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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언약교회는 오후예배시간 신앙고백 시간에 왜 유해무교수가 번역한 사도신경을 낭독하나요?
언약 2017-01-30 추천 0 댓글 0 조회 338

* 유해무 교수 :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네덜란드 캄펀신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헤르만 바빙크』(살림) 『개혁교의학』(크리스챤다이제스트)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영문)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성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역사와 신학』(공저, 성약)등이 있다.



사도신경 새 번역을 위한 제언 

유해무 


서방 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 한국의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매주일 사도신경으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역들을 진술하여 성경의 가르침이 잘 요약되어 있는 사도신경을 고백함으로 교중과 교인들은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확인한다. 그런데 한역 사도신경에는 번역상의 문제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개 정확하게 번역되지 못한 경우들도 있지만, 더러는 누락된 부분도 있고, 지금은 잘 통용되지 않는 번역어들도 들어있다. 

찬송가 통일 작업시에도 재번역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성경 재번역이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논의되지 않고 있는 사도신경의 번역 문제를 본고에서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사도신경에 고백된 대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교회들과 교류한다는 '공교회'에 대한 고백적 자세에서 연유한다.[1] 

신경 

신경은 공적 목적을 위한 신앙고백을 말한다. 공적 목적이란 교리 교육이나 세례, 예배, 설교 및 이단 투쟁과 축사를 뜻한다. 
고대 교회에서부터 출현하여 사용되어진 신경들은 무엇보다도 세례와 연관되어 있다. 현대의 한국교회 세례 의식에는 신앙고백이 크게 부각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고대 교회는 달랐다. 세례 의식은 세례 이전 의식과 세례 의식 자체로 이분된다. 세례를 준비하는 사순절의 요리문답 교육기간 중, 감독은 진보한 학습자에게 신앙고백을 전달하고 그 고백을 암송하도록 하면서 두 주간 동안 신경을 해설한다. 이것을 신앙고백의 전수(traditio)라 한다. 

그러면 예비 수세자는 부활 전날 저녁에 시행되는 세례 의식이 있기 직전에 공중 앞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서서 그 고백을 암송한다. 이는 그가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순서이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고백을 함, 또는 신앙을 고백하는 복창으로 전수행위에 상응하는 응답(redditio)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는 세례단 물 안에 서서 3번 삼위 하나님의 신앙을 질문받는다. "당신은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까?" "나는 믿습니다"(라틴어, 'credo'), "당신은 성자 하나님을 믿습니까?" "credo." "당신은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까?" "credo." 

그러면 매 'credo' 답변에 감독은 수세자를 물 속으로 넣는다. 그것은 수세자가 물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매장당함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았고, 그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롬6장 참조). 이처럼 신경은 애초부터 세례 의식에서 고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었다. 그 준비인 요리문답 교육과 세례의식 자체는 신앙고백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 없었다. 
이미 지적된 대로 신앙고백은 세례 의식 자체에서 신앙을 암송함으로 낭송하는 진술체와 문답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문답 전에 행했던 고백의 전수와 되돌려 줌은 성인 세례의 희귀성과 더불어 사라지고, 6세기 경부터 문답 형식의 신앙고백이 다시 진술식으로 정착하면서 예배 중에 낭송되는 전통으로 정착되었다.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신경은 진술 형식으로만 고백된다. 즉 문답형식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credo'에서 세례 시의 문답 형식 중 답변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신경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고백을 가진 자에게 어떤 표지가 되는 것이 신경(symbolum=표)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삼위 하나님에 의하여 구별되는 표를 고백을 통하여 가지게 된다. 

사도신경 

우리가 공 예배 시에 고백하는 신경은 '사도신경'이라 알려져 있고, 사도신경은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이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신경은 사도들과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거룩하게 미화된 한 전승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신경이 표하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음도 보이려고 한다. 
오순절 직후 제자들은 서로 이별하기 전에 장래의 선교를 위한 합의된 규범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즉 서로 떨어져서 예수를 전도하면서 다른 교리들을 설파하므로 전도를 받을 자들이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한 자리에 앉아 성령에 충만한 상태에서 장래의 선교를 위한 간략한 표(신경)를 만들되, 각자가 한 항목씩 기여했다. 그리고 이 표를 신자들에게 표준 교훈으로 전수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주후 400년 경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그 이전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때쯤 사도신경이라는 이름도 보편적으로 쓰여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미화된 전승을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15-16세기에 사도적 기원을 부정하는 연구서들이 나왔고, 칼빈 역시 사도적 기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신경이 사도적 전승을 잘 요약하고 있음은 쉽게 인정되어질 것이다. 사도신경은 성경교훈을 아주 잘 정리하므로 고백의 훌륭한 전형으로 우뚝 서 있다. 

그러면 사도신경의 기원은 언제이며, 어떤 배경에서 발생되었을까? 고대 교회들간에는 지리적, 언어적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고백적 일치가 형성되어 있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내가 믿는다(credo)"는 고백은 동서 교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각 지역의 대표적 모교회마다 세 번 'credo'가 들어가는 신앙고백들이 대동소이하게 편재되어 왔었다. 이 놀라운 사실에 우리는 당신의 교회를 모으시는 성령으로 유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배경을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세 번 'credo'의 배경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나타나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에 있음을 알 수 있다. 'credo'가 세 번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credo'와 세례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며, 이는 고백의 내용이 삼위 하나님이며, 고백을 통한 세례 의식은 삼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정립, 곧 수세자가 삼위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상징한다. 또한 성찬 참여 역시 세례를 통한 삼위 하나님을 고백한 뒤 그 삼위 하나님과의 계속적 교제를 상징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동소이하게 발생하여 발전되어진 신경들 중에서 지금의 사도신경은 고대 로마 신경을 모계로 하고 있다. 각 신경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전하였고, 또 특정 신경도 또 다른 발전 계보를 가지고서 조금씩은 다르게 변천되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사도신경은 고대 로마신경의 여러 후손 중 하나로써 지금은 거의 유일하게 쓰이는 고대 교회 신경의 대표로 존속하고 있다. 
그러면 이 고대 로마신경은 언제쯤 형성되었는가? 여기에는 여러설이 있으나, 로마에 나타났던 이단들과의 투쟁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주후 150년경으로 잡을 수 있겠다. 그러면 원래의 고대 로마신경은 어느 언어로 고백되어졌을까? 당시에 로마교회에는 아직도 헬라어가 공용어로 쓰여지고 있었으므로, 헬라어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교중 일반의 공적 고백인 점을 고려하면, 라틴어로 기원했다고도 추정할 수 있겠다. 

그러면 현재의 사도신경은 언제 완성되었는가? 지금의 형태는 빨라야 5세기 말엽에 확립되었고, 8-9세기 경에야 비로소 서방 교회 전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신경의 고향은 로마이지만 동방교회가 지금도 유일한 신경으로 고백하고 있는 니케아(Nicea) 신경(325, 그리고 381년에 확정)이 공포된 후, 로마교회에서는 이 새 신경이 세례식 시에 사용되던 원래의 로마신경을 대신했다. 원래의 로마신경이 5-6세기에 스페인 쪽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되어서 로마에 다시 재기용되었다. 말하자면 시집간 딸이 더욱 숙성한 모습으로 친정살이로 들어온 셈이다. 

새번역 초[2] 

우리는 밑줄을 그어서 현행 사도신경과 우리의 번역초의 차이를 표시하려고 한다. 이 번역 시안은 그야말로 첫 시작일뿐, 계속 다듬어져야 하는고로 번역이 완전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현대 한국어 어법에 맞추어 다듬어져야 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성부 

1.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성자 

2. 나는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3.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4.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당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으셨고 장사되셨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5. 사흘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6. 하늘에 오르셨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7. 그리로부터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성령 

8.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9. 나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들의 교제와 
10. 사죄와 
11. 육의 부활과 
12.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첫째, 원문의 동사와 단어의 순서를 그대로 두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고백의 주체인 '나는'이 세 번 그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9-12항의 주체로 다시 '나'가 나타나는 것은 번역상의 첨부인데, 이는 라틴어와 헬라어 원문에서 'credo' 뒤에 세 번 나타나는 전치사 'in' 또는 'en'이 교회-영생에는 해당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있다. 전치사가 올 경우 그것은 신앙의 대상이 각각 삼위 하나님임을 나타내 보인다. 

둘째, 또 다른 변화는 명사의 동명사적 번역을 피하고 명사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제 1항의 '창조주' 9항의 '교제', 10항의 '사죄', 11항의 '부활', 12항의 '영생'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5항의 '부활'도 간략하게 번역될 수 있다. 

셋째, 성자에 관한 두 번째 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상 사역과 승천한 뒤의 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잉태부터 장사되심까지는 피동태로 고백되며 음부行부터 재림은 능동형으로 나타난다. 

넷째, 복수를 가능하면, 그대로 번역하려고 했다. 5항의 '죽은 자들', 9항의 '성도들'이 그 예들이다. 그러나 10항의 '사죄'는 '죄들의 용서'이나, 복수로 번역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섯째, 정확을 기한 번역으로는 1항의 '전능하신' (현행의 6항 번역과 일치하도록), 2항의 '그의'와 7항의 '그리로부터'이다. 4항의 '치하'도 마찬가진데, 이는 고난의 시기와 고난을 가한 책임 소재를 밝혀준다. 

여섯째, 번역에서 배제되었던 것이 더 첨가되어 번역되었다. 6항의 아버지가 그러하고, 4항의 음부行이 그러하다. 이 음부行은 별도의 설명을 요하지만 본고에서는 약하겠다. 

일곱째, 두 번째 장 둘째 항의 외아들을 '독생자'로 번역한 것은, 독생자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표현하는 특수한 용어로 이미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독자들이 외아들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으나, 성자 예수는 성부와 독특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독생자라는 말이 예수의 선재성을 다루는 용어냐는 질문은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나타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하신 아들이시다. 

여덟째, '마리아에게'는 옛 어법에서는 통용되었으나, 지금은 '에게서'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아홉째, '몸'은 영어 세계에만 나타나는 용어이다. 헬라어, 라틴어 원문에는 '육'이다. 

사도신경의 한글번역 시기 

사도신경은 1892년에는 이미 번역되어 있었다. 그런데 성경이 이때 전체적으로 번역되지 않은 것은 공지된 사시이다. 즉 성경 한역 전에 선교사들은 중세 이후 요리문답의 주 내용인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미리 번역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외아들의 번역 문제가 번역 시기에 관한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만약 성경이 미리 번역된 상태에서 사도신경이 번역되었다면 외아들은 개역의 번역을 따라 독생자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사도신경을 성경의 요약으로 본다면, 성경번역을 따르지 않는 사도신경의 번역은 다시 검증되어야 하며, 그 이전에 번역된 부분도 성경의 번역을 따라서 다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재번역의 필요성 

원칙적인 면과 실제적인 측면에서 재번역의 필요성을 주장하려고 한다. 먼저 원칙적인 측면은 한역의 백경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경은 공적 목적을 위하여 발생되었고 존속한다. 한역이 어떤 공적 회의의 결정으로 번역이 제안되었고, 그 회의 위임을 누가 받아 번역했고, 공적으로 그 번역이 검증되어 언제 어떤 회의가 그것을 공적으로 사용할 것을 결의했는지가 도무지 감추어져 있다. 
게다가 어느 원문을 번역의 자료로 삼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제 11항의 '육'이 '몸'으로 번역된 것을 고려하면, 라틴어와 헬라어보다는 영어 번역이 번역의 자료였을 가능성이 크다. 조심스럽게 추정하자면, 영어를 사용하는 선교사(들)가 한국인 조사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것이 그대로 통용되어진 것 같다. 

여기에 실제적인 측면들도 있다. 전통적으로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찬송가에 부록처럼 실려져 왔다. 선교 1백 주년 기념으로 찬송가를 선곡하고 가사를 다시 손보는 수고를 한국교회 전체는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의 통일 찬송가가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이전의 가사 중 많은 부분이 여러 가지 이유로 수정되고 더 낫게 번역되었다. 그 중에 특별 절기 찬송가들이나 또 어떤 찬송가들은 연중 제한적으로 불려지거나 아예 한번도 불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들을 위하여 한국교회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점은 칭찬할만 하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매주일 예배시마다 빠뜨리지 않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개역하지 않고 왜 그대로 두었는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십계명과 주기도문은 성경의 한 부분이니까 예외로 둘 수 있다. 또 양보하여 성경의 요약인 사도신경이라는 점에서 유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왜 생략된 부분들이라도 삽입되어 다시 번역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한국교회가 연합과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사도신경의 재번역이라는 적지만 그럼에도 아주 중요한 일을 간과하지나 않았는지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특히 성경 재번역 논쟁이 한창인 이때에 우리는 한국교회 전체의 진정한 연합을 위한 중요한 한 방편으로서 사도신경의 재번역을 촉구하고 싶다. 
또 다른 실제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찬송가는 교회의 공적 감독을 받지 않는 영리 기업인 교계 출판사들의 작품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사설 출판사들이 사도신경의 구조를 무시하고, 사도신경을 주로 두 단락으로 구분한 것은 신학의 빈곤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도신경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credo'를 근거로 하여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창조주 성부 하나님, 구속주 성자 하나님, 그리고 교제의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교회, 사죄, 영생과 부활이 성령의 사역임이 명백해진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성령이 누구신지를 알 수 있음도 분명하여질 것이다. 그 경우 사죄는 옛 번역과는 달리 성부와 성자의 사역이 아니라 우리의 사죄체험, 곧 성령 체험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매주 고백되는 사도신경이 바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임을 교회에 잘 가르침으로서 신앙의 본질을 잘 깨닫는 계기가 이 번역 문제 제기로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성경 번역에 앞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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