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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공(8) 당회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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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공(8) 당회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

2013.08.28 15:56 입력

 

▲현유광 교수
장로들도 목사를 자신의 높은 평가 잣대로 비판하고 잘못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

 

가능하면 목사의 약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주고 장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협력하는 당회가 될 때에 모든 교인들은 당회원들을 존경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자녀교육을 위해 특별히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한다. 이처럼 담임목사와 장로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섬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성도들이 행복한 공동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금과 빛 같은 교회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담임목사와 장로들이,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 있을까?

 

첫째로, 목사와 장로 그리고 당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그 역할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삶이 당회원들에게 있어야 한다. 목사와 장로가 헌법에 명기된 직무와 역할은 소홀히 하면서, 교인들의 관심이나 인정을 얻으려는 경쟁관계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섬기기 위해 세움 받았다. 그러므로 서로의 부족하고 약한 부분을 채워주고 격려하고 보완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서로의 약점을 들추어내며 비난하며 공격할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는 상처를 입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게 된다.

 

목사와 장로가 협력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목사는 권위주의를 버리고 장로들의 권면이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이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계속 성장해야 하는 사람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장로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장로들도 목사를 자신의 높은 평가 잣대로 비판하고 잘못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한 후에는 한 눈을 감고 살아야 하듯이 해야 한다.

 

청빙하기 전에는 목사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야하지만, 목사로 모신 후에는 가능하면 약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주고 장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협력하는 당회가 될 때에 모든 교인들은 당회원들을 존경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갈등의 종류에 ‘개성’과 ‘원리’에 관련된 것이 있다. 사람들마다 목사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표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목사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멀리하며 비난까지 한다.

 

특히 옷이나 말투 또는 외모 때문에 목사를 멀리하고 싫어하므로 갈등이 일어날 때에 ‘개성’과 관련된 갈등이라고 한다. 장로는 자신이 목사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목사의 개성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분별해야 한다.

 

원리와 관련된 갈등은 교리적인 문제나 목회윤리에 잘못이 있을 때 발생한다. 이때에 장로가 목사의 잘못을 겸손히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장로들의 지적을 받을 때에, 목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자신의 성숙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회개하고 시정해야 한다.

 

목사를 괴롭히는 사람을 영어로 ‘드라곤(dragon 용)’이라 부른다. 사사건건 목사를 괴롭히는 진짜 드라곤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좋은 마음, 사랑으로 목사에게 조언함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그를 싫어하고 멀리하는 경우, 원래 드라곤이 아니었는데 목사의 잘못된 반응으로 무관심자가 되게 하고 심지어 드라곤으로 만드는 일도 생긴다.

 

목사는 장로들의 조언에 대해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를 섬기는 동역자임을 항상 기억하자. 부족하고 연약하며 단점이 많은 자신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는 목표를 절대로 잃지 말자.

 

둘째로, 인간관계와 조직(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갈등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도리어 인간관계나 조직체 내에서 갈등이 없는 것이 비정상이다.

 

믿음이 좋은 당회원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교회를 이룰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현실(능력이나 환경 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는데 턱없이 모자란다. 이런 형편에서 그는 내적인 갈등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더 이상 갈등을 느끼지 않게 된다. 갈등을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은 성장을 멈추게 되고, 교회에도 문제해결이나 성장이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노력하는 목사,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도전을 계속하는 장로는 갈등을 통해 성숙하게 되고 교회의 덕을 세우게 된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보다 자기를 합리화하는데 더 적극적인 것이 사람이다. 자기의 판단, 주장, 목표는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다고 단정을 하는 것이 우리다. 그래서 갈등이 쉽게 일어난다.

 

갈등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은 장로 무용론(無用論) 주장이 나오게 만들고, 당회나 제직회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고, 없으면 더 좋다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한다.

 

상정된 안건에 대해 갈등상황을 피하기 위해 논의 없이, 한 사람 또는 몇몇 소수(小數)의 주장을 따라 일이 결정된다면, 그 당회는 얼마간은 시끄러움 없이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더 심각한 갈등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당회원들은 열띤 토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초기 단계의 이견 또는 갈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통을 해 나갈 때에 바람직한 결론에 이르게 되고, 동역자의식은 강화되며 복된 당회, 아름다운 교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자. 도리어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기회로 삼자.

 

셋째로, 당회 안에서 갈등을 푸는 방법은 다른 생각, 다른 의견,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엉뚱한 발언을 한다고 해도 틀렸다고 즉시 단정을 짓지 않아야 한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판단하기 이전에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령님을 의지할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도 진실하고 조리 있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서로의 차이점이 무엇이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서로 차근차근 나눈다면 하나님의 뜻에 접근할 수 있고 교회의 유익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또 상대방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대화를 거부하고 그를 공격하고 정죄한다면, 갈등은 증폭되고 교회는 시끄러워지고 주님의 평화를 잃어버릴 것이다.

 

당회에서 한 안건에 대해 논의할 때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를 꺼려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을 비웃을까 조심스러워서 발언하기를 주저한다.

 

당회장은 이런 사람들이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페이스에 당회가 좌지우지 될 때에 건강한 교회가 되기 어렵다. 효과적인 회의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로 성령님의 임재와 주재(主宰)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안건에 대한 각 당회원의 의견을 자유롭게 내놓도록 해야 한다.

 

회의가 효과적이 되기 위해서는 회의 초기에는 안건에 대한 각 사람의 의견을 모두 내어놓아 서로의 생각을 알도록 해야 한다. 회의 중기에는 이런 의견들을 정리하며 토론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의견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하나님 앞에서 결정을 하면 매우 생산적인 당회가 된다. 처음에 각 사람의 생각을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하는 것이 효과적인 회의의 기술이다. 그런데 많은 당회의 회의 진행을 보면 초기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다.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어도 묵묵부답일 경우가 많다. 중간을 넘어가면 몇몇 당회원이 의견을 내고 일사천리로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당회가 끝난 다음에 일어난다. 발언을 하지 않았던 당회원들은 집에 돌아가서 전화로 결정이 잘됐니 틀렸니 하는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누며, 심지어는 재론하자는 주장도 뒤늦게 한다. 이런 태도는 옳지 않다.

 

물론 조용한 다수가 당회와 교회에 유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강권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체면 때문에 또는 용기가 없어서 잘못된 결정을 하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일이다. 당회원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한 후에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겸손하고 진실하게 사랑으로 권면해야 한다. 이런 당회는 성경과 성령님의 가르침과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이런 당회가 우리 고신교회의 당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당회원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구조를 해부해 보면, 1) 표면적 이슈와 그 이슈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 2)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개인적인 동기. 3) 갈등의 핵심에는 그런 동기를 갖게 만든 각 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루어져있다. 갈등은 빙산과 같아서 표면적 이슈와 각 개인의 입장은 눈에 드러난다. 그러나 동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서 그의 동기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언뜻언뜻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육관 건축에 관한 안건이 당회에 올라왔다고 가정하자. 찬성하는 사람 중 어떤 장로는 주일학교 부장으로서 교육관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있고, 어떤 장로는 건축 관계의 일을 하므로 재정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동기가 작용할 수 있다.

 

반대하는 장로 중 어떤 분은 자신의 경제적인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또 어떤 분은 자기 아들이 선교사로 나가려고 하는데 교육관 건축은 선교후원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회의 과정에서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그럴듯하게 겹겹으로 포장한다.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찬성이나 반대의 주장을 한다. 왜냐하면 속내가 드러나면 부끄럽고 자신의 입장이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당회원들도 어느 정도 그들의 동기를 짐작은 하지만 예의상 눈감아 준다.

 

이런 태도들은 논점을 겉돌게 하여 대립되는 주장에 대해 같은 말이 반복되는 당회가 되게 한다. 결정에 이르렀다고 해도 불만스런 사람들이 생긴다. 당회원들은 일을 결정할 때에 자신의 내면적 동기를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끼는 결정은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는 장로라면 자기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손해를 볼 때에 잠시 힘들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자기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결정에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며 그의 상급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가운데 교회를 위해 계속 헌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갈등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관계와 목표, 둘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섯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1) 회피 : 다른 당회원을 만나는 것도 귀찮고 교회가 잘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태도이다. 이런 사람은 교회를 옮길 생각만 하며 당회가 있어도 참석을 안 한다.

 

2) 양보 : 당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는 해도, 다른 의견이 나오면 쉽게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는 태도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당회원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것 보다는 자기 의견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3) 경쟁 : 자기의 생각이 옳고 가장 좋다고 확신하여 다른 사람이 싫어해도 끝까지 자기의견을 주장하는 태도이다. 진리와 관계된 갈등에 있어서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4) 절충 : 관계도 완전히 깨진 말고, 내가 원하는 것도 조금은 얻기를 원하는 태도이다. 내가 이만큼 양보할 테니 너도 이만큼은 양보하라고 제안하는 사람이다. 앞에서 살핀 네 가지 태도는 갈등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는 아니다. 상대방이 합력의 태도로 대화에 임하지 않을 때에 상대방의 형편에 따라 각각은 차선책(次善策)이 될 수는 있다. 갈등을 만날 때에 쌍방은 합력해야 한다.

 

5) 합력(合力) : 관계도 풍성하게 하고, 교회의 유익도 이루려는 태도이다. 다른 사람의 말도 진지하게 들어주며, 자기의 의견도 진실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합력을 추구할 때에 ‘윈윈’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당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교회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해진다. 합력하는 교회의 모습이 행 6:1-7에 잘 나타나 있다. 합력이 이루어지는 당회를 통해, 기쁨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고신교회를 소망한다.

 

허순길 박사의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과 필자의 2013, 8. 10 ‘기독교보’ 시론의 일독을 추천한다. 교회 안의 분쟁을 세상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요, 또 자기의 목표(유익)도 제대로 성취되지 않고, 관계는 치명적이(원수가) 되기가 쉽다.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http://www.peacecenter.kr)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글·현유광 교수 /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로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목사와 갈등’, ‘교회갈등관리’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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