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신앙고백

  • 개혁교회자료실 >
  • 보편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서
언약 2014-07-18 추천 0 댓글 0 조회 304
 

[벨직신앙고백서] 


제 1 장.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


  우리 모두는 유일하시고 단순하시며 영적인1),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2)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분은 영원하시고3) 불가해하며4) 보이지 아니하며5) 불변하며6) 무한하고7) 전능하시며 완벽하게 지혜롭고8) 공의로우며9) 선하시고10), 그리고 모든 선(善)의 넘쳐 흘러나는 샘11)이시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제 2 장. 우리가 하나님을 깨닫는 방법

  우리는 두 가지 방법에 의하여 그 분을 안다.

  첫째,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에 의하여12); 우주는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가장 우아한 한권의 책이며, 크고 작은 피조물은 그 안에 담겨진 문자로써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즉, 사도 바울의 말처럼 (롬1:20),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완성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그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확신시키고,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말씀에 의하여13), 더욱 분명하고 충분하게 즉, 이생에서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만큼, 자신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신다. 


제 3 장.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보내진 것도 전달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사도 베드로가 한 말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에 의하여 감동받은 대로 말하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신 특별한 돌보심으로 인해, 자신의 종들 곧,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명령하시되14) 계시된,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고, 하나님 자신이 자기 손가락으로 두개의 율법 판을 쓰셨다15)는 사실을. 그러므로 이러한 기록들을 우리는 거룩하고 신성한 책들[성경]이라고 부른다.


제 4 장. 정경인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책들은 두 권 즉, 구약과 신약에 담겨져 있으며 그것들에 반대해서는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것들을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아래와 같이 이름한다.

  구약의 책들은: 모세의 책 다섯 권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라는 책들, 그리고 사무엘서 두 권, 열왕기 두 권, 역대기 두 권, 에스라의 첫 번째 책,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책 세 권 즉, 잠언 전도서 아가, 대 선지서 네 권 즉,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열 두 권의 소 선지서들 즉,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다.

  신약의 책들은: 복음서 네 권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열 네 개의 서신들 즉, 로마인들에게 한 권 에베소 사람들에게 한 권 빌립보 사람들에게 한 권 골로새 사람들에게 한 권 디모데에게 두 권 디도에게 한 권 빌레몬에게 한 권 히브리인들에게 한 권, 다른 사도들의 일곱 서신들 즉, 야고보가 쓴 것 한 권 베드로가 쓴 것 두 권 요한이 쓴 것 세 권 유다가 쓴 것 한 권, 그리고 사도 요한의 계시 이다.     


제 5 장. 성경의 위엄과 권위의 근거


  우리 신앙의 규칙과 토대와 확증을 위하여,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오직 이것들만을 거룩하고 표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담겨있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없이 믿는다. 교회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승인해서가 아니라 더욱 특별하게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증거하시며, 그 사실에 관해서는 그 책들 자체에 증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맹인조차도 그 책들 속에 예언된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제 6장. 정경과 외경의 차이.


  우리는 이 거룩한 책들을, 의심스러운 책들[위경]로 부터 즉, 에스드라의 셋째와 넷째 책, 토비아스 유딛 지혜 예수쉬락 바룩이라는 책 들, 에스더에 더해진 부분, 용광로 속 세 소년의 노래, 수산나의 역사,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의 책 두 권으로 부터 구별한다. 위경 모두를 교회가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표준적인 책들[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그렇다. 신앙의 어떤 주장 혹은 기독교의 어떤 주장을, 결코 위경의 증거로 부터 확증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거룩한, 다른 책들로 부터 주의를 빼앗는 것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제 7장. 유일한 신앙의 규범으로서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이 거룩한 책들이 하나님의 의지를 충분히 담고있다는 사실과,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안에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16)는 사실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수단 전체가 대체로 그 안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어느 누구라도, 비록 사도라고 할지라도17) 성경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다. 그렇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18), 하늘로 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므로19), 그것의 가르침이 모든 면에서 대단히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사실이 그로 인하여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무리 거룩해도 인간의 여하한 저작물을 그 신성한 책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20). 또한 관습21), 엄청난 수, 오래됨, 시대와 사람들의 계승, 종교회의, 포고, 국법들을 하나님의 그 진리와 비교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진리는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이며, 모든 인간들은 그 스스로가 거짓말쟁이22)이며, 헛됨 그 자체 보다 더욱 헛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온 이 무오한 규칙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거부한다23). 즉,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24)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너희에게 오되 이 가르침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너희 집으로 받아들이지 말라.25)


제 8장 하나님은 본질상 한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구분되심.


  하나님의 이 진리와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유일하신 한 하나님을 믿는다. 그 분은 단일한 본질이시며26) 그 안에 세 위격이 계신데,27) 비공유적 속성에 따라 실제로, 참으로, 영원히 구별된다. 이 세 위격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28)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의 원인이요, 기원이며, 시작이시다.29) 성자는 성부의 말씀이며,30) 지혜요,31) 형상32)이시다. 성령은 영원한 능력과 힘이시며,33)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나오셨다.3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구별로 인하여 셋으로 나뉘지 않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자신들의 속성에 의해 구별되는 자신의 인격성을 각각 소유하지만 이 세 위격이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이실 뿐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은 성부도 성자도 아님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구별된 이 위격들은 나눠지지 않고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성부는 육체를 입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와 같았지만, 성자만은 육체를 입으셨다.35) 성부께서 존재하셨다면 반드시 성령도 함께 였다. 이 셋 모두 동일본질이시며 동일하게 영원하시다. 첫째도 마지막 째도 없다. 그 세분 모두 진리에 있어서, 권세에 있어서, 선함에 있어서, 자비에 있어서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제 9장. 한 하나님 내에 있는 삼위위격들,

        즉, 삼위일체에 관한 앞장에 대한 증명


  이 모든 것들을, 그 분들의 작용들로 부터 만큼이나, 그리고 주로 우리 자체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들에 의해 알고 있다. 이 거룩한 삼위일체를 믿도록 가르치는 성경의 증거들이 구약의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으니 분별있게 판단해서 골라보자. 창세기 1:26,27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36)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창세기 3:22에서는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37)라고 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는 이 말씀을 볼 때, 신성 안에 하나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할 때는 단일성을 가리킨다. 사실상, 얼마나 많은 수의 인격이 존재하는 가는 말하지 않는다. 구약에서 다소 모호하게 보이는 것이 신약에서는 매우 분명하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38)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고, 성자는 물속에 계셨으며, 성령은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의 세례에 이 공식을 제정하셨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주라.”39) 누가복음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주님의 모친, 마리아에게 이같이 말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40) 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41) 그리고 “하늘에서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부와 말씀과 성령이라 이 셋은 하나이다.”42) 이상의 모든 것들에서, 오직 하나인 신적 본질에 세 인격이 존재하는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된다. 비록 이 교리가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지만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그 사실을 믿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 하늘에서 완벽한 지식을 향유하며 혜택을 누릴 것을 기대한다.43)        

  더욱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이 세분의 특별한 직분들과 직능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부는 그 능력으로 인해 우리의 창조주로 불리우며,44) 성자는 그 피로 인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45)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심으로 인해 우리를 거룩케 하는 자이시다.46)

  거룩한 삼위일체에 관한 이교리를 참된 교회는, 사도시대 이후 바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유대인들 마호멧교도들 그리고 말시온 마니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테누스 아리우스와 같은 잘못된 기독교인들과 이단들에 대항하여 수호해왔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정통 교부들은 그런 자들을 정당하게 정죄해왔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세 신경 즉,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신경을, 그리고 그것들에 조화하여 고대 교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제 10장.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에 따르면, 그는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고 (그렇다면 그는 일개 피조물일 것이다) 영원으로 부터 태어난,47) 그러나 성부와48) 동일한 본질이며 동일하게 영원한,49)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50) 성부의 위격의 분명한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요,51) 모든 점에서 성부와 동일하시다는52)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이 증거들을 함께 비교해 봄으로써 알게 되는 것 처럼, 그는 우리의 본성을 입으신 그때로 부터 뿐만이 아니라 영원 그 자체로 부터도53)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54) 요한은 만물을 그 말씀이 만들었다고 하며, 그 말씀을 하나님이라 부른다.55)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에 의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고56) 그와 같이 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한다.57) 따라서 하나님, 말씀,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그 분은, 자신이 만물을 창조하시던 바로 그 때에 존재하셨다는 결론을 반드시 내리지 않을 수 없다.58) 그러므로 선지자 미가는, 그의 나오심은 옛적부터 즉, 영원으로 부터 였다고 한다.59) 그리고 사도는 그는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다고 하였다.60) 따라서 그는, 우리가 기원하고 경배하고 섬기는, 진실하고 영원하며 전능하신 그 하나님이시다.


제 11장.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성령님.          


  우리는, 성령은 영원으로 부터 성부와61) 성자로62) 부터 나오시며,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않고 다만 그 두 분으로 부터 나올 뿐이며 순서상 거룩한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하며 유일한, 본질과 위엄과 영광을 소유하시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대로63) 그는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며 또한 고백한다.


제 12장. 만물의 창조, 특별히 천사의 창조에 관해


  우리는, 성부께서 말씀 곧, 자기 아들에 의하여64) 자신이 보시기에 선한 대로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무에서 창조하시되, 그 모든 피조물들에게 존재와 형태와 모양 그리고 몇 가지 직분을 주셔서 그 창조주를 섬기게 하셨음을 믿으며, 또한 자신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권능에 의해65) 그것들을 계속해서 붙드시고 다스려 인류를 섬기게66) 하셨는데, 이는 인간이 자신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할 목적67)이라는 것을 믿는다. 또한 천사들을 선하게 창조하여68) 자기의 대언자가 되고69) 자신의 택한 자들을 섬기게 하셨다.70) 그 가운데 몇몇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탁월함으로 부터 타락하여 영원한 멸망에 빠졌다.71) 나머지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72) 견고하게 남아서 자신의 최초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마귀들 곧 악한 영들은 부패하여서,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을 파괴하려고 지켜서있는 살인자들처럼73), 그리고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을 멸망시키려는 그들의 악한 궤계로 인해,74) 자기들의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과 모든 선한 것의 원수가 되었으며, 따라서 자기들의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에 합당하게 되어 매일 자신들의 무서운 고통을 기대하기에 이르렀다.75) 그러므로 우리는, 영과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의 오류와,76) 또한 마귀들이 그 자체의 기원을 갖고 있으며 부패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의 본성상 사악하다고 주장하는 마니교도들의 오류를 거절하고 혐오한다.          


제 13장. 하나님의 섭리와 만물의 주관하심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뒤에 그것들을 내버려 두시거나 운명 또는 우연에 맡기지 않으셨다고 믿으며, 오히려 자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77) 그것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므로, 하나님의 정하심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음과7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질러지는 죄악들의 저자도 아니며 혐의도 받을 수 없음을 믿는다. 그 분의 능력과 선하심은 매우 위대하고 불가해하여서, 마귀와 인간들이 부당하게 행하는 그런 때 조차도 가장 탁월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명령하시고 수행하시기 때문이다.79)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행하시는 것에 관하여, 우리의 능력이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호기심으로 탐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최대한의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는 가리워진,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들을 찬양하고80)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에 만족하여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들 만을 배워 이 한계를 범하지 말도록 하자.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우리는 이 교리의 가르침에  의하여, 우연에 의해서는 아무 일도 우리에게 닥치지 못하고 다만 부성적 돌보심으로 우리를 살펴보시는,81) 우리의 가장 은혜로우시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명령에 의하여서만 일어난다는 사실과, 만물을 자신의 권세아래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왜냐하면 그것들을 전부 세셨기 때문이다)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는82) 사실을 배운다. 그 아버지를 우리는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과 허락하심이 없이는 우리를 해칠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다만 모든 것을 우연에 맡긴다고 하는 에피큐리안주의자들의 저주할만한 오류를 거절한다.


제 14장.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참된 선행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땅의 흙으로 창조하셨으며 자기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 빚으시되83) 선하고 의로우며 거룩하여,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뜻을 품을 수 있도록 하셨다고84)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명예로움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탁월함도 알지 못했다.85) 오히려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여86) 제멋대로 죄에 매이고, 결국 사망과 저주에 매였다. 생명의 계명을 범하여,87) 자기의 참된 생명인88) 하나님으로 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자신의 본성 전체를 부패시켰다.89) 그로 인하여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90) 모든 면에서 사악하고 완고하며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던 모든 탁월한 은사들을 상실하고91) 다만 그 중에서, 인간이 변명치 못하도록 하기에 충분한92) 약간의 흔적 만 남았다.93)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처럼,94)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빛이 변하여 어두움이 되었다. 즉,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다.95) 그 구절에서 요한은 사람을 ‘어두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이것에 반대하여 가르치는 모든 것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에 얽매인 노예에 불과하고,96) 하늘이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9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98)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을 때, 누가 자기 스스로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다고 주제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의 의지를 자랑할 자 누구이며, 육신의 뜻을 품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누가 이해할까?99)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을 받지 않는데,100) 누가 자신의 지식에 관해 말할 수 있을까? 즉, 우리 자신에 관하여 어떤 것을 생각하기에 충분치 않고, 오히려 우리의 충분함은 하나님께로 부터임을 알고 있는데, 누가 감히 어떤 생각을 제안하는가?101) 그러므로 사도가 한 말 즉,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자신의 선하신 즐거움대로 의지하고 행하신다’102)는 말씀을 확실하고 견고하게 주장해야 옳다.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서 이루신 것 말고는 하나님의 뜻과 이해에 일치하는 어떠한 의지도, 이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03)고 말씀하셨을 때,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제 15장. 원죄


  우리는, 원죄가 아담의 불순종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까지 확장됨을104) 믿는다. 이 원죄는 전체 본성의 부패이며 유전적 질병이다. 그것으로 인해 어린아이들이 어머니의 배에 들어 있을 때 조차도 오염되었으며,105) 그것이 사람 안에서 뿌리가 되어 온갖 종류의 죄악을 만들어내며,106)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대단히 추악하고 가증스러운 것이어서 온 인류를 저주하기에 충분하다.107) 원죄는 결코 세례에 의해 폐지되거나 제거되지 않는다. 물이 샘에서 나오는 것처럼, 죄가 항상 이 형편없는 근원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가되어 멸망에 이르게 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용서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 중에 안전하게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부패의 느낌이 그를 종종 한숨짓게 만들어,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받기를 갈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108)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단지 모방에서 나올 뿐이라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오류를 거절한다.   


제 16장. 영원한 선택

  

  우리의 첫 부모의 죄로 인해 이렇게 멸망과 파멸에 빠진, 아담의 모든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즉,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우신 자신을 보여주셨다.109) 하나님의 영원하고 변치 않는 계획 속에서, 단지 선하심으로부터,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전혀 행위를 고려하지 않고,110) 택하신 모든 자들을 이 멸망으로 부터 구원하고 보존하심으로 인하여 선하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멸망에 내버려 두심으로 인해111) 공의로우시다.


제 17장. 타락한 인간의 회복


  우리는, 우리의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인간 스스로 육체적이며 영적인 죽음에 뛰어들어 자신을 전적으로 비참하게 만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탄복할 만한 지혜와 선하심으로, 자기 앞에서 떨고 있는 그를 찾아 위로해 주시며112) 자기 아들 곧, 한 여인에게서 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리라고113) 약속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   


제 18장.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요 영원한 아들 곧, 종의 형상을 입고 사람처럼 되시되,114) 인간에 의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115)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 잉태됨으로써 진정한 인간의 본성을 그 모든 연약한 것들과 더불어 실제로 입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던116) 그 분을 세상에 보내신 때에, 자신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선조들에게 주신117) 약속을 이루셨다는 사실과, 육신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간의 영혼도 취하여 참 인간이 되도록 하셨다는118) 사실을 고백한다. 육체와 더불어 영혼도 타락하였으므로, 그 둘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둘 모두를 취하셔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친에게서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음을 부인하는 재침례교도의 이단설에 반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살과 피에 참예한 자가 되셨다고119) 고백하며, 그는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허리의 열매요,120) 육체를 따라서 다윗의 씨로 부터 나왔고,121)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요,122) 한 여인에게서 나왔고,123) 다윗의 가지요,124) 이새의 뿌리에서 난 싹이요,125) 유다지파에서 나왔고,126) 육체를 따라 유대인들의 후손127) 즉,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여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점에서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신128) 까닭에 아브라함의 씨이시니,129) 그리하여 진실로 그는 우리의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130)이시라고 고백한다.


제 19장.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 있는 두 본성의 연합과 구별


  이와 같은 잉태에 의하여, 성자의 인격이 인간의 본성과 나눌 수 없게 연합되고 연결되었으며, 하나님의 두 아들들 즉, 두 개의 인격이 아니라 단일한 인격으로 연합된 두 본성이 존재하되, 각 본성은 자신의 분명한 속성들을 보유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신적 본성이 항상 피조되지 않은 상태로 있으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마침도 없이131) 하늘과 땅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인간적 본성도 그 속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피조물로 남아있어, 시작한 날이 있고 유한하며 실제 육신의 모든 특성을 보유한다.132) 비록 부활로 인해 불멸성이 주어졌지만 그의 인간적 본성의 실제성을 바꾸지는 않았다. 우리의 구원과 부활 역시 그의 육신의 실제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133) 그러나 이들 두 본성은 대단히 밀접하게 연합하여 하나의 인격이 되었으며, 그의 죽음에 의해서조차도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죽을 때에 자기 아버지 손에 의탁한 것은 자신의 육신에서 떠난, 인간의 실제 영혼이었다. 반면에, 그가 무덤에 누워있었던 바로 그 때에도, 신성이 인성과 항상 연합되어 있었다. 신성이 그의 안에 머물기를 그치지 않았다.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신성이 그의 안에 머물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참된 하나님이요, 참된 인간이시라고 즉, 죽음을 정복한 능력으로 인해 참된 하나님이시요, 육신의 연약함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참된 인간이시라고 고백한다.


제 20장.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의와 자비를 나타내심


  우리는, 완벽하게 자비로우시며 또한 완벽하게 정의로우시기도 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불순종을 범한 바로 그 본성을 입도록, 바로 그 본성 안에서 속죄하도록, 가장 쓰라린 수난과 죽음에 의하여 죄의 형벌을 담당하도록134) 하셨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들을 자기 아들 위에 얹어 놓으실 때에 자기 아들에게 자신의 정의를 보여주신 것이며,135) 죄를 지어 저주를 받아 마땅한 우리 위에는 자기 아들을 내어주어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시고 우리의 의를 위하여 그를 살리시는,136) 그리하여 그를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생을 얻도록 하시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자비와 선하심을 쏟아 부으셨다. 


제 21장. 우리를 위한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137) 자신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완전한 속죄에 의하여138) 즉,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고 자신의 고귀한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씻어, 아버지의 진노를 가라앉히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도록 맹약과 함께 정해지셨다고 믿는다. 기록된 대로, 그는 우리의 범법을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다. 그가 징계를 받은 것은 우리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았고, 마치 양처럼 도살꾼에게 끌려갔으며, 죄인 중의 하나로 여겨져서,139) 비록 처음에는 빌라도에 의해 무죄라고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악행자라고 정죄되었다.140) 그러므로 자신이 치우지 않은 것을 돌려주었고,141)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이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으로도 우리의 죄악들이 받아 마땅한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142) 그의 땀방울이 땅위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143) 그는 외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44) 이 모든 것을 우리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감내하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145)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에 관한 지식의 탁월함에 비교할 때, 모든 것을 다만 더럽고 추한 것으로 여기며,146)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상처 속에서 온갖 위로를 얻는다고, 사도 바울과 함께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단번에 드려졌고 믿는 자들을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는 이 유일한 희생제물 이외에,147)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기타의 어떤 수단을 구하거나 고안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예수 즉,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라고 한148)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 22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칭의


  우리는, 이 위대한 신비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도록 하려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고,149) 예수 그리스도 이외엔 더 이상의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150) 올바른 신앙을 불붙이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면,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자들은 그의 안에 있는 완전한 구원을 소유한다는151)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충분치 않고, 그 외에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너무나도 추잡한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반쪽짜리 구세주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사도바울과 함께,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즉, 행위없이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었다고152) 말한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껴안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5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그토록 허다한 거룩한 행위들을 우리에게 전가해 줌으로써 우리의 의이시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의 죄악으로 부터 우리를 용서해 주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그의 모든 은택들이 우리의 소유가 될 때 그 은택들 속에서 우리를 그와 교제 가운데 있게 해주는 수단이다.  


제 23장.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 조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악들을 용서받는 데에 우리의 구원이 있음과, 여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가  담겨 있음과, 마치 다윗과 바울이 우리를 가르쳐 선포한 것처럼, 이것 즉, 하나님께서 행함이 없는 사람에게 의를 전가하는 이것이 사람의 행복임을 믿는다.15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155)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156)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우리의 어떤 공로든지 주제넘게 신뢰하지 않고157)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소유가 되는,158)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순종’ 만을 신뢰하고 의존함으로써,159) 항상 이 기초를 단단히 붙잡는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가리우고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우리에게 주기에 충분하며160)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무서움으로 부터 해방시켜주어, 최초의 조상인 아담이 떨면서 무화과 잎사귀로 자신을 가리려고 시도했던161) 전례를 좇지 않아도 된다. 참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어떤 다른 피조물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면, 오호라! 우리는 망할 것이다.162) 따라서 누구든지 다윗과 함께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 주여! 당신의 종에게는 심판에 들어가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163)


제 24장. 인간의 성화와 선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인하여164)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 참된 믿음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새 생명을 살도록 하며165) 죄 짐에서 해방시켜 준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 태만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166) 반대로 이것이 없이는, 어느 것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부터가 아니라, 다만 자기를 사랑함과 저주를 두려워 함으로 부터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믿음’이 사람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헛된 신앙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167) 오히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요,168) 사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서 명령하신 행위들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믿음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행위들이 믿음이라는 선한 뿌리에서 나왔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받으실 만 하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은혜에 의하여 거룩해졌기 때문이다.169)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선한 행위를 하기도 전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다.170)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나무 그 자체가 선하기도 전에 그 나무의 열매가 선해질 수 없는 것처럼171) 선한 행위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행실을 하지만 그것들에 의하여 공로를 쌓기 위함이 아니다. (무엇을 위하여 공로를 쌓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가 행하는 선행을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붙잡힌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잡힌 것이 아니다.172) 다름 아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서 역사하시어, 하나님의 선한 기쁨으로 부터 의지하고 행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173) 그러므로 기록된 것에 주목하자. “너희가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4)

  한편 우리는, 하나님이 선한 행위들에 대해 상 주신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175) 그러나 그 분이 자신의 은사들을 영예롭게 해 주시는 것은 은혜를 통해서이다. 더욱이, 우리가 선행을 하지만, 그 선행들 위에 우리의 구원을 세우지 않는다.176)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에 의해 오염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벌받을 만한 행위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77) 그리고 비록 우리가 이러한 행실을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여전히 죄에 대한 기억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행위들을 거절하시게끔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쌍한 양심이 우리 구세주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항상 의심에 빠져있게 되고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이리저리 요동칠 것이며, 우리의 불쌍한 양심은 계속해서 괴로워할 것이다.178)

  

제 25장. 의식 법의 폐지


  우리는, 율법의 의식들과 외형들이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중지되었고179) 그 모든 그림자들이 성취되었다고 믿으며, 그리하여 그 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폐지되어야 하지만180) 그 실체 즉, 본체는 그것들을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는다. 한편 우리는 율법과 선지자들로 부터 취한 증거들을 계속 사용하여 복음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181)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정직함으로 우리의 삶을 규제하도록 한다.


제 26장. 그리스도의 중보자되심


  그렇지 않았으면 가로막혔을 터인데,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다가가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사, 한 인격 속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결합시킨 유일한 중보자요 변호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의를 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결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다고 믿는다.182)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과 우리 사이에 세우신 이 중보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위엄으로 우리를 무섭게 하시거나, 우리의 상상에 따라 또 다른 것을 구하도록 만들지 않으신다.183) 하늘에서든 땅위에서든, 예수 그리스도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피조물은 없다.184)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셨고 흠잡을 데 없으셨으나 종의 형체를 입고 모든 점에서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185) 만일 우리를 향하여 애정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중보자를 구한다면, 우리가 자기의 원수가 되었을 바로 그 때에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 자 보다 우리를 더욱 더 사랑한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까?186)  만일 우리가 권세와 위엄을 지닌 자를 구한다면,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계신 분만큼 지니고 있는 자는 누구이며, 하늘과 땅위에 있는 모든 권세를 지닌 자는 누구인가?187)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보다 더 빨리 귀 기울이게 할 자는 누구인가?

  그러므로 성도들을 존귀케하는 대신에 비천케하는 행습이 도입되어, 결코 행한 적도 없었고 요구한 적도 없고 도리어 그들의 글에 나타난 대로, 당연한 본분에 따라 꿋꿋하게 거절해왔던 일을 하게 된 것은 단지 나태함 때문이다.188) 여기에서 우리의 무가치함을 변호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값어치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인해 우리의 소유가 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과 유익 때문에 만189)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어리석은 두려움을, 아니 차라리 우리에게서 나온 불신을 제거하기 위하여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점에서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어, 백성들의 죄를 깨끗케 하는 자비롭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정당하게 말한다. 자기 자신이 고난받고 시험받으셨으므로 시험당하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다.190) 게다가 우리의 용기를 복돋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한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91) 그리고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우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의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92) 또 비슷하게 “그리스도는 변치 않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계시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그는 영원히 사시어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시기 때문이다.”193)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도 직접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194)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주어 우리의 중보자로 삼도록 하시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는데,195) 또 다른 중보자를 구하는 것은 무슨 목적을 위해서 인가?196) 결코 찾을 수 없는 다른 자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 분을 저버리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명령에 따라 우리의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되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배운 그대로,197) 그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한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실 것을 확신한다.198)


제 27장.  보편적인 기독교회


  우리는 자신들의 구원을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대하며 그의 피로 씻겨지고 성령에 의하여 거룩하게 인쳐진 참된 기독교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이요 총회인, 유일하며 보편적 즉, 우주적인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199)

  이 교회는 세상의 처음부터 존재하였으며 세상의 끝까지 존재할 것이다.200)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왕 즉, 백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왕이시라는 것을 볼 때 분명하다.201) 그리고 비록 그 교회가 때때로 (한 동안) 대단히 왜소해 보이고 사람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었을 찌라도,202)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교회를 온 세상의 격노함에 반대하여 보존하시고 유지하신다.203) 마치 아합의 위험스러운 통치기간 중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었던 것처럼 말이다.204)

  더욱이,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장소 또는 사람들에게 한정되거나 매이거나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퍼지고 유포된다. 그러나 마음과 뜻으로,205) 믿음의 능력에 의하여, 동일한 한 성령 안에서206)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


제 28장.  모든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참 교회와 연결됨


  우리는, 이 거룩한 회중(會衆)은 ‘구원받은 자들’의 집합체이며, 그 바깥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207) 어떤 상태 혹은 조건을 지녔더라도 ‘그 회중’으로 부터 고립되거나 분리된 상태로 살아서는 안된다고208) 믿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의무적으로 이 회중에 가담하여 연합되어야 하고, ‘통일성’을 유지해야 하며209) 교회의 교리와 징계에 복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받아들여야 하고210) 같은 몸의 상호연결된 지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211) 형제들을 교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더 잘 준수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느 곳에 세우시든지,212) 비록 군주들의 수령들과 칙령들이 교회를 반대 할 지라도, 그들이 죽음 또는 체형(體刑)을 가한다고 할 지라도,213)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로 부터 분리하여214) 이 회중에 가담하는 것이 모든 신자들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교회로 부터 분리되든지 혹은 교회에 합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로 행하는 것이다.


제 29장.  참교회의 표지와 거짓 교회와의 차이점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종파가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참된 교회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근면하고 세심하게 분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거짓된 자들 즉,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 안에서 선한 자들과 섞여 있지만215)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무리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교회의 몸과 교제를 자칭 교회라고 하는 모든 종파로 부터 구별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참된 교회를 알아보게 하는 표지는 다음과 같다. 복음의 순결한 교리를 설파한다면,216)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전을 순결하게 집행한다면,217) 죄를 처벌하여 교회의 징계를 시행한다면218) 즉, 모든 일을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에 따라 행하며 그 말씀에 반(反)하는 모든 것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고 인정한다면.219) 이것들에 의하여, 참된 교회임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이 교회로 부터 분리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의 지체들인 자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의 표지 즉, 믿음에 의하여220)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영접했을 때,221) 죄를 피하고 의로움을 따르며222) 참 하나님과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육신의 행위와 더불어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는다.223) 그러나 그들 가운데 커다란 약점들이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남은 생애동안 내내224) 성령을 통하여 그 약점들과 싸우되, 끊임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죽으심과 고난받으심과 순종하심에 피하여 숨는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 용서함을 얻는다.225)

  거짓 교회에 관하여 말하자면,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 자신과 자신들의 규정에 더 큰 권세와 권위를 돌리고,226) 그리스도의 멍에에 복종하지 않으려 한다.227) 성례전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말씀 가운데 정하신 대로 시행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이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더하거나 뺀다. 저들은 그리스도 보다 사람을 더 의존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며228) 거짓 교회의 오류와 탐욕과 우상숭배를 책망하는 자들을 박해한다.229) 이 두 교회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서로 구별된다.


제 30장.  교회를 다스리는 일과 직분


  우리는, 이 참된 교회를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영적인 정책’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성례전들을 집전하는 사역자들 또는 목사들과,230) 그 사역자들과 함께 회의기관을 구성하는 장로들과 집사들이231)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이것들에 의하여 참된 종교를 보존하며 모든 곳에 참된 교리를 전파하고, 이와 같이 영적인 수단에 의하여 범법자들을 처벌하고 제한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또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구제받고 위로받을 수 있다고232) 믿는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신실한 사람들을 선택할 때, 이러한 방법에 의하여 모든 일을 질서정연하고 품위있게 수행하게 될 것이다.233)


제 31장.  목사와 장로와 집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234) 장로와 집사들을235) 교회의 합법적인 선출에 의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절차에 따라 선택하여 각각의 직책을 맡겨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부끄러운 수단에 의하여 방해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그에게 소임을 맡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까지 기다려,236) 그의 소명을 증거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를 확실히 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들 모두가 우주의 유일한 제사장이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237)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므로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동일한 권세와 권위를 평등하게 갖는다.238)

  더욱이, 하나님의 이 거룩한 명령을 범하거나 경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 하는 일 때문에 존경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한 투덜대거나 불화 혹은 다툼 없이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239)


제 32장. 교회의 질서와 징계


  반면에 우리는, 유익하고 이로운 것이라면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 사이에서 어떤 규정들을 제정하고 확립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유일하신 주(主),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240) 따라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만들려고 소개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양심을 얽어매고 강압하게 되는 모든 인간적 고안물과 법규들을 거절한다.241)

  그러므로 우리는, 일치와 연합을 증진하고 보존해 주며,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만을 허용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몇가지 부대 상황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파문 혹은 교회의 징계가 필요하다.242)


제 33장.  성례전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과 결함들을 고려하여 우리에게 성례전들을 제정해 주심으로써, 이 성례전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약속들을 인쳐주시고,243)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해 주시고, 복음의 말씀에 접붙여주신 우리의 믿음을 양육하여 강하게 하시며, 자신의 말씀 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과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내적으로 역사하신 것을 우리로 느끼게 하여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구원을 우리 안에서 확신케 하시고 견고케 하시고자 함이라고 믿는다. 그것들은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보이는 표식이며 인(印)이요,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세에 의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그 표식들은 우리를 기만할 만큼 헛되거나 무의미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들이 제시하는 참된 대상이며,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244)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제정하신 단 두개의 성례전 즉, 세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에 만족한다.245)


제 34장.  거룩한 세례


  우리는, 사람들이 죄에 대한 화목제물로 또는 속죄제물로 삼을 수 있었고 또 삼고자 하였던 다른 모든 피흘림을 율법의 마침이신246)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를 흘리심으로써  종식시켰음과, 피흘림과 더불어 행하였던 할례를 종식시키고 그 대신에 세례라는 성례전을 제정하시어,247) 그것에 의해 우리가 교회에 받아들여지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낯선 종교들로 부터 분리되고, 우리가 지닌 깃발과 표지가 가리키는 그분에게 전적으로 속하도록 하셨음을 믿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영원토록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요 아버지가 되어주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증거로써 봉사한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속하는 모든 자에게 정결한 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다.248)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물이 육신의 더러운 것 위에 부어져 세례 받는 자의 몸 위에 있을 때 육신의 더러움을 씻어버리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의 권세에 의해 내면적으로 영혼 위에 뿌려져서 영혼의 죄악들을 깨끗케 하고 우리를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한다.249) 이것은 외형적인 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탄의 폭정을 벗어나서 영적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홍해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피를 흘림으로써 야기되는 것이다.250)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성례 즉, 눈에 보이는 것을 시행하지만251) 우리 주님께서는 성례가 가리키는 것 즉, 은사들과 보이지 않는 은혜를 주신다. 우리의 영혼을 모든 더러움과 불의로 부터 씻겨 깨끗케 하고 정화하며,252) 우리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며 모든 위로로 채우시고, 우리에게 그의 부성적(父性的) 선하심에 관한 참된 확신을 주시고, 우리에게 새사람을 입히시고 옛사람을 그 모든 행실과 더불어 벗기신다.253)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진지하게 갈망하는 모든 사람은 이 유일한 세례로 단 한번 세례받고 동일한 것을 결코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254) 우리는 두 번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위에 물이 부어지고 우리가 그 물을 받았을 때에 만 이 세례가 유용한 것이 아니고 인생 전체에 걸쳐서도 역시 유용한 것이다.255)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한번 받았던 유일한 세례에 만족치 않으며, 게다가 우리 자녀에게 한 것과 동일한 약속에 따라256) 예전에 이스라엘 자녀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신자들의 자녀들이 세례받아 언약의 표로 인쳐져야 한다는 믿음에 따른257) 유아세례를 정죄하는 재침례교도들의 오류를 몹시 싫어한다. 그리고 참으로, 그리스도는 어른들을 위해서 못지않게 신실한 자들의 자녀들을 씻기기 위해서 자기 피를 흘리셨다.258) 그러므로 주님께서 율법에서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태어난 직후 그들을 위해서 어린양을 번제로 드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성례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전에 참여한 자가 되도록 하셨던 것처럼,259)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의 표와 성례전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할례와 유대인들의 관계는 세례와 우리 자녀들의 관계와 같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부른다.260)


제35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


  우리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거듭나게 하여 자기 가족 즉, 자신의 교회에 편입시킨 자들을 기르고 양육하기 위하여 ‘성만찬’이라는 성례전을 정하여 세우셨음을261) 믿고 고백한다. 이제, 거듭난 자들은 자기 안에 두 생명262) 즉, 첫 번째 출생에서 받아 모두에게 공통적인 육체적이며 세속적인 생명과, 복음의 말씀에 의해서263)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함 가운데에서 생겨난 두 번째 출생에서 받은264)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은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에게 한정된 것이다.265) 유사하게, 육체적이며 땅에 속한 생명을 유지토록 하기 위하여 거기에 속하여 모두에게 공통되는, 세속적이며 공통적인 양식을 생명 그 자체처럼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신자들이 소유한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늘로 부터 내려온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266) 그를 먹을 때 즉, 성령 안에서 그리고 믿음에 의해서 그를 받아들일 때267) 신자들의 영적 생명을 양육하고 강하게 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영적인 하늘의 양식을 주시기 위하여 땅에 속하고 가시적인 양식을 자기 육신의 기념물로 세우고,268) 포도주를 자기 피의 기념물로 세우셔서, 이 기념물을 우리 손으로 붙잡아 입으로 먹어 우리 생명이 양육받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믿음(믿음은 우리 영혼의 손이며 입이다)으로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 그리스도의 참된 육신과 피를 우리의 영혼 속으로 받아들여 영적 생명을 부양토록 하신다는 것을 확증해 주셨다.269)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례전의 사용을 쓸모없이 명령하지는 않으셨음이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처럼, 그 수단과 방법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고 성령의 역사가 가리워져 이해할 수 없는 것 만큼이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거룩한 표들이 제시하는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이루신다. 반면에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래의 자연적인 육신과 피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270) 그러나 바로 그것을 나누는 방법은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성령에 의하여서’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편에 항상 앉아계시지만271)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나누는 자로 만드시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이 잔치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유익한 것들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어,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즐기도록 하시는 영적인 식탁으로써,272) 이 식탁에서 자기 살을 먹게 함으로써 우리의 가엾고 위안이 없는 영혼을 양육하여 강하게 하고 위로를 주며 자기의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우리의 가엾고 위안이 없는 영혼을 살리고 기운나게 하신다.273)

  나아가, 성례전들은 지시된 대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둘을 다 받지 않는다. 경건치 못한 자들은 사실상 정죄의 성례전을 받는다.274) 하지만 그 성례의 실체를 받지는 못한다. 유다와 마술사 시몬 두 사람은 실제로 성례를 받았지만 그 성례가 지시하는 대상인 그리스도를 받지 못했던 것과 같다. 오직 신자들 만이 그리스도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서, 겸손과 경외심과 함께,275) 그리스도 우리 구세주의 죽으심에 관한 거룩한 기억을 간직하고서, 감사함으로,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의 경건을 고백하면서, 이 거룩한 성례전을 받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시험해 보지도 않고 이 식탁에 다가와서는 안 된다.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심으로 심판을 먹고 마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276) 한 마디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이 성례전에 덧붙이고 뒤섞은 모든 혼합물과 저주할 만한 고안물들은 성례전을 모독하는 것으로 거절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규칙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과 그들이 말해준 방법대로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제 36장.  국가행정(수반)


  우리는, 인류가 부패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왕과 제후와 행정수반들을 임명하시어,277) 인간들의 방종을 억제하고 모든 일이 순리에 맞고 품위있게 수행 되도록 법과 정책으로 세상을 다스릴 뜻을 품게 하셨다고 믿는다. 이를 위하여, 행정수반의 직책에 칼을 수여하시어 그릇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잘 행하는 자들을 칭찬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그들의 직책은 시민정부의 복지를 돌보고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역을 보호하여 모든 우상숭배와 거짓 예배를 제거하고 방지 하도록 하며,278) 적그리스도의 왕국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증진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그들은 모든 곳에서 복음의 말씀의 설파를 장려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배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행정수반에 복종하고,279) 경의를 표하며,280) 합당한 명예와 존경심을 보여주며,281) 하나님의 말씀에 거스르지 않는 모든 것에서 그들에게 순종하며,282) 그들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고 인도하시도록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경건함과 정직함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국적이나 신분이나 처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당연한 본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침례교도들과 다른 선동적인 사람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위 권력자들과 행정수반들을 거부하고 정의를 전복하고자 하며283) 이익 공동체를 도입하고자 하며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세우신 예절과 순리를 혼란케 하고자 하는284) 모든 자들을 몹시 미워한다.


제 37장.  최후 심판.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께서 정하신 (모든 피조물에게 알려지지 않은) 때가 이르면285) 그리고 택하신 자의 수가 차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위엄 가운데 올라가신 것, 하늘로 부터 육체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내려 오셔서 자신이 바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자이심을 선포하시고286) 이 옛 세상을 불과 화염으로 태워287) 깨끗케 하실 것임을288)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는다. 그런 후, 세상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있었던289)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모두 대 천사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에 따라290) 소집되어 이 위대한 심판자 앞에 직접 나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죽은 자들이 땅에서 일어나 그들의 영혼이 전에 살았던 본래의 육신과 연합할 것이다.291) 살아있던 자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는 않고 순식간에 변화되어,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을 것으로 될 것이다.292)

  그 다음에, 책(즉, 양심)들이 펼쳐지고 죽은 자들은 선하든 악하든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행한 바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293)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내뱉었던, 세상이 단지 오락거리요 우스갯소리로 여겼던294) 모든 무익한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과 위선이 밝혀져 모두 앞에 펼쳐질 것이다.295)

  그러므로, 이 심판을 생각하는 것은 사악하고 불경한 자들에게는 마땅히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296) 의로우며 택함받은 자들에게는 지극히 바람직하고 평온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자신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되며, 자신들이 겪었던 수고와 고통의 결실을 거기에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297) 그들의 양심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을 그토록 잔혹하게 핍박하고 억누르고 괴롭혔던298) 사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서운 복수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299) 그 사악한 자들은 자기 자신의 양심의 증거에 의하여 유죄임이 입증될 것이며300)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301) 영원한 불구덩이 속에서 죽지 않고 고통받을 것이다.302)

  그와 반대로, 신실하며 택함받은 자들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쓸 것이다.303) 성자께서 성부 하나님과 택함받은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고백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지금은 많은 재판관들과 행정수반들에 의하여 이단이요 불경건한 자들이라고 정죄 받는 그들의 대의명분이 성자의 대의명분임이 그때에 알려질 것이다.304) 은혜의 상급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결코 사람의 마음이 품어본 적이 없는 이러한 영광을 그들이 소유하도록 하실 것이다.305)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충분히 누리고자 지극히 뜨거운 갈망으로 그 위대한 날을 고대한다.306)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계22:20)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도르트 신조 언약 2014.07.17 0 165
다음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언약 2014.07.17 0 138

607802 부산 동래구 명륜동 4-8번지 3층 동래언약교회 TEL : 051-558-4890 지도보기

Copyright © 동래언약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
  • Total15,532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