리의 신앙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고, 육신적이고, 지상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서 우리를 위하여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시고 이제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과 피와 실제로 연합한다.

  하늘에 계셔서 영광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몸과 땅 위에서 죽을 우리들 사이의 무한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떼는 빵이 그리스도 몸과의 교제이며 우리가 마시는 잔은 그와 피와의 교제임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이 독실한 사람이 주님의 성찬을 올바로 받음으로써 주 예수의 몸을 참으로 먹고 그의 피를 참으로 마시며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은 그들 안에 계시고 그들은 주님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확신한다.  살은 바로 주님의 살이 되고 뼈는 주님의 뼈가 된다.  그리하여 영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몸 자체의 조건과 성질은 멸하여 썩어질 것)에다가  생명과 영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심으로써 우리에게도 동일한 특전을 주셨다.

  그것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주시는 것도 아니다.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이 주님의 성만찬을 올바로 받을 때 자연적인 인간이 알 수 없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신비한 결합을 가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신앙이 착실한 사람도 태만과 인간적인 약함 때문에 주님의 성찬을 받는 그 순간에도 얻을 수 있는 만큼의 이익도 얻지 못하지만 옥토에 뿌려져 살아 있는 씨처럼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주 예수의 올바른 제도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성령은 신비한 역사의 열매인 신앙을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 이 모든 것은 성례전이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 되게 하신 유일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참된 신앙에서 오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므로 성례전이 단순한 표지라고 우리가 확언하거나 확신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모욕하며 분명한 진리에 위배되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성례전의 표지인 여러 가지 원소들 사이에는 한 가지 구별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지가 의미하는 실체 대신에 그 표지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표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표지의 원소들을 무용한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우리 자신들을 열심히 살펴본 후 경건하게 그것들을 사용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도가 다음과 같이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게 된다”.


제22조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에 관하여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한 일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첫째는 말씀의 설교를 위하여 지정된 사람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즉 올바른 교사가 이것을 집행 할 일이다.  하나님은 이 교사의 입에 권고의 설교를 넣어 주신다.  교사들은 교회에서 올바르게 선택된 사람들이다.  둘째는 하나님이 정하신 물질과 방법으로 집행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 예수의 참된 성례전이 아니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전의 분할에 관한 로마 교회의 교의를 혐오한다.  첫째 그 교회의 교역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교역자는 아니다. 즉 그들은 교회에서 성령이 세례를 받도록 교도하시지 않는 여자에게 세례를 베풀기를 허락한다.  둘째로 그들은 이 성례전을 그리스도의 성업과 근본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성례전과 혼동시키고 있다.

  즉 기름, 소금, 춤, 세례의식 때의 다른 방법의 집행 등은 다 인간의 고안에 속한 것이다.  성찬의 빵을 상자에 넣어서 거리와 한길에 가지고 나가 돌리며 그것으로 성찬을 존경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례전을 파손하는 일이며 올바른 사용이 못된다.  그리스도는 “받아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고 하셨다.  그의 말씀과 권고에 따라 주님은 거룩한 몸과 피의 성례전을 위하여 빵과 포도주를 성별 하셨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게 하기 위한 것이지 교황이 가끔 집행한 대로 그것이 신으로서 예배되거나 숭배되어서는 안 된다.  또 사람들에게서 성찬의 일부, 즉 거룩한 잔을 빼앗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자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이다.

 또 성례전이 제정된 목적을 교역자와 수찬자가 다같이 이해하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수찬자가 거기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면 올바로 성례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교사라 할지라도 성례전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잘못된 교의를 가르친다면 악한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목적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 할 일이다.  이제 이런 일이 로마 교회의 성례전에서 나타나는데 이런 것은 주 예수의 거룩한 성업의 외적인 형식과 그 목적과 견해를 파손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리스도가 행하시고 또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복음서와 바울에게서 분명하게 되어 있다.  사제가 성단에서 행한 것을 우리가 상기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가 제정하시고 또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해야만 할 목적과 이유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즉 그것은 주님의 죽음을 나타내며 그가 오실 때까지 찬미하고 설교하고 존귀를 돌리며 찬양할 것을 제시한다 . 그러나 로마 교회의 사제가 어떤 목적과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미사를 집행하는지는 미사의 용어와 그들의 스승에게서 살필 수 있다. 즉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성부 하나님에게 희생 제물을 받치는 것이다. 이 교의는 그리스도 예수를 모독하는 것이며 한때 모든 사람의 정죄를 위하여 바치신 주님의 유일한 희생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극도로 혐오하며 비난하는 것이다.


제23조 성례전의 참여자에 관하여


  우리는 세례 의식은 성인으로서 사려가 있는 사람들에게와 신자의 유아들에게도 베푸는 것으로 믿고 또 인정한다.  그리고 신앙과 이해를 갖지 못한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거부한 재세례파의 과오를 우리는 거부한다.  그러나 주님의 성찬은 신앙의 권속들에게만 합당한 것임을 우리는 고백한다 . 우리는 그들의 신앙과 이웃 사람에 대한 의무를 시험해 볼 수 있다.  신앙 없이 성만찬을 먹고 마시거나 더구나 자기들의 형제들과 분열되어 다툰다면 합당하지 않게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우리들의 교역자가 공적으로 또는 특별하게 주 예수의 만찬을 허락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신앙과 생활에 관하여 조사를 한다.


제24조 국가 공직에 관하여


  우리는 제국, 왕국, 영지 및 도시 등은 하나님이 구별하시고 또 제정하신 것으로 고백하고 인정한다.  제국의 황제, 왕국의 왕, 영지의 군주, 도시의 관리의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으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또 인류의 이익과 복지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장기간 수립된 시민적 질서를 부수고 혼란시키는 자는 인류의 원수일 뿐더러 하나님의 뜻을 위반하여 싸우는 자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는 이러한 권위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고 가장 높여야 할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의 때에 하나님 자신이 앉아서 재판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또 재판관과 왕후는 선한 사람들을 칭송하며 보답하고 악인의 처벌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검을 받았다.

  또 왕후, 군주, 관리는 우선 근본적으로 종교의 보존과 정화를 위한 임무를 가진 것으로 우리는 확신한다.  그것은 시민적 질서를 위할 뿐더러 참된 종교의 유지와 우상과 미신의 박멸을 위하여 정해진 것이다.  다윗,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아 및 그 밖의 왕 등이 신앙의 정화를 위하여 주의를 집중시켰고 특별한 칭찬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권세는 다만 자기의 의무를 행하는 데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에 반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는 것이며 죄가 된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그러나 왕후와 군주가 부지런히 자신들의 직무수행을 하는 한 누구든지 이들을 돕지 않고, 조언해주지 않고, 봉사하지 않으면, 이는 하나님께 대해서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백한다.   


제25조 교회에 거져 주신 은사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교되고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훈련이 실시되는 것은 참된 교회의 무오한 표지이지만, 그리스도 예수가 선택하신 사람들로서 특별한 사람들만이 이 교제에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라지도 곡식과 함께 파종되어서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도 선민들의 사람 안에 결합되어서 그들과 함께 외적인 말씀과 성례전의 은혜를 입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얼마동안 신앙을 고백해도 마음으로 하지 않고  다시 타락하여 마지막까지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열매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말한 대로 마음에서 진실 되게 믿고 입으로 분명하게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을 것이다.  첫째 이 세상에서 죄의 용서는 다만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신앙에만 달린 것이고 죄는 우리의 가멸적인 몸에 계속 붙어 있을지라도 그 죄를 우리에게 전가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로써 덮어 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체의 심판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몸의 부활을 주신다는 것이다.  바다는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을 내어놓으며 땅은 그 안에 갇힌 자를 내어놓으며 영원한 하나님은 그의 손을 티끌 위에 펼치시며 죽은 자들은 썩지 않는 자로 부활하며 모든 사람이 매장되던 날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며 그들의 행위에 따라 영광 아니면 형벌을 받을 것이다.

  이제는 헛된 환희와 잔악과 음행과 미신과 우상숭배는 꺼지지 않는 불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몸과 영혼이 영원한 고통을 받으며 또 모든 더러움과 악 가운데서 악마에게 봉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잘 견디어 주 예수에게 신앙을 계속 고백한 자는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얻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되며 주님에게 선택된 자는 다 그의 영광의 몸과 같이 되어서 성부 하나님의 왕국에 들려 올라갈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며 영원히 하나님으로 영원토록 계신다.  성자와 성령과 함께 성부 하나님에게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바이다. 아멘.


“주여 일어나셔서 당신의 원수들을 쳐부수소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미워하는 그들이 당신 앞에서 도망쳐 가게 하소서.  당신의 종에게 힘을 주셔서 확신을 가지고 용감하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모든 백성들이 당신의 참된 지식을 알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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