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길목사 칼럼

  • 개혁교회자료실 >
  • 허순길목사 칼럼
[교회 역사가 주는 교훈] 8. 1960-1963 합동과 환원이 준 교훈
언약 2014-07-28 추천 1 댓글 0 조회 216

8. 1960-1963 합동과 환원이 준 교훈

 

고신교회사에서 승동측과의 합동과 환원(1960-1963)은 떳떳한 역사가 못된다. 고신의 신앙과 생활에 혼란을 초래한 역사요, 고신의 원색을 퇴색하게 만든 역사였기 때문이다. 합동과 환원을 통해 고신교회는 많은 것을 잃었을 뿐이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신학과 신앙, 교리와 신조를 초월하는 통합 일치운동이 강타할 것이다. 이 때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첫째, 고신 지도자들은 당면한 난국 타개의 길을 조급하게 찾았다. 당시 고신의 가장 큰 난국은 신학교 문제였다. 당시 신학교는 고신신학을 주조해 온 교장 박윤선을 잃었다. 그를 잃은 고려신학교는 빈집처럼 되었다. 교회도 허탈감에 싸였다. 지도자들은 박윤선이 떠난 큰 공간을 속히 메우기를 바랐다. 때마침 유사한 난국에 직면한 승동측이 그들의 위기 탈출구를 찾아 고신에게 접촉해 왔다. 이 때 고신은 즉각 비어있는 공간을 메우고, 난국을 타개할 길이 거기 있다고 판단했다. 거기에는 박윤선이 남긴 큰 공간을 메우고도 남을 박형룡도 있다고 본 것이다.

둘째, 고신 지도자들은 합리적 사고보다는 감상적 정서에 지배를 받았다. 승동측의 제의로 고신 지도자들이 19608월 서울에서 회동했다. 이 때 고신 지도자들은 "박형룡 박사와 승동측 지도자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로 개혁주의 신학을 위해 함께 새 출발하자고 간곡히 제의해 온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수용과 교회적 차원의 수용은 다른 것이다. 미래교회의 역사를 위해서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승동의 수장격 자리에는 노진현 목사가 있었다. 그는 해방당시부터 부산에 있었지만 고려신학교와 경남(법통)노회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그는 경남(법통)노회를 축출한 제36회 계속총회가 모인 부산 중앙교회의 목사이기도 했다.

셋째, 고신 지도자들은 합동만을 최선으로 여기고 미래를 보지 않았다. 합동추진은 초고속이었다. 지도자들은 8월에 비공식적 접촉을 갖고, 9월 총회 시에 승동측과의 합동을 발의하여 즉시 '합동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10월에 대전에서 양측 합동추진위원들이 회동했다. 이 회의는 25일 오후 2시에 모여 그 이튿날 아침 9시에 마쳤다. 19601213일에 합동총회를 갖기로 합의했다. 10시간 내외의 시간에 합동준비가 끝났다. 합동에 대한 말이 오간 지 5개월 만에 성사되는 것이다. 그러니 양측이 함께 마련한 소위 '합동공약'에는 원칙만 있었지 구체성은 전혀 없었다. 예를 들면, "신학교는 총회직영의 일원적인 신학교"로 한다고 했다. 이것은 부산의 고려신학교와 서울의 총회신학교를 총회직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이 전혀 명시되지 않았다. 결과 합동총회 후 바로 다음 총회에서 부산고려신학교를 폐교하는 결의를 할 수 있었다. "이사의 수는 양측 12명으로 하며"라고 했지만, 이것을 언제까지 적용할 것인지 언급이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단지 합동총회 당시에만 적용되었다. 합동총회 후 다음 총회에서의 이사 비율은 승동측 10, 고신측 6명이 되어 버렸다. 고신교회는 10년 전 축출당할 때 겪은 동일한 교권 폭력의 재현을 보게 된다. 당시 600여 교회의 역사적 진로를 책임진 고신지도자들이 취했던 졸속한 합동진행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넷째, 고신교회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순진했고, 인간적이 되어버렸다. 승동측 지도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지난날의 고신을 이탈했던 박형룡이 아닌, 지난날에 고신측을 추방한 노진현이 아닌 모습으로 나타나 도움을 요청했을 때 고신 지도자들은 갑자기 전 한국 장로교회에 영적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가 오게 된 듯 뿌듯한 자고(自高)의 마음을 갖게 되었을 수 있다. 곧 저들은 고신교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한상동을 합동 총회의 총회장과 이사장으로, 그 다음 총회에서 다시 총회장으로 높이 올려 세웠다. 당시 한상동 목사는 총회장으로 '신학교 일원화'의 공약파기에 한마디 저항 없이 '고려신학교' 폐교결정에 의사봉을 두드렸고 이를 강행해 나갔다. 고신측 합동추진위원장 황철도 목사에게는 승동측 당시 대구에서 제일 큰 예배당을 가진 서현교회로 청빙받는 영광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한상동 목사는 두 번째 총회장 자리를 뒤로하고 내려왔다. 그 때 총회 임원석에는 고신에서 전성도 한 분만이 고고히 앉아 있었다. 그뿐 아니다. 이제 이사장에는 노진현이 앉아 있고 자신은 부이사장이 되었다. 개편된 이사회를 둘러보니 16명 가운데 고신은 6명뿐 이었다. 2년 동안 높이 떠있어 참된 자아와 현실을 잊었다가 낮은 곳에 내려온 순간 자의식을 찾게 되고 현실을 바로 보게 되었는지 모른다. 지난날 만난을 무릅쓰고 가꿔온 신학교도 승동측 품에 안겨 주고 홀홀 빈손 쥐고 나선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쨌든 고신 지도자들은 너무 인간적이었을 수 있다. 고신인의 자의식으로 돌아왔을 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자신도 살고 한국교회도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한상동은 고려신학교 복교를 선언하여 신학교를 찾는 길에 나섰다. 이제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이유도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주변으로부터 오는 모든 비난을 당연히 받아야 할 징계로 여겼던 것 같다. 뒤따라 교회도 환원하였다. 합동이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환원 역시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고신은 합동으로 150여 교회를 잃었다. 합동은 솔직히 실패한 부끄러운 역사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용하심과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인간들의 실패와 실수 속에서도 한국에서 고신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실 뜻이 있어 단절된 교회의 역사를 잇게 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실패한 합동 환원의 역사는 고신교회의 현재를 책임지고 있는 오늘의 세대와 미래를 이끌어 갈 고신인에게 귀한 교훈을 준다. 앞으로 교회의 통합 합동 일치운동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급하고 졸속한 진행은 교회의 건설이 아니라 파괴를, 역사의 진행이 아니라 중단이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교회 역사가 주는 교훈] 9. 고신교회사와 교권 언약 2014.07.15 1 220
다음글 [교회 역사가 주는 교훈] 7. 예장 제36회 총회와 고신계 축출 언약 2014.07.15 1 226

607802 부산 동래구 명륜동 4-8번지 3층 동래언약교회 TEL : 051-558-4890 지도보기

Copyright © 동래언약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642
  • Total149,532
  • rss
  • 모바일웹지원