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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언약교회는 축복의 선포(축도) 때 왜 눈을 감지 않고 선포자를 바라보나요?
언약 2017-01-22 추천 1 댓글 0 조회 2021

출처 : http://www.kosinnew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90&page=10&no=3476​

 

한세공(13) 예배의 잘못된 용어들

 

2013.10.16 10:56 입력

글·안재경 목사(남양주 온생명교회) / 분립개척교회 4년차 목사로서 공교회 전통을 고수하고, 공예배를 반듯하게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안재경 목사

 

예배는 삼위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의 만남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낮추셔서 자기 백성 가운데 찾아와 주셔서 언약을 체결해 주시므로 예배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시내산에 도착한 시점에 주목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내 백성을 불러 모으라’고 하신 뒤, 그 백성을 만나주시기 위해 강림하셨을 때(신 4:10-14) 예배가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과의 공식적인 만남인 예배는 언약적인 사건으로, 지속적인 언약갱신예식으로 기능합니다. 우리는 예배가 ‘교회의 공적인 일’이라는 것에 주목하면서 예배에 관해 오해하기 쉬운 용어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주일대예배’

 

한국교회는 ‘주일대예배’라는 표현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예배’가 있다면 나머지 예배들은 ‘소예배’가 될 것입니다. 대예배와 소예배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의 차이는 말씀 분량의 차이인데 예배도 마찬가지일까요?

 

이상하게도 주일대예배 시간이 점차 줄어들어 1시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대예배는 시간적으로도 큰 예배가 아닙니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주일예배를 몇 부로 나누어서 드리게 된 것이 예배시간에 큰 제약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대예배라는 용어가 ‘모든 회중이 참여하는 예배’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라는 용어가 남용되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경건활동을 위한 모임에 다 예배라는 용어를 갖다 붙입니다. ‘예배는 아무리 많이 드려도 부족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이 정도면 충분히 예배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예배의 공적인 성격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기본적으로 ‘말씀과 성례’가 없이는 예배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예배지침 제28조). 개신교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려니와 한국교회가 사경회 등과 같은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설교를 중심한 예배를 드려왔기 때문에 성례 없이도 예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예배는 개인의 경건생활을 돕기 위해 만든 각종 모임과 구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배는 온 회중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일에 온 회중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오전, 오후(저녁)예배만을 예배라고 제한하여 부르는 것이 낫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경건활동들은 ‘경건회’라는, ‘기도회’라는 이름을 다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배와 기도회, 예배와 집회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 때에 사사로운 경건 추구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서 구원을 이루는 참 경건을 함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묵도’

 

예배가 시작될 때 예배 인도자가 종을 치면서 ‘성가대의 주악에 맞추어서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배가 묵도로 시작되는 것은 한국교회만의 독특한 모습입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예배당에 착석한 신자들이 조용히 기도해 왔는데 예배가 다시 묵상기도로 시작됩니다. 통성기도를 좋아하는 한국교회이지만 예배 시작만큼은 묵상기도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묵도의 전통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이런 저런 추측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배의 시작이 다양한 모습을 띄다가 ‘예배 부름’이라는 순서로 수렴되었습니다. 이 예배 부름은 ‘예배로의 부름’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예배 인도자가 회중을 향해 이런 저런 종류의 인사를 하자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을 예배에로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개혁자 장 칼뱅은 중세교회가 사용하던 구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 124:8)를 예배 시작의 문구로 사용했습니다. 예배 인도자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예배 시작 순서로 적합한 것일까요? 회중이 하나님을 불러야만 하나님께서 비로소 자기 백성 가운데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부르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부름 받은 회중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고백하므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이에 우리는 묵도라는 용어보다는 ‘예배 부름’을 통해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3. ‘대표기도’

 

‘◯◯◯ 장로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기도해 주시겠습니다.’ 예배 중에 ‘대표기도’라는 순서가 있고 직분자들이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하는 것이 예배에서 중요한 순서가 되었습니다. 주일낮예배는 주로 장로가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로는 회중의 대표라는 것을 예배순서를 통해서도 드러내는 셈입니다.

 

전통적으로 개혁교회는 공예배에 세 가지 기도를 배치했습니다. 하나는 예배 시작 부분에 있는 ‘공적인 죄 고백’의 기도였고, 둘째는 설교 직전에 ‘성령께서 회중을 준비시켜 주십사’ 하는 기도였고, 마지막 기도는 설교 후에 예배인도자가 소위 말하는 ‘기독교의 모든 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표기도는 이런 세 가지 종류의 기도를 한꺼번에 모아놓은 기도처럼 보입니다. 이 기도는 주로 설교 직전에 배치되어 있기에 죄 고백과 설교 준비와 중보기도 등을 다 담고 있습니다. 개혁자들의 방식대로 기도의 성격을 구분하여 다양한 기도순서를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대표기도는 ‘목회기도’의 성격이 짙은데 장로가 목회의 실질적인 동반자이며, 장로가 심방을 통해 목회를 하는 경우가 아닐진대 공허한 기도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장로가 목사와 더불어 교회를 영적으로 돌아보는 일을 잘 하고 있다면 이 기도는 강력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적시하듯이 이 기도순서를 예배 어디에 배치하든지 목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목사는 설교만큼이나 이 기도를 통해 회중의 기도를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회중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는지를 배웁니다.

 

 

4. ‘성경봉독’

 

‘제가 성경을 봉독해 올리겠습니다.’ 한국교회는 성경말씀에 대한 존중 때문에 성경을 봉독한다는 표현을 사용해 왔습니다. 성경을 ‘받들어 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대한 이런 존중이 말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을 봉독해 올린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받들어 읽어 올린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서 누구에게 올린다는 말일까요?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는 말일까요?

 

‘성경봉독’은 언약적인 예배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시는 순서입니다. 우리가 받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올려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봉독자를 통해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성경봉독이 설교와 더불어 한 짝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찾아와 주시는 시간임을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예배의 역사를 보면 예배 전에 낭독자를 불러서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설교 전에 읽는 성경본문도 설교본문만이 아니라 렉시오나리(Lectionary)라고 해서 교회력에 따른 성경본문을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통을 본받아 설교와 관련된 성경본문을 마지막으로 낭독하되 교회력과 관련된 신구약 성경으로 확대하여 읽어 가면 좋겠습니다. ‘시편교독’이라는 순서를 성경봉독에 편입시켜 신구약성경 전체를 균형 있게 읽는 길을 찾는다면 ‘오직 성경’이 ‘모든 성경’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 ‘성가대 특송’

 

‘성가대에서 특송을 해 주시겠습니다.’ 주일 공예배에는 대부분의 교회가 성가대의 특송이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예배찬송 전체가 회중찬송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가대를 조직하여 예배 때 성가대가 특송을 부르는 것이 예배를 활기차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가대의 조직은 미국의 부흥사 무디와 찬양사역자 생키가 이끄는 부흥운동의 영향이 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성가대 특송은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봉독과 설교가 한 쌍이라고 할 때에 왜 성가대의 특송이 이 두 순서를 갈라 뜨려 놓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의 역사를 통해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성령께 말씀을 열어 주십사 구하는 기도가 자리했다는 것을 안다면 성가대의 특송도 이런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선곡을 잘 해서 말씀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교통의 문을 열어 주십사 간구하는 찬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에서 성가대의 역할이 커지면서 회중은 찬양에서 소외되는 모습마저 볼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가 그랬는데 성직자가 성가대를 구성하여 예배찬송을 독차지하므로 회중의 입은 닫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하는 회중은 성직자로 구성된 성가대의 곡조에 자신들의 몸과 귀를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가대라는 이름보다는 ‘찬양대’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회중과 유리되어 공연하듯이 특송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과 더불어 회중의 찬양을 인도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6. ‘축도’

 

예배 마침 순서가 축도입니다. 축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예배의 중요도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예배에서는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축도는 교회 질서상 목사만이 합니다.

 

그런데 목사의 권위가 너무 실추된 나머지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축도문구로 사용하던 한국교회가 마지막 부분, ‘있을지어다’를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있을지어다’라고 하면 목사가 중세로 회귀하여 자신을 성직자로 드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거북해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축도(복을 빌어주는 기도)라는 용어를 고집한다면 ‘있을지어다’라는 선포보다는 ‘축원하옵나이다’라는 표현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축도라는 용어가 표현하고 있듯이 예배의 이 마지막 순서를 다들 목사가 교인을 위해 복을 빌어주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두 손을 들어 축도하는데 교인들은 눈을 감은 채 목사의 축도를 듣습니다. 교인들이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왜 목사가 두 손을 들까요? 두 손을 드는 것은 보라고 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목사가 두 손을 드는 것은 교인들을 위해 복을 비는 기도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복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순서를 ‘강복선언’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복이 내리기를 선언하는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목사의 경건한 복을 빌어주는 기도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기 백성들을 향해 복을 선포해 주심으로 마칩니다. 목사의 들려진 손은 두 손을 들고 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눅 24:50-51)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예배를 마친 신자는 하늘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그리스도께서 두 손을 들어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복선언’은 예배의 마침일 뿐만 아니라 예배의 절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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